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시] 공(空)

미송 2012. 6. 18. 05:18

 / 오정자

 

꽃잎이 자라고 유리관이 누웠고

유리관 속 벌레가 누웠고

걷고 있는지 기고 있는지

꽃잎들이 통 속을 메우면 난 죽어요

그 남자가 꽃잎을 치우며 앞으로 간다

유리관이 깨지지 않는다 막처럼 단단하여서

벌레가 비쳐드는 망막에는

비호감非好感 비호감庇護感이란 글자만 찍힌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낙엽들 하늘로 떨어지고 꽃잎들 땅 아래서 자라고

벌레들 걷고 사람들 꿈틀대면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쌓는다

꽃잎들 벌레와 사람을 걷어내면서

질식할듯 묻는다

이것들을 치워 주세요 꿈적거리지 마세요

벌레가 사람처럼 걷는다

유리관 속에 낱말카드 하나 넣어 본다

유리관이 물관처럼 유영游泳하기 시작한다

관세음觀世音의 눈 속에서

 

 

 

 

 

'채란 문학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 미완의 주제로 끝나는 별 이야기   (0) 2012.06.23
[시] 백업  (0) 2012.06.21
[시] 천화(遷化)   (0) 2012.06.16
[시] 나뭇잎 연서  (0) 2012.06.15
[수필] 리포트를 쓰며   (0) 2012.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