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허연, 「사선의 빛」

미송 2012. 8. 20. 11:01

허연, 「사선의 빛」

 

끊을 건 이제 연락밖에 없다.

비관 속에서 오히려 더 빛났던

문틈으로 삐져 들어왔던

그 사선의 빛처럼

사라져가는 것을 비추는 온정을

나는

찬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빛이

너무나 차가운 살기였다는 걸 알겠다.

이미 늦어버린 것들에게

문틈으로 삐져 들어온 빛은 살기다.

갈 데까지 간 것들에게

한 줄기 빛은 조소다

소음 울리며 사라지는

놓쳐버린 막차의 뒤태를

바라보는 일만큼이나

허망한 조소다.

문득

이미 늦어버린 것들로 가득한

갈 데까지 간

그런 영화관에 가보고 싶었다.

 

시·낭송_ 허연 - 1966년 서울 출생. 시집 『불온한 검은 피』『나쁜 소년이 서 있다』『내가 원하는 천사』와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등이 있음. 현재 매일경제신문 기자.

출전_ 『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지성사)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이 시가 실린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는 매 시편이 독자를 강하게, 편안히 끌어당긴다. 독자가 시인들에게 마땅히 기대하는, 예민한 촉수와 사려 깊은 시어들이 도드라지는 시편들. 마치 새 면도날로 싱싱한 흰 살 생선을 살살 발라 맛깔스럽게 접시에 담아 놓은 듯,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고 섬세하다. 한 마디로 준수한 시집인데, 맹물 같은 준수함이 아니라 뭔가 있어 보이는 준수함이다. 결기도 있고, 비애도 우수도, 환멸도 연민도, 유머센스도.
“바람이 분다. 분석해야겠다.”(「소립자2」에서)
이 구절에 허연 시인의 비장의 시작법이 담겨 있지 않을까?
「사선의 빛」은 『내가 원하는 천사』에 만연한 멜랑콜리와 스프린(spleen)의 선을 넘은 시다. 이미 늦어버렸다고, 이제는 자기가 이 세상에 거의 속해 있지 않다고, 문 닫아건 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이에게는 문틈으로 삐져 들어오는 사선의 빛이 낯설고, 적대적으로 느껴질 따름이다. 기웃거리는 문밖의 온정이 조소처럼 느껴질 따름이다. 그도 외롭고, 돌이킬 수 없이 낯설고 적대적이 된, 이미 절연을 결심한(절망적인 토라짐, 하나 남은 슬픈 권세) 이의 근처를 서성일 이도 외롭다. 속수무책의 외로움.
시인의 외롭고 슬픈 시구가 하나 더 떠오른다.
“사료 값 안 나온다고 들에 버려진 돼지. 들개처럼 마을을 돌아다니던 돼지. 오래 굶어 코만 돼지고 몸매는 개를 닮았던 그 돼지.”(「뭉크의 돼지」에서)
지난 6월, 마지막 한 마리 남은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이 100세를 일기로 죽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다. 홀아비로 살아온 그의 이름은 조지였는데, ‘솔리타리오 조지’ ‘론리 조지’ ‘외로운 조지’로 불렸다고 한다. 뭉크의 돼지랑 갈라파고스 조지랑, 어느 쪽이 더 외로웠을까. <
문학집배원 황인숙>

 

 

 

멜랑콜리하기로 定하면 끝없이 멜랑콜리할 수 있겠다 생각하는 게 멜랑콜리다 봐라 세 번 써도 단박 그런 기분이 들 것 같은 기분이지 않니 아니라구 안이 바깥보다 좋으면 좋구 반쯤은 개 반쯤은 돼지 반쯤은 코끼리 반쯤은 거북이 반쯤에서 꼭 경계를 그리는 그림들 관념들 개념들 언어들 어쨌든 이 순간도 너와 나도 정확한 발음과 타이핑을 해야지 삐끗 개념을 잘 못 타자했다간 큰일 난다 정말 얼만큼 가야 갈 데까지 가는 것 갈 데까지 간 영화관 박물관 기타 등등이 될진 모르지만 갈 데까지 가면 갈대 또는 출발선 억새 닮아 헷갈리는 갈대 그것도 새출발선이 그려져 있지 않을까 웬 비틈인지 모르겠지만 누가 알 게 뭐야 하면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