내가 읽은 시

김수영,「은배를 닦듯이」

미송 2016. 2. 9. 08:37

     

    은배를 닦듯이 / 김수영

       

    은배를 닦듯이 인생을 닦지 말아라

    너는 무조건하고 너를 즐겨야 한다

    너는 무조건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이미 도달하여야 할 먼곳까지 왔을 때도

    너는 실망하여서는 아니된다

    은배銀盃를 닦듯이 하늘의 주변을 닦아서는 아니된다

    마지막 힘을 다하여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숭배하여라

    너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이 그러한 사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실망失望한 시인들이여

    처참悽慘한 인간들이여.

     

    창작과 비평 2008년 여름호(김수영 미발표 유고 시, 1955)

     

     

      

     

     

    무조건 하고 나를 즐기는 일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 그것이 은배를 닦는 일과 어떤 상관이 있을까. 은배를 닦아본 적 없으나 짐작컨대 너무 조심하며 차별심을 두며 살지 말라는 뜻일까 싶다. 신에 취해 살았던 스피노자도 그랬고 400여 년전 이단화형을 당했던 브루너도 그랬다, 신 앞에선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이 평등하므로 사랑받을 자들뿐이라고. 약간의 반발심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사람의 일원이기에 할 말은 없다. 희망이 없다, 처참하다, 그러나 비관적으로만 말 할 것은 아니다. 억지로 살아가는 자들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일이다. 도착지점에 닿았다고 해도 인생은 누구나 신비한 호수이니깐. 수면을 할퀴고 달아나는 뭇새들의 우아함을 동경하나 상처의 추억을 간직한 호수이니깐. 그래서 시인은 은배와 인생 두 개의 상관물을 놓고 후자를 더 사랑하라 강조한 것이 아닐까. <오>

     

    20120131-201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