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이 1년이라고 찍힌 해태 에이스 크래커를 먹는다. 자그마치 1년을 두었다 먹어도 괜찮다는 뜻인가. 추억을 씹을 냥으로 쩝쩝거리다가 하필 숫자에 눈이 박히다니. 멈칫하다가 그래도 다시 먹는다. 아이들 서 너살 무렵에 가장 좋아했던 비스킷, 커피와도 궁합이 잘 맞는 에이스가 아닌가. 사람들은 아예 맛없는 과자 취급을 하면서 물리쳐 놓기도 하고, 나도 그래왔지만 1년에 한두 번은 에이스를 산다. 그건 에이스 새로운 맛에 대한 기대라기 보단 추억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겠지.
마늘쫑다리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아침. 우연찮게도 어린 시절의 먹을거리 얘기가 나와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군것질거리를 찾던 아이는 장독대로 올라가 항아리 뚜껑을 열고 고추장에 푹 박아 놓은 삭힌 마늘쫑 다발을 들고 씹어 먹었다. 그것은 아마 내게는 희미한 기억이지만 나 보다 10년 전 세대들에겐 생생한 추억인 듯 하다. 그렇게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의 얘기를 듣는 건 마치 밤새 좌뇌가 배설해 놓은 도깨비 꿈을 고집쟁이 우뇌의 논리로 수습하려는 일만큼 우습다. 거짓말 같이 들린다. 그러나 추억은 왜 항상 童話로 살아나서 어른들의 맘을 흔들어 놓는지.
여자애들의 시커먼 고무줄을 뭉태기로 끊어 달아나던 철우, 담벼락 아래 올망졸망 모여앉아 딱지를 열라게 비벼대던 머슴애들, 큰 구슬 작은 구슬 모아놓은 오빠의 마루 그 틈새로 들이비치던 햇살의 웃음. 점심시간이면 미루나무 아래 앉아서 목련꽃 그늘 베르테르의 시를 읽노라 상상하던 새침떼기 소녀(지금 말로 왕따) 등등, 어른스레 말하자면 그것은 주마등처럼 스치는 풍경들이다. 내 나이 아홉 살 때 아빠가 부대에서 사들고 오신 여름잠옷-귀여운 꽃무늬와 레이스가 온통 예뻐서-을 입고 자랑삼아 학교에 등교했던 추억까지. (그때 친구가 내게 다가와 "얘, 너 왜 잠옷을 입고 학교에 왔니?" 그랬을 때 난, 끝까지 잠옷이 아니라 그냥 드레스라고 우겼고 우겨댈수록 약이 올랐다) 우리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현재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 모든 추억과 실수와 굴러다니던 웃음과 보이지 않은 눈물까지도 영원과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닐까.
세월이 너무 많이 바뀌었어. 사람의 마음도 많이 달라졌어. 이젠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진풍경 아이들은 볼 수가 없고, 병든 남편이 교통사고로 단 번에 죽었다고 축하해 주는 이웃 할머니들은 있어도 초상났다고 곡하는 이들은 사라졌고, 그래서 살고 죽고 들고 나는 일이 왠지 죄다 이벤트 같기만 해. 가난하던 시절 아이들을 키운 건 과자나 빵이 아니라 햇볕이었다. 나무가 흙 속에 뿌리를 심고 살면서 햇볕을 먹고 쑥쑥 자랐듯 우리도 나무였다. 몸의 8할이 물과 공기와 햇살이었던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한 게야!
된장 고추장 항아리에서 건져 먹던 무와 마늘장아찌의 맛을 되돌릴 순 없을 것이다. 내 이 십대의 가난과 추억을 고스란히 옮겨주는 그 에이스의 부드러운 맛을 되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것은 추억이 주는 뻔 한 회한이지만 그래도 변심하거나 변질된 맛만을 탓할 순 없는 일이니. ‘맛’ 이란 눈 뜨기전 2초간의 꿈조각처럼 반짝 달아나 버리기 일쑤여서 진정이니 진실이니를 그 어디서 찾기도 어려운 일. 그러나 짜깁기를 하듯 내 오른쪽 뇌는 여전히 고집깔스럽게 꿈과 추억과 유년의 넓은 운동장을 편집하고 있다.
2012. 4. 6 오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