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천상(天上)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새벽볔에 정원에 나섰더니 푸른 별꽃들이 수북히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하늘에서의 변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맨발을 하고 정원으로 걸어나가 바닥에 떨어진 별꽃 몇 개를 주워들었다. 한없이 투명한 푸른색의 별꽃들은 내 손 안에 놓이자마자 숨을 쉬듯 빛을 발하다가 금방 형체없이 사라져버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세상은 잠에서 깨어나기 전이었다. 바람마저 풀 위를 스치지 않았다. 정원의 나무들도 대기를 흔들지 않았다. 하늘과 대지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 시간, 나와 우주가 뒤섞여 아직 분리되기 전의 시간, 나는 대지에 떨어진 푸른 별꽃들 사이에 침묵하며 서서 그 충일한 시간 속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에냐의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이러한 시간. 나 오래 전에 이러한 시간을 잃어버렸었다. 그것들은 옛날의 불꽃처럼 시들어버렸었다. 한번 모퉁이를 돌아가자 그것들은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그 후 그것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방황했던가. 어려운 책들을 읽고, 인도에도 가고, 사막에서 잠들기도 했던 것은 그 옛날의 불꽃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다름아니었다. 마치 눈이 멀어버린 사람이 희미해진 눈동자로 부지런히 빛을 좇듯이.
나는 늘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죽어버릴 순 없다고 무엇인가 내 안에서 외쳤다. 그래서 나는 산에서도 살고 섬에서도 살았다. 늘 떠남 속에서 살았다. 나는 습관처럼 내 방의 한구석에 늘 여행가방을 챙겨두고 살았다. 그래서 누군가 말하듯이 ‘볼 것을 다 보아버린 사람처럼 한가로이’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생을 마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르 끌레지오의 신작소설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다. “나는 여행이 싫다. 사람들은 여행의 기쁨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차나 배를 타고 멀리까지 여행을 떠나지만, 난 정말이지 평생토록 한 장소에 머물고 싶다. 같은 곳에서 해가 지고 뜨는 것을 바라보며, 구름과 새가 지나는 것을 보고 꿈꾸는 것, 그런 삶을 나는 얼마나 누리고 싶어했던가!”
그렇다. 그런 삶을 나는 얼마나 누리고 싶어했던가!
다시금 내 눈이 옛날의 불꽃을 보게 될 날이 언제인가. 어젯밤에 그러한 순간이 잠시 내게 찾아왔었다. 하늘에서의 큰 변화가 내 마음 안에 변화와 감응하는 시간. 대지에 떨어진 푸른 별꽃들. 사실 이러한 시간들은 많지 않았다. 어떤 시간들은 잠시 내 생에 머물렀었고, 대부분의 시간들은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모래먼지처럼 흩어져버렸다. 꿈에서 깨어나 하늘의 큰 변화를 목격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나는 정원을 걸어 나오다 말고 다시 멈춰 서서 뒤돌아보았다. 아직 몇 개의 별꽃이 투명한 푸른 빛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의 세계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 마을에 마지막 집이 서 있다
세상의 가장 끄트머리 집인 양 쓸쓸하게
길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뻗어가지만
조그만 마을은 길을 붙잡지 않는다
이 마을은
두 개의 먼 나라를 잇는
간이역에 지나지 않는다.
-릴케의 <기도시집> 가운데 ‘순례의 서序’에서
류시화 산문집<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239~241쪽. 타이핑 채란
에뜨랑제를 꿈꾸던 시절의 목탄난로와 두 아들의 빨갛던 양볼이 생각납니다. 그 시절 그 언덕에서 만난 가로등. 그 불빛에 비친 그 눈발이 별꽃이었습니다. 그그그그 재생되는 시간으로 상처를 잊어가는 우리.
글을 읽는 도중 몇 번쯤 일어났다 앉았다 합니다. 지리산에 오르기로 한 휴일까지는 사흘을 기다려야 합니다.
유목민처럼 지내던 그 시절 난 정말이지 평생토록 한 장소에 머무르고 싶다는 르 끌레지오의 문장을 읊조리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저녁 무렵을 만나 집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오>
20120223-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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