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미송 2012. 2. 21. 22:48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 오정자   

     

    엄마는 오늘 엉덩이가 달싹 올라간 탐스런 여자를 봤단다.
    그녀는 우리 방과 후 아카데미에 일주일에 두 번씩 오시는 수학선생님이지. 엄마보다 세 살이나 젊었어.

    그녀의 뒷태, 힙라인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엄마는 주눅이 들곤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엄마 변태야 네가

    그렇게 말할지도 몰라. 요즘 애들 버전으로 스물세 살 너도 그렇게 이상해하거나, 내가 설령 서운해지더라도 할 수 없어.

    예쁜 걸 예쁘다고 하는 게 뭐 죈가.

    40대에도 좀체 쳐 질 줄 모르는 엉덩이가 한 둘이 아니니, 스카이라인 확실하고 멋진 그 내력을 다 모르겠단 말이지.

    혹, 시각 디자이너들 실력이 하루아침에 너무 좋아진 덕에 축 쳐진 엉덩이나 젖가슴들이 그녀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하는지, 그럼 좋지 뭘. 요즘 엄마는 왕복 땅밟기를 시작했다. 출퇴근길을 걸어서 다니기로 했어.

    사십 분 동안이라도 자동차를 잊겠다는 결심이지.

    첫째인 널 업을 적부터 던져버린 뾰족구두,
    허벅지살 들래며 입던 스커트, 둘째까지 낳고 신혼 끝을 외치며 버려 버린 것들,

    그런 것들 속에서도 유년의 낮은 운동화 하나 있으면 그만이야 할 때가 되었나봐.

    운동화 신은 키가 얼마냐고- 지들이 돈 주고 살 것도 아니면서- 엄마가 하늘과 얼만큼 가까운가 궁금한지

    자꾸만 묻는 열세 살 아이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그저 편한 신을 신기로 결정했지.

    그래선가, 늙어갈수록 땅과 가까이 닿는 운동이 좋다는 학설이 저절로 믿겨지네.

    튕겨 오를 듯 빵빵한 공이나 추켜세워진 그녀 엉덩이,
    탄력이란 근거 있는 학설을 서슴없이 수용하는 정신 속에서 발아하는 꿈,

    긴 낭하 속 숙주 같은 꿈이 아닐까. 언제까지 하이힐만 신고 다닐 공주처럼, 금

    나와라 뚝딱하면 금 나오고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은 나오는 세상,

    도깨비 세상처럼 무엇이든 제 맘 먹은 데로 다 되는 세상인 줄 알았다면 그건 오만이야. 네 생각은?

    석 달 전 엄마는,
    네 싸이월드에서 일기 한 편을 훔쳐보았어.
    다른 페이지도 슬쩍슬쩍 엿보았지. 솔직히 재밌어 웃기도 했다.
    스물세 살 생각 스물세 살 즐거움 스물세 살...슬픔....물방울,
    갇힌 삶이라고, 군대생활을 가끔 넌 그렇게 표현했지.
    상병 휴가를 나와 친구와 미술전시관을 돌다 문득, 복귀할 시간이 다가오면 눈앞이 캄캄하고 답답해진다고.

    그래서 그랬을까.
    2009년 5월 13일 수요일 17시 26분 네 일기장에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어.

    족쇄 소리처럼 들리더구나.
    때로는 마음 졸이기도 하고 치솟기도 하는 시간의 정수리에서 우리는 지금
    사글세를 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아들,
    유대 외경 ‘미드라시’ 에 전해지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어보렴.
    엄마는 네 일기장에 기록된 네 마음에 밥보자기 같은 이야기를 다시 얹는다.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 세공인에게 명했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반지에는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치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고 또한 큰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함께 줄 수 있는 글귀를 적어 달라고,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고민에 빠졌지.
    그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단다.
    솔로몬이 대답했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글귀를 반지에 새겨 넣으라고
    승리에 도취한 순간, 왕이 그 글귀를 보면 자만심이 가라앉을 것이고,
    절망에 빠졌을 때 그 글귀를 보면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물과 물로 싸워도 당할 수 없던 하지의 모가지가 꺽이는 시각,
    엄마의 귓가엔 마흔 다섯 번째 귀뚜라미 소리가 전해지고 있구나. 무의미의 의미로 계절이,

    엉덩이 꼿꼿이 올라간 그녀가- 나보다 세 살이나 젊은- 여름 에필로그를 장식하듯 엄마의 눈 밖으로 사라지고 있구나.

    젊은 날의 뾰족구두처럼, 또각또각...또각..또각.

    널, 만나기 전 엄마는 하늘나라 선녀였다.
    이제는 그 빛나던 선녀 옷은 낡아서 찢어져버렸고, 잃어버렸다는 말이 맞고,
    그래서 후회했느냐. 아니 한 번도 널 잊은 적이 없었다.
    절망의 강을 건널 수 있게 해 준 너,
    자만심마저 겸손으로 손 모으게 하였으니,
    푸른 아포리즘에 창창한 돛 달고 떠나는 나의 스물세 살......,
    부디 안녕!

      첨부이미지

     

    작가의 작품 해설 : "나의 메시지는 이렇다. 마음을 버리자. 그러면 그대는 신(궁극적 실제)에 다가갈 수 있다.

                               천진하라. 그러면 그대는 신과 연결될 것이다. 그대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떨어 버려라.

                               평범하게 되라. 그러면 그대는 비범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내면적 존재에 진실하라.

                               그러면 모든 종교들이 충족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마음을 갖지 않을 때 그대는 가슴을 갖게 된다.

                               그대가 마음 안에만 있지 않는다면 그땐 그대의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그대는 사랑을 갖는다.

                               무심(無心)이란 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이 곧 나의 메시지이다."

     

     

     익명의 독자가 선물해준 사진과 음악에  뒤늦게 감사를 보낸다. 한 마음에 또 한 마음이 보태어진 흔적을 보면서 미소와 함께 뭉클함이 생긴다. 실은 3년 전  저 졸글 아래 작가의 말은 직접  달았던 게 아니다. 아마 다른 내 수필에서 본 내용이거나 댓글로 나눈 대화를 덧 달은 듯 하다. 음악은 내가 깔았던 건지 새로운 음악인지 가물가물, 헷갈린다. 참, 유치찬란 꼴값이다 싶게 이미 날아간 흔적을 내 분신이라 고... 되가져 와 보듬고 있다니. 독자에게 미안하고(허락도 없이 훔쳐와서), 낯설기만한 수다스러움이 화끈 부끄럽고, 아이들은 괘안타 괘안타 그러지만 못 챙겨줘서 죄스럽고, 그렇다. 익명으로 살며 여전히 준 바도 받은 바도 없이 왕래와 소통이 지속되는지....모르겠다. 모르는 와중에 또 나는 누군가 익명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을 받으며 존재한다. 존재가 보이지 않는 영광속에서 성장한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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