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에 검게 그을린 미끈하고 젊고 예쁜 이파네마 소녀가 걸어간다.
걸음걸이는 삼바 리듬 시원하게 흔들며
부드럽게 춤춘다.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싶지만
나의 가슴을 전해 주고 싶지만
그녀는 나를 눈치 채지 못한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뿐
1963년, (브라질의 도시) 소녀는 그런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1982년의 이파네마 소녀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그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이미지 속에 틀어박힌 채 시간의 바다 속을 가벼이 떠 있다.
나이를 먹었다면 그녀는 40살이 되었어야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미끈하지도 않고 그렇게 햇볕에 그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벌써 세 명의 아이가 있으며,
태양에 그을린 거무잡잡한 피부는 갈라져 있을 것이다.
아직도 어지간히 아름다울지는 모르지만 결코 20년 전의 젊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레코드 속의 그녀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스턴 겟츠의 벨벳같은 테너 섹스폰 소리에 실려,
그녀는 언제나 열여덟 살의 시원하고 부드러운 이파네마 소녀이다.
내가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얹고 바늘을 내리면 그녀는 금새 모습을 나타낸다.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나의 하트를 주고 싶지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등학교 복도를 떠올린다.
어둡고, 조금은 축축한 고등학교 시절의 복도.
천장은 높고, 콘크리트 바닥을 걷고 있으면 타악타악하는 소리가 울린다.
북쪽에 몇개의 창문이 있지만 바로 앞에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복도는 언제나 어둡다.
그리고 대개는 조용하다.
적어도 나의 기억 속에서 복도는 대체로 조용했다.
어째서 '이파네마 소녀'를 들을 때마다 고등학교 복도를 떠올리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뚜렷한 이유는 없다.
도대체 1963년의 이파네마 소녀는 내 의식이라는 우물에
어떤 조약돌을 던져 넣은 것일까?
고등학교 복도는 나에게 컴비네이션 샐러드를 떠오르게 한다.
양상치와 토마토와 오이와 피망과 아스파라거스,
동그랗게 썰은 양파와 핑크빛의 아일랜드 드레싱.
물론 고등학교 복도 끝 편에 샐러드 전문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복도 맨 끝에는 문이 있었고,
문 밖에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25미터 수영장이 있을 뿐이다.
어째서 고등학교 복도가 내게 컴비네이션 샐러드를 생각나게 하는 것일까?
여기에도 물론 특별한 이유는 없다.
컴비네이션 샐러드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예전에 알고 지내던 여자다.
이러한 연상 작용은 너무도 선명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언제나 야채 샐러드만 먹었기 때문이다.
"벌써, 사각사각, 영어 리포트, 사각사각, 끝냈어?"
나도 야채를 꽤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면 언제나 그런 식으로 야채만 먹었다.
그녀는 '신념의 인간'으로 야채를 균형있게 먹기만 하면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건강하고 사랑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딸기 백서' 같은 이야기이다.
'옛날, 아주 먼 옛날 물질과 기억이 형이상학적 심연에 의해 나뉘어져 있을 때가 있었다.'
어떤 철학자의 말이다.
1963/1982년의 이파네마 소녀는 형이상학적인 뜨거운 모래사장을 소리도 없이 걷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모래사장으로 눈부신 하얀 파도가 조용히 밀려오고 있다.
바람은 전혀 없다.
수평선 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파도내음이 물씬 난다.
태양은 지독히 뜨겁다.
나는 비치 파라솔 밑에 드러누운 채 아이스 박스에서 캔 맥주를 꺼내 뚜껑을 딴다.
벌써 몇 개째일까? 5개, 6개? 아무려면 어때.
어차피 금방 땀이 되어 밖으로 나올 텐데.
그녀는 아직도 걷고 있다.
검게 그을린 그녀의 큰 키에 원색의 비키니가 찰싹 달라붙어 있다.
"어이."
말을 걸어 본다.
"안녕."
그녀는 상큼하게 인사한다.
"맥주라도 들겠소?"
유혹해 본다.
"좋아요."
그리고 우리는 비치 파라솔 아래에서 함께 맥주를 마신다.
"근데."
나는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분명히 1963년에도 당신을 본 적이 있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너무 오래 된 얘기네요."
"그렇군."
그녀는 단숨에 맥주를 반쯤 마시고, 캔에 뚫린 구멍을 바라본다.
"글쎄, 만났을지도 모르죠. 1963년이라, 1963년. 음, 만났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나이를 먹지 않는군."
"그거야 난 형이상학적인 여자니까요."
"그 당시 당신은 나한테 눈길도 주지 않았어. 언제나 언제나 바다만 보았지."
"그럴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녀는 웃었다.
"저, 맥주 하나 더 줄래요?"
"그러지."
난 캔 뚜껑을 따 주었다.
"그 이후로도 줄곧 모래사장을 걷고 있는 건가?"
"그래요."
"발바닥이 뜨겁지 않아?"
"괜찮아요. 내 발바닥은 형이상학적으로 만들어 졌으니까요. 볼래요?"
"응."
그녀는 늘신한 다리를 뻗어 나에게 발바닥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확실히 형이상학적인 멋진 발바닥이었다.
나는 살짝 손가락을 대 보았다.
뜨겁지도 않았고 차갑지도 않았다.
그녀의 발바닥에 손을 대자 희미한 파도 소리가 들렸다.
파도 소리조차 너무도 형이상학적이다.
그녀와 나는 아무 말 없이 맥주를 마셨다.
태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간조차 멎어 있었다.
마치 거울 속에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복도를 생각해. 어째서 그럴까?"
"인간의 본질은 복합성에 있는 거죠.
인간과학의 대상은 객체가 아니고 신체 속에 드리워져 있는 주체에 있는 거예요."
"흐음."
나는 반사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살아보세요. 삶, 삶, 삶 그뿐. 나는 그저 형이상학적인 발바닥을 가진 여자아이."
그리고 1963/1982년의 이파네마 소녀는 넓적다리에 달라붙은 모래를 털고 일어섰다.
"맥주 고마웠어요."
"천만에."
가끔씩 지하철 속에서 그녀와 만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 때 맥주 고마웠어요.'라는 식의 미소를 보내온다.
그 이후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쩐지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먼 세계에 있는 기묘한 장소에 그 연결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점은 또 다른 어딘가에서 고등학교 복도나 컴비네
이션 샐러드에 또는 채식주의자의 '딸기 백서'적인 여자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여러 가지 일들이 조금씩 그리워진다.
어딘가에 틀림없이 나와 내 자신을 이어주는 연결점도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언젠가 나는 먼 세계에 있는 미묘한 장소에서 나 자신과 만나리라.
가능하다면 따사로운 장소에서 만나면 더없이 좋겠다.
만일 그곳에 시원한 맥주가 몇 병 있다면 더할나위가 없다.
거기에서 나는 나 자신이며 나 자신은 나다.
그 둘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틈도 없다.
그러한 기묘한 장소가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1963/1982년의 이파네마 소녀는 지금도 뜨거운 모래사장을 걷고 있다.
레코드 마지막 한 장이 긁혀 끊어질 때까지 그녀는 쉼없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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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수필 <이파네마 아가씨>, 아파네마를 발음할 때마다 난 눈과 혀가 따로 노는 곤혹을 치른다. 이타파네 이파네마 이따페니 이파파냐. 희한하게 꼬인데선 다시(?) 꼬인다. 난 그 아뢰야식의 배경을 알 길 없다. 늘어뜨려 놓았지만, 그래서 수필집에 들어갔겠지만, 시 같다. 시 같단 건 한 컷 사진이나 그림 같기도 하고 장편 소설의 명장면 같기도 하단 뜻. 암튼, 샐러드 냄새에 퓨전 분위기 그야말로 하루키의 글. 형이상학적이다 하는 건, 현시적 동공 속에선 가장 현실적인 발화다 란 한 생각. 머문 생각이 곧 현실의 경험이 되는 찰라, 손에 잡힌 편안하고 흡족한 너, 아니 문장 배열. 이와 같은 때에 형이상학은, 그저 문자의 한 모양일 뿐. <오>
20100704-201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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