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의사들」
이마에 손바닥을 올리고 눈을 감는다. 아닌 것 같다. 맞을 수도 있다. 병원에는 안 갈 것이다.
어떤 것 같아? 사람들이 내 이마를 만지기 시작한다. 이봐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 하나같이 눈을 감고 고개만 갸웃거리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눈을 감을 때. 나는 눈을 크게 뜬다.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냥 평범한 감기 같아. 비로소 네가 고개를 든다. 그런 것 같애. 한숨을 크게 쉬고, 나는 다음 사람에게 간다. 어떤 것 같아?
나는 겁이 나지만 마스크는 쓰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늘 혼자 있었다.
무척 쓸쓸한 시「의사들」에서는 대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근원적 공포가 배어난다. 중병과 고립에 대한 어린애 같은 공포. 삶의 아주 변방에 처하는 데 대한 공포. 정말 중병이면 어떡하지!? 화자는 무서워서 병원에도 못 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기나 한다. 나, 어떤 거 같아? 그런데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사람들 다 그런 것 같다.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중병인데 서로 눈을 감고 ‘평범한 감기’라 그러는 것 같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늘 혼자 있었다.’ 사람들은 중병에 걸린 사람을 피한다. 그 사람을 죽음보다 앞서 고립시킨다. 아직 병원 갈 용기는 못 내지만 화자는 “살만하다네!” 지어내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꾸 묻고 다닌다. ‘어떤 거 같아?’.
이 시가 실린 시집 『에듀케이션』의 주인공은 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는 연배, 즉 미성년자다. 시집 배경도 따라서 미성년의 세계다.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하는 미성년이 아니라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보호 받지 못하는 처지의 미성년, 쥐처럼 도둑괭이처럼 쫓기거나 무시당하는 미성년. 세상이 무섭기만 무섭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쓸쓸할 밖에. 볕 들 날 없는 듯한 그 쥐구멍 세계를 주인공은 ‘나는 쓸쓸한 내가 마음에 들거든’(시 「영향력」에서)의 힘으로 개축한다. 세 살 팔자 여든까지 간다고, 무섭고 쓸쓸한 미성년을 보낸 사람은 무섭고 쓸쓸한 성년을 살기 십상이다. 나이를 잔뜩 먹은 뒤에도 세상으로부터 미성년 취급 받는 처지이기 십상이다. 어떤 사람은 성년으로 잘 자랐다가 미성년이 되기도 한다.『에듀케이션』이 보여주는 미성년의 악몽은 같은 미성년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독자라도 마음이 휘뚝거려지게 만들 것이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같은 부대 동기들> <부담>으로 언젠가 감상글을 적어 보기도 했던 김승일 시인님의 시를 다시 접합니다. 어제 열고 오늘 다시 열어 한 번 두 번 그리고 다섯 번쯤(거듭 읽다보니, 뭔가 시인이 걸어놓은 리듬의 마술에 빠졌었나 하는 무의식의 의식도 들면서) 읽습니다. 시와 감상글 둘 다에 힘찬 박수를 칩니다. 나만의 공감백배인지 몰라도 아하, 감탄사를 흘리며 웃습니다. 노력하면 되는 것이 예 있구나! 그래 이해가 돼, 무슨 뜻인지 무슨 의미인지. 예리한 황인숙님의 펀치도 멋지고 김승일 시인의 스피드한 목소리와 글재주도 한 방 먹였다 싶습니다. 물론 어떻게 이해했는데요? 무슨 감感이 가셨나요? 물으면 그냥 웃지요! 하고 지금은 생략(아니 길게 주절댈 수도 있지만). 자정 앞에서 나는 두 사람의 핑퐁(또는 개인적 기술)에 박수를 보냅니다. 곱씹었다고, 이런저런 연상작용과 상상 속에서 즐겁게 들었다고, 자알 감상했다고, 아직도 이렇게 시와 시인들에게 꾸벅 감사하는 내가 행복합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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