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뻬드로 살리나스 <더욱 멀리 가는 물음>外 3편

미송 2016. 1. 17. 00:03

 

 

뻬드로 살리나스

(스페인, 1892~1951)

봄의 시, 사랑의 시

 

살리나스는 1923년 <예감>에 이어 1929년 <확실한 우연>, 그리고 1931년

<우화의 기호>를 펴낸다.

이 마지막 시집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서정시들이 있다.

 

 

 

 

 

더욱 멀리 가는 물음

 

왜 나는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가?

난 장님도 아닌데,

네가 여기 없는 것도 아닌데

네가 오가는 것을

보면

너, 너의 높은 높은 키는

너의 목소리에서 끝난다

 

하나의 불길이

연기로 끝나듯

손에 닿지 않는 대기 속의

너,

그래, 그래서 난 묻곤 하지

너는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너는 누구의 것인가?

 

그러면 너는 팔을 벌리고

내게 너의

그 높은 자태를 보여준다

너는 나의 것이라고,

그러나 나의 물음은 늘 끝이 없다.

 

 

 

 

너로 인한 목소리

 

어제 나는 너의 입술에 키스했다

너의 입술에 입 맞추었다 응축된

빨간 입술, 하나의 입맞춤은 너무나 짧아

번갯불보다 기적보다

오래 남았다

 

시간은

너에게 바친 시간은, 그 후

아무 쓸모가 없어졌다 내게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전에 그 시간이 필요했었나보다

 

시간은 그때 시작하고 그때 그 속에서 끝났다

오늘 나는 하나의 입맞춤과 키스하고 있다

나는 나의 입술과 홀로 남았다

나는 나의 입술을

이제 너의 입이 아닌, 이제 그건 아닌

-아, 어디로 도망간 걸까?-

네가 준 입맞춤 위에

내 입술을 댄다

 

어제 서로 키스하던 그 입맞춤의

그 한데 붙은 입술 위에

이 입맞춤은

침묵보다, 빛보다 오래간다

살도 입도 없는

자꾸만 달아나는 자꾸만 내게서 멀어져가는

원경을 향한다

아니다, 너를 키스하는 게 아니다

나의 키스는 더욱 멀리 가고 있다

 

 

 

 

너의 꿈가에서

 

여기,

네가 잠든 침상의

하얀 물가에

너의 꿈의

언저리에 앉아 있다 내가

한발만 더 다가가면

너의 물살 위에

떨어지겠지, 수정 같은

너의 꿈을 깨트리며,

너의 꿈은 온기가

나의 얼굴까지 올라온다 너의

숨결이 너의 꿈의

행방을 재고 있다 서서히

걸어가는, 들고 나는

숨소리가 가벼이,

꿈꾸며 사는 너의 리듬을

정확하게, 보물처럼

전해준다 너를 본다

 

너의 꿈을 데우는

화로를 본다 너는 너의 몸 위에

가벼운 투구처럼

화로를 얹고 있다 화로는

너를 경건하게 에워싼다

너는 다시 처녀가 되어

온몸으로 벌거숭이로

너의 꿈으로 간다

 

물가에는 안타까움과

입맞춤만 남는다 너를 기다리며

네가 눈을 뜨고

아마도 돌아갈 수 없는

너의 존재의 성을 열고 나올 때까지

나는 너의 꿈을 찾는다 온 마음으로

고개 숙여 눈길로 에워싼다

 

말갛게 비치는 너의 살결 위로,

다정하게 너의 육체의 흔적을 젖히고

그 뒤 숨겨진 너의 꿈의

형태를 찾는다 꿈은

잡히지 않는다 마침내 나는

너의 꿈을 생각한다, 난

네 꿈을 해몽하고 싶다, 해몽은

쓸데없다 비밀이 아니다

그것은 꿈이다 신비가 아니다

 

문득 한밤중 침묵 속에

나의 꿈이 너의

몸뚱어리 가에서 시작된다

그 속에 너의 꿈을 느낀다

너는 자고, 나는 뜬눈으로

너와 나는 하나의 꿈을 꾸고 있었다

더 이상 찾을 것이 없었다

너의 꿈은 나의 꿈.

 

 

 

 

이제, 여기 너는 내 앞에 있다

그 많은 투쟁도 어려움도

잠 못 들고 밤을 지새우던 열정도

그 많은 좌절의 고비도

이제 이 조용한 광휘 앞에

이젠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잊혀진 과거

그는 남는다 그리고 그 속에 세상도

장미라든가 돌, 새,

그리고 그들, 그 맨 처음의 무리들

이 마지막을 겁내던 철새들

이미 자명한 것들을

아직도 더 밝게 밝힐 수 있지

이런 게 더 좋다, 태양도 모르는

햇살 하나, 밤도 없는 빛들이

이들을 비춘다, 영원히.

 

 

민용태<스페인· 중남미의 현대시의 이해2>(1997, 창비) 54~64쪽 일부.

 

20120325-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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