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생생한 / 오정자
이틀이 지났는데도 그 꿈의 당혹감은 지워지지 않는다 시간대를 알 수 없는 하늘과
자주자주 불그죽죽한 비가 내렸는지 흐릿한 조명 아래의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고 지나치게 높은 까만 의자는 폭신했지만 낮은 내 앉은 키를 무시하고 있었다
군중 속에는 아는 얼굴도 모르는 동물들의 표효도 뒤섞이어 있어서 공명의 목소리만
을 의식하려고 그들 속에서 나를 찾으려는 허구에 기울고 있었다 한 쪽 끝에선 누군가
가 포도주잔을 치켜들고 건배를 청했을까 꿈을 꾸며대고 있는 지금의 나처럼 뜨거우나
뜨겁지 않았던 사랑했으나 증오와 함께 키워야 했던 그 남자의 우스꽝스런 바지는 터무
니없이 늘어나 있었다 그동안 8인치 정도는 더 넓어졌을 허리띠를 풀며 그가 어릿광대
춤을 추려는지 원고도 없이 떠들던 설교 내용도 없는 사랑의 부재를 외치려 했는지 지긋
지긋하게 또 그가 군중 앞에서 핫바지 춤을 준비하고 있을 때 피아노 앞에 앉은 나는 첫
곡을 울려야 하는 나는 가면 갈수록 잃어버리기 일쑤였던 악보들을 두리번대고 있었다
인산인해의 거름 속에도 까만 별의 눈동자 속에도 편편한 받침대 위에도 없던 나의 악보
들 거기까지가 꿈이다 쿨하게 끝나줘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여전히 날 슬프게 하려는지
꿈은... 깨어난 후에도 악보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