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구양수, 「취옹정기」'

미송 2016. 2. 10. 10:48

 

 

 

아침이면 해가 돋아 숲의 안개가 열리고 구름이 돌아가 바위굴이 어두워지니, 어두웠다 밝았다 변화하는 것은 산간의 아침 저녁이다.

들에 꽃이 만발하여 그윽한 향기 있고 좋은 나무가 빼어나 우거진 그늘이 지며, 바람과 서리가 높고 깨끗하고, 물이 떨어져 돌이 드러나는 듯하는 것은 산간의 네 계절이다.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매, 사시의 풍경이 같지 아니하여서 즐거움 또한 다함이 없다.

 

벌써 하루해가 다했는가! 저녁해는 산 끝에 매달려 있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지러이 흩어진다. 태수가 집으로 돌아가매

많은 손님들이 서로 뒤따라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무 우거진 숲 속에 그늘이 져 어둑어둑한데 여기저기서 포르르 오르내리며 새소리 즐겁다.

놀이 온 사람들은 다들 돌아가고, 새들이 제 집으로 돌아와 한창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새들이 아무리 즐겁게 노래 불러도 산림의 즐거움만 알았지 인간의 즐거움을 알 턱이 없다.

 

사람들은 모두 태수를 따라 놀며 즐거워할 줄 알면서, 태수가 모든 사람들의 즐거움을 자기의 즐거움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

술이 거나하면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하고, 술이 깨면 붓을 들어 그 마음을 글로 써 펴내는 이가 곧 태수가 아니던가.

그 태수는 대체 누구를 말하는가? 바로 여릉 사람 구양수니라.

 

구양수의 '취옹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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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수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정치가일 뿐 아니라 문인이며 학자였다. 형식만 추구하는 유미주의 문풍을 반대하였던 그는 후배들을 적극 이끌어 준 착한 문인이었다. 소동파를 극찬했던 일화逸話 -소동파의 재능을 발견한 구양수는 모든 이 앞에서, '세월이 흐르면 구양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고 소동파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거'라 말하며 자신을 극진히 낮추었음-도 있다. 

 

구양수의 시어는 명쾌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수사적 시풍을 타파하고 이른바 송시를 창조했는데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의 '육일시화'는 평론의 한 형식인 걸작이란다. 취옹정기란 그의 호 취옹을 딴 제목 같다. 발음대로 그저 술에 취한 노인 정도일까, 아니다, 술에 취해 흥얼대기만 하다 사라진 게 아닐 것이다. 그가 읊었던 취옹정기 한 부분만 봐도 그가 취했던 건 술 보다 사람이다. 참말, 술 보다 사람이라니. 멋지다. 

 

사람에 취했던 구양수는 귀가하여 그 사람들을 붓끝에 담는다. '이 자슥들아 내가 느그들을 을메나 즐거워하는지 아노....?'

 

흥취를 함께할 줄 알고 남길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저 지부지처(지가부어지가처마시는)하는 이들로 가득한 현세에, 구양수 같은 취옹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그 향취에 흔들리지 않을 재간이 없으련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