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수자리은하수
별과 우주의 설법
별은 불안정할 때 물질을 밖으로 방출하면서 안정을 되찾아 간다. 여기서 열반의 길이란 간직하는 것이 아니고 비우며 베푸는 것임을 별들은 보여준다. 그래서 별들은 임종을 맞이할 때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열반에 이른다. 그러면 방출된 물질에서 다음 생명이 탄생된다. 인간도 자기 것을 버림으로써 열반에 이르고 또 이것이 다음 생의 씨앗이 됨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경우는 자연적이 아니라 인위적(유위적) 행위로 상태를 조절, 제어하므로 바른 말과 바른 행위를 하며 바른 생활을 하고, 바른 견해로 바른 사유를 하며 바른 마음챙김으로 바른 집중을 하며 바른 정진을 하는 팔정도가 필요하지만 별은 무위적 자연성을 따르므로 이런 팔정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 실은 별의 삶 자체가 인간이 배워야 하는 팔정도의 실현이다. 팔정도는 번뇌 망상을 여윌때 실현된다.
삼법인(三法印)의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는 일종의 구별을 위한 분별이다. 만유의 연기관계에서 일어나는 이들 현상을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분류한 것으로 자칫하면 허무주의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 우리는 苦란 말을 반드시 써야 할 필요는 없다. 삶이 苦라고 흔히 말하지만 이런 현상은 인간의 근본 특성이다. 苦가 있기에 낙樂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苦만 특별히 강조해야 하는가? 결국 넓은 의미에서 고는 일종의 사건일 뿐이다. 이런 사건들은 연기관계에서 항상 일어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보편성을 중시하는 불교에서 잡다한 분별적 사항들을 나열하며 대단한 철학적 사유처럼 논하는 것은 타당치 못하다. 인간을 포함한 만유의 존재성을 옳바르게 나타내고, 또 참된 삶을 바란다면 지극히 쉽고 상식적인 사유(思惟)로서 만물을 대하며 생각토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 '어려워진다'는 것은 일종의 지식이나 사유의 희론이나 또한 특수집단이 권위를 세우려는 조잡한 의도로 볼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의 조작이 없는 무위적 연기성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별들의 세계는 언제나 무질서해 보인다. 이런 무질서는 적극적 연기관계를 거치면서 더욱 심화된다. 무질서란 질서가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예쁜 여인의 조각상은 인위적 질서를 잘 갖춘 조형미를 지닌다. 그러나 비, 바람을 오랫동안 맞으면 조각상이 훼손되어 코나 귀가 떨어져 나가면서 조형미가 점차 사라져 가다가 언젠가는 아름답던 조각상이 무너져 흙으로 사라지게 된다. 즉 초기의 질서가 무질서의 극치로 변해간다. 그렇지만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조형미를 잃으면서 무질서해 보이는 조각상의 모습이 점차 조화롭게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각상을 만들기 전의 원래 있던 자연 상태로 이행해 가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상태라 한다. 즉 무질서의 증가가 엔트로피의 증가이고, 자연적 조화의 증가이다. 별들의 집단은 항상 무질서가 최대에 이르는 상태로 진행한다. 이런 현상이 집단이 가장 안정된 이완상태로 이행해 가는 과정이다.
인간의 참된 깨달음이란 것도 실은 무질서가 최대에 이르는 가장 조화로운 상태이며, 이것이 소위 무위성(자연성)에 이름으로써 무심, 무념에 해당한다. 따라서 깨달음이란 어떤 특별한 신비적인 상태가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런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천문학자 우주에서 붓다를 찾다> (2007, 도서출판 도피안사 '이시우' 지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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