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최인호<유행은 폭력을 낳는다>

미송 2012. 2. 26. 00:33

유행은 폭력을 낳는다

 

 

나는 변신이란 말을 싫어한다. 변신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몸의 모습을 바꾸는 일이다. 그사람 자체는 변화하지 않고 화장이나 의상으로 모습을 바꾸는 일종의 변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신은 엄격하게 말해서 인간성을 변모시키는 변화는 아니다. 나는 21세기를 맞이한다고 해서 뚜렷하게 무엇을 바꿀 생각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는 것을 보고 답답해하고 컴맹인 내게 충고를 하곤 한다. 이어령 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내게 컴퓨터를 사용하라고 간곡하게 명령을 내리곤 한다. 그러나 나는 컴퓨터를 싫어한다. 최근에 나는 몇 번 문학상 심사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거의 100퍼센트의 작품이 이른바 컴퓨터 소설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컴퓨터가 문학을 하나의 지적 게임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컴퓨터가 내 문학을 더욱 심화시키고 근본적으로 내 문학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나는 서슴없이 컴퓨터를 선택할 것이다. 문단에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작가는 이제 몇 명 안 남아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난 죽을 때까지 원고지에 만년필로, 즉 육필로 쓰는 작가로 남고 싶다. 내 생각에 유행은 그것을 하나의 사조에 불과하고 그것은 재빨리 흘러갈 것이며 다시 흘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대매(大梅) 선사가 스승 마조(馬祖)를 친견하고 이렇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스승이 대답하였다.

“자네의 마음이 바로 부처다(卽心卽佛).”

 

이 말에 대매는 크게 깨달았다. 그는 대매산에 올라 그곳에서 30년 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이때 염관(鹽官) 화상이 법문(法門)을 열었는데 제자 한 사람이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었다. 산중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풀잎을 엮어 몸을 가리고 머리는 뒤로 해서 하나로 묶은 남루한 행색의 산사람이 오두막집에 살고 있었다.

길 잃은 중이 물었다.

“여기서 몇 년을 사셨습니까?”

그러자 숨어 살던 대매가 대답하였다.

“글쎄, 몇 년이나 됐을까. 오직 사방의 산이 푸르렀다가 노래지고 다시 푸르렀다가 노래지는 것을 보았을 따름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산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30여 년 전 나도 한때 마조 스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길 읽은 중이 물었다.

“마조 대사에게서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마음이 곧 부처”

그리고 중이 하산하는 길을 묻자 대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물을 따라 흘러가시오.”

대매가 가르쳐 준 대로 흘러가는 물을 따라 무사히 회중으로 돌아온 길 잃은 중은 스승 염관에게 산중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고하였다.

이에 염관이 말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강서에 있을 때 어떤 중이 마조 스님에게 불법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마조 스님은 ‘자네 마음이 곧 부처라는 대답을 해 주셨는데 그 후 30년 동안 그 사람의 행방에 대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네가 산에서 만난 그 산사람이 아마도 그 사람인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염관은 몇 사람의 제자를 불러 놓고 산에 다시 들어가 그 산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라고 일어 주었다. 염관의 명을 받은 제자들이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대매를 만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요즘엔 마조 스님께서 좀 달라지셨습니다. 예전에는 ‘마음이 곧 부처’ 라고 말씀하셨는데 요즘에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에 대매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늙은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 버렸나 보다.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군. 그러나 그 늙은이가 그렇게 바꾸어 말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로지 ‘즉심즉불’, 즉 ‘마음이 곧 부처’일 뿐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스승 마조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서산에 매실이 다 익었다. 가서 마음 놓고 따 먹어라.”

여기서 서산의 매실이란 바로 대매산에 살던 대매 선사를 이르는 은어인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흘러간다고는 하지만 진리는 변치 않는다. 세월에 따라 진리가 변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인간의 가치관에 따라 진리가 ‘즉심즉불’에서 ‘비심비불’로 변한다면 그것은 유행이며 하나의 사조(思潮)에 불과한 것이다. 21세기의 새 천년이 온다고 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진리가 퇴화되거나 거세되거나 변화된다면 이는 하나의 궤변에 불과하다. 오히려 컴퓨터를 통한 쓸데없는 엄청난 정보의 쓰레기들로 인해서 인간의 가치관은 한층 복잡해지며 따라서 보다 분명하고 확실한 가치관의 선택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나는 우연히 기도문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보면 볼수록 그 내용이 좋아서 책상머리에 두고 읽고 있는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다만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라고만 알려져 있는 그 기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 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 늙어 버릴 것

을 저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

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

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참

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에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제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

소서. 제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 가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

고 싶은 마음들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

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 주는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고 감히 청할 수는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힐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저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 주소서. 저는 성인聖人까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

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

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는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

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

을 주소서. 

아멘

 

21세기를 맞이하여 내가 바랄 수 있는 희망이란 바로 이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문’처럼 곧 닥쳐올 노년기에 내가 심술궂은 늙은이가 되지 않는 것 하나뿐이다. 제발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는 것이 내 소망이다. 또한 무엇에나 올바른 소리 하나쯤 해야 한다고 나서는 그런 주책없는 늙은이, 위로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신체의 고통을 호소하는 그런 늙은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 그리고 하나 더 바란다면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전혀 변치 않는 진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죽는 날까지 간직할 수 있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최인호<산중일기> (2008, 랜덤하우스코리아) 중에서.

 

 

최인호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벽구멍으로>가 당선되었고,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견습 환자>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로는 그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이정표들을 세우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다. 소설집으로<타인의 방>,<잠자는 신화>,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 등이 있으며,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해신>, <유림>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카톨릭문학상, 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보선<종교에 관하여>  (0) 2012.03.15
노정희<결>  (0) 2012.03.05
이병률<고양이 감정의 쓸모>외 2편  (0) 2012.02.24
그물과 물고기  (0) 2012.02.22
틱낫한 <실존>外 1편  (0) 2012.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