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시] 백업

미송 2012. 6. 21. 07:34

 

/ 오정자

 

달리는 자동차에
슬로우로 길 건너는 탁발승의 옆모습이 스치네
차머리 돌려 낡은 배춧잎 한 장 꽂아주네
삭발한 머리위로 솟아나는 물잔디
인욕바라밀로 돌아가고 있네
아무도 모르게 찬비 맞으며 건너가네
가련하여 아름다운 비오는 날의 진풍경
돌아와 나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네
물기 마르기 전 어깨를 닦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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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내게 낯설고 무척 어렵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동경하는 세계다. 언젠가 인욕바라밀이란 용어를게 되었는데, 사람은 자기 지식의 틀로 새로운 것을 해석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 용어를 기독교적 개념으로 재었던 것 같. 자기수행을 위해 한 삼년 굶기도 하고 욕을 들어도 고 견뎌야 한단 소리를 들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뭐런 법이 다 있을까, 억울해 했던 기억이다

비오는 날 젊은 수도승의 머리 위에 파랗게 피어오르는 물잔디를 보았을 때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 순간 파르르한 그의 머리를 만져보고 싶었다. 인욕바라밀을 실천하는 중이었을까, 그 20대 스님의 입술은 연신 움직이고 있었다. 비오는 날의 중 염불이라기 보단 무언가에 미친듯하단 느낌이 압도적이었다.

슬로우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잠시 뒤를 돌아본다는 것, 백업된 상태로의 나를 응시한다는 것, 그건 회한만은 아닐 것이다. 찬비를 그대로 시절, 가난해서 억울해 했던 시절은 안일함이 쌓일수록 재생해도 좋은 날들이 되어 간다. 뜨거운 샤워를 미안해했던 저 순간처럼 오만을 씻으며 걸어 가야지 다짐해 본다. 무의식의 평온을 누린다는 것, 그 바라문승婆羅門僧만의 지복은 아닐 터이니…….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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