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한병철<피로 사회>

미송 2012. 3. 17. 17:47

 

 만다라 무늬

 

 

세계의 긍정화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낳는다. 새로운 폭력은 면역학적 타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내재적 성격으로 인해 면역 저항을 유발하지 않는 것이다. 심리적 경색으로 이어지는 신경성 폭력은 내재성의 테러이다. 그것은 면역학적 의미에서 타자가 불러일으키는 공포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메두사는 아마도 최고도로 극단화된 형태의 면역학적 타자일 것이다. 메두사는 파멸하지 않고는 바라볼 수조차 없는 근원적인 이질성인 것이다. 이에 반해 신경성 폭력은 어떤 면역학적 시각에도 포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부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privativ하기 보다 포화saturativ시키며, 배제exklusiv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exhaustiv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소진증후군과 같은 신경성 질환은 바이러스성 폭력과 같이 여전히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의 면역학적 도식을 따르며, 시스템에 적대적인 특이한 개별자나 이질성을 전제하는 개념으로는 정확히 기술할 수 없다. 신경성 폭력은 시스템에 이질적인 부정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스템적인 폭력,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우울증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소진증후군도 긍정성 과잉의 징후이다. 소진증후군은 자아가 동질적인 것의 과다에 따른 과열로 타버리는 것이다. 활동과잉Hyperaktivitat에서 과잉haper은 면역학적 범주가 아니며, 다만 긍정적인 것의 대량화를 의미할 뿐이다.   

 

한병철 著[피로 사회] '신경성 폭력' 2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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