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미완의 주제로 끝나는 별 이야기 

미송 2012. 6. 23. 10:09

 

미완의 주제로 끝나는 별 이야기

 

오정자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는 건, 때로는 사념邪念의 울타리에 갇히기도 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5월과 9월 사이, 별에 관한 글 일곱 편을 읽고 얌전히 모셔두는 일 외에 별에 대해 특별히 더 생각한 건 없다. 별 자체가 결국 무無로 흩어져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에는 거대한 폭발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는 그의 초신성에 대해 들었을 땐 슬프기도 했다.

 

 

별에 대한 진부한 사고思考를 가진 내가 오늘은 횡성을 지나 영월 방면의 푯말을 따라서 월현리라는 천문인 마을을 들렀다. 예약도 없이 찾아갔으니 답사하러 간 셈이지만, 별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일교차가 심해 사방이 춥고 어둡게 느껴진 초가을 저녁, '차가운 별들의 행진이야-' 라는 낭만스런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오늘 본 어떤 별은 그야말로 수백만 년 전 과거의 별이라는데. 빛의 입자에 따라 동그랗고 길쭉하게 보이는 모양이라니 결국 사물의 이름이나 모습이 빛의 결정에 의해 반사된 그림자가 아닌가. 먼 과거를 오늘의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또 얼마나 비상非常했던지.

 

한 여름 밤 텐트 밖으로 머리를 쏙 내밀었을 때 텐트 위로 마구 쏟아질 것 같은 별을 상상하였다. 별은 새벽에 보는 별이 진짜다. 나는 텐트 바닥에 누워 별을 세고 너는 내 위에 엎어져 내 눈 안에 든 별을 세는 그런, 먼 먼 과거의 빛 조각 하나의 사연을 들으며…!

 

소백산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의 높이는 1394m. 우리는 구름바다 속 수심 1300미터쯤에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별을 찾아 나서는 일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설렘이기도 하나 여전히 낯설음이기도 한 여행. 오늘 초저녁에 별을 찾아 나서기로 한 건, 별을 오래 생각해 왔다는 스스로의 당위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치한 놀이만도 아니었다. 목적을 두지 않은 여행이 오랜 그리움이었듯. 별은 그 오랜 기다림조차 망각하며 날아온 한 줄기의 빛으로 육안에 마침표를 달아 준 어떤 실체였다. 비록 수천 억 년 전의 빛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산 물고기떼처럼 펄떡이던 내 20대 시절, ‘가자 장미여관으로’ 를 한창 외쳤던 마광수씨는 요즘도 역시 별을 읽고서 기껏(?) 에로스를 생각했다고 한다. 에로스 안에는 필리아나 아가페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기초한 '미적美的 숭경崇敬'은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든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랑의 본질이라고 갈파하였다. 그런가? 그럼, 나는 서른세 살에 죽은 예수를 한 번이라도 이성으로나 관능으로 만난 적이 있었던가, 별을 보다가 뒤통수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아프고 슬픈 기억은 생명력을 소진시킨다. 그러므로 망각忘却은 자기보호 수단이라는 변명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 그 심사만큼이나 고집스럽고 두터운 별빛이 암벽을 뚫고 스며든 것이다. 정체불명의 보호자. 기억의 편집編輯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았을 것 같은 별빛이 그믐이면 더 환해지기도 할 테지만, 그 역시 한 순간 여자의 망각 속으로 떠날 빛이런가. 어린 시절, 자정 넘어 화장실에 갈 때면 마당 가득 뿌려졌던 그 별인데, 오늘은 왜 처음 만나는 것처럼 깊은 산속까지 찾아들어 별을 보았을까. 소백산 천문대의 직경 61센티미터의 망원경으로 별을 살폈던 추억도, 천문학자를 만나 별에 관한 이야기를 소상하게 들었던 경험도 없는 내가, 초승달에 가려져 마냥 희미하기만 한 별을 보며 오늘은 왜 길게 이야기를 꾸미려 했을까. 겨울신화에 대한 동경일까.

 

 

산바람과 습도와 별은 맨 눈으로 보기에 그리 녹록하진 않았다. 사방에 넘실대는 하얗고 보드라운 물결 ‘산 위에서 보는 구름바다雲海’ 라는 표현을 일면식도 없는 작가 K에게서 패러디하고 있는 나는, 바다 한 가운데에 세워진 천문대에 올라보지도 않은 나는 별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것이나 그것 또한 별은 무심의 시선으로 볼 것이니. 저 홀로 달려와 수천 광년의 빛을 조막만한 가슴에 투영시키고야 만 그는 내 오랜 독자讀者이거나 독자獨自!

여름밤 남쪽 하늘에 주전자 모양으로 떠 있는 궁수자리 안에는 무슨 요염한 여자가 앉아 술을 따라주는 것도 아닐 텐데. 어쨌든 남녀 없이 모두 별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희한한 질문을 늘리며.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에 아무 걱정도 없이 별을 헤이고, 설령 다 헤이지 못하더라도 염려하지 않겠다던, 차분한 윤동주를 생각한다. 68년이나 지난 가을 밤에 나는, 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라고 노래한 한 남자를 음미하는 것이다. 수억 년 전 이미 죽었다 되살아 온 별빛을 보듯.

 

ET는 눈알이 크고 팔 다리가 소말리아 아이처럼 말랐다는데, 그래서, 중력이 약한 별에서 부유하던 뼈나 관절이 지구로 되돌아오면 흐느적대며 힘을 못 쓴다는데, 그렇다면 직립을 돕는 지구의 중력은 비행飛行 이전의 아름다운 간섭이란 뜻인가. 아무튼 별은,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갈래갈래 풀어놓으므로 하여 이야기꾼들의 마을을 영영 떠나지 못할 것 같으니…….

 

 

 

 

200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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