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무늬
별이 하늘의 무늬라면 꽃과 나무는 땅의 무늬일까요
별이 스러지듯 꽃들도 순식간에 사라지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불멸을 이루나 봅니다
하늘의 무늬 속에 숨어 있는 그 많은 길들을
저 흩어지는 꽃잎들은 알고 있는 듯합니다
이 꽃잎에서 저 꽃잎까지의 거리에 우주가 다 들어 있고
저 별빛이 이곳에 오기까지의 시간 또한 무한합니다
무한히 큰 공간과 거기 존재하는 천체와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인 우주를, 그 우주의 은하에서
나는 누구도 아닌 당신을 만났군요
자기 자신에서 비롯되는 마음처럼, 샘물처럼 당신과 나는
이 우주에서 생겨났군요
우주는 깊고 별들은 낮아
나는 별들의 푹신한 담요에 누워 대기를 호흡해 봅니다
천천히, 당신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그러다 나는 밤하늘로 문득 미끄러지듯 뛰어내릴까요
너무 오래 살았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이 있는 곳으로
남천에 걸린 남두육성의 국자별자리를 스쳐,
천공의 우주가 겹겹이 내려앉아 우리가 알 수 없는 오래전
어느 시간의 소우주를 보여 주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봉황과 학을 타고 하늘을 노닐며 사현금을 뜯는 신선들과
천지 공간을 가득 채운 일월성수의 별자리 따라
나는 당신의 전생으로 갑니다
우리는 어느 별에선가 또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조용미 <하늘의 무늬> 전문
빛의 강도를 따라 사물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난다. 거대한 잠 속에 잠, 거대한 눈 속에 눈. 비즈 모빌이랑 색색 리스랑 한지로 만든 인형들이 눈 안으로 들어서자, 아침은 바로 저 빛이었구나! 하는 경탄조의 시선, 조도에 따라 달라지는 내 얼굴도 잠시 거울에 비친다. 에구... 먼지 덩어리, 물방울, 그 어떤 무늬로 떠 있는 거니 너, 하며 손가락질 하는 내가 슬쩍 웃는다. 옆에 있는 이의 까칠하게 솟은 수염과 밤새 더 돌출된 눈동자를 살피다가, 인간이야말로 이 우주안에 가장 괴이怪異하고도 이상한 '현상' 이란 생각이 든다. 새삼스레 하늘의 무늬를 찾는다. 서른 잔치를 끝낸 최영미 그리고 조용미 시인. 그녀들이 종종 헷갈린다. 어이와 오이의 차이, 하늘과 바다의 차이, 물결과 물의 차이, 무늬와 상처의 차이는 무엇일까. '문득 든 생각인데...자기야, 하늘이나 바다에는 상처가 없지 그지?' 그래서 하늘의 무늬라는 제목을 달았을 거야. 하늘의 상처 바다의 상처 란 말은 거의 못 들어봤잖아 그치. 그런 거 같네 듣고 보니 그렇네 고개를 끄덕이는 너, 영미답기도 하고 용미답기도 한 '무늬' 란 발음. 돌발적인 공상 내지 짜깁기지만 상처 운운 보다는 무늬에 쏠리고 있는 중中,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린 틱낫한을 듬성듬성 읽다가 문득 부처가 쌩까기의 대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설법을 잔뜩 늘어놓다가는 별안간 나 아무 말도 안했다 너희들에게 가르친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이건 뭐 메롱이라는 건지 눈 가리고 아옹하겠단 건지, 한 마디로 쌩까자는 거란 결론을 내렸다. 기껏해야 여기까지가 내 불교수준이지만 눈알 바쁘게 돌아다니는 건 사실이다. 다이아몬드에(혹은, 로) 새긴 말씀이라나 뭐라나 하는 금강경도 그렇고, 온 우주가 요 오지랖 소갈딱지인 네 안에 다 있고 또 온 우주 속에 흩어진 네가 다 있고, 하는 질량불변의 법칙이나 보르헤스의 거울놀이 같은 화엄경 스토리는 매력적이다. 빠지면 다음에는 어디로 사라지는 줄 몰라도 좋아! 하는 블랙홀처럼, 마구 흡수되는 나를 본다.
그 내가 매일 아침 가방을 어깨에 매고 계단을 내려설 때, 한 두개 이상의 눈들이 동시에 쳐다본다. 그 눈들은 다름아닌 아파트의 문들인데 그 문들은 마치 데쟈뷰 현상처럼 옛 눈들의 눈빛이 되어 나를 비추고 있다. 그 신기한 순간을 마치 온전한 객관인 냥 바라보고 있는 또 하나의 눈. 그 눈을 의식하는 내 망막은 몇 번째 눈동자일까. 이런 내 말 끝에 누군가는 그런 상태가 오버되면 정신병원 가는 거라고 일러 주었다. 일반적으로 나는 그 눈동자들이 나를 공격하거나 해치려고 달겨들거나 한다 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먼 곳까진 가지 않아도 된다. 아무튼, 칼 세이건이 노년에 했던 말, '나의 신神은 신기함과 경이로움입니다' 가 피부에 닿는다, 1초에 40만 킬로로 달리는 빛의 속도로.
어떤 것이 모양으로 분별되는 곳이면 그곳에는 속임수가 있다 고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겉모양에 사로잡혀, 서로 안에 있고 모양이 없으며 비어있는 공空의 실상을 잃곤 한다. 공의 실상...공하다는 건 잃음이 아니라 튼실한 만족감이 아닐까. 물결로 일렁이는 우리가 곧 물이듯, 인간의 상처자리는 하늘의 무늬를 그대로 찍어놓은 복사물이 아닐까. 무수히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한 순간의 선정禪定을 위하여 한 송이 꽃을 든 비로자나, 지나가신다 여전히 쌩가는 말투로, 내가 바로 오늘 이 아침이요, 실제, 네 안에 사는 거대한 눈이요 잠이요 망막이요 빛이다...라고 말하며, 웃으시며.
2012. 2. 19 오정자
Michael Logozar - Awake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