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박정대<펄럭이는 숨결 속에서>

미송 2012. 9. 1. 11:28

펄럭이는 숨결 속에서 / 박정대

나는 나뭇잎처럼 아프게 될 것 같다
그대여,
아무래도 나는 나뭇잎처럼 퍼렇게,
퍼렇게 멍들며 아프게 살아갈 것 같다

그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나의 노래를 잊었네
잊혀진 노래 사이로 바람이 불어 나,
나뭇잎처럼 얇은 가슴 하나로 펄럭였네

가면을 벗어버리고
숨소리조차 한없이 떨고 있었네
누가 나의 숨소리를
함부로 사랑이라고 말하는가
나는 그대의 침묵 앞에서도
깃발처럼 펄럭이는데

그대여,
조용히 나에게로 와서
내 핏속을 강물로 흐르는 그대여
노래를 잊은 곳에서 나,
그대를 생각할 때마다
푸른 한 잎의 섬으로 돋아나노니
이 한없이 쓸쓸한 숨결을 누가 사랑이라고 하겠는가

아, 나는 가면을 벗어버린 벌거숭이 영혼,
그대를 보는 순간 한숨의 거미줄에 사로잡힌
아픈, 사랑의 現存


 


'가면'이란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하면서 과연 그는 무엇을 벗고 싶었을까요. 나뭇잎처럼 펄럭이다 또 나뭇잎처럼 굳어져 가는 것들. 그리고, 그러나 '한숨'이란 관념의 가는 줄(線)에 다시 얽어매는 현존은 또 무엇일까요. '오지의 행성에서 오지 않는 신비를 기다리는 늑대사냥꾼처럼 나는 푸른 눈동자를 가진 한 마리 시를 기다리며 밤과 새벽의 영토를 기꺼이 고독과 침묵에게 내어줄 것이다' 라고 했던, 지난 여름의 시인의 말도, 문득 지나치며 다시 보니 참! 관념덩어리다 싶어요. 무엇이 신비이며 무엇이 현존인가요? 무엇이 가면이며 무엇이 벌거숭이 영혼인가요? 그 '무엇'으로 똘똘 뭉쳐진 당신은 늑대인가요 사냥꾼인가요? 아무 것도 그 무엇도 아닌 나뭇잎, 나뭇잎을 전, 그냥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냥...그냥.

 

태풍 그 이후의 나뭇잎들은 누렇게 혹은 짓무른 색으로 뿌리와 함께 눕거나 지쳐 쓰러진 모습입니다. 걷어 내야겠죠. 내 안에 쓸쓸한 나뭇잎이라 말을 했지만 나뭇잎은 사람의 손길을 기다린 듯 제 자리에서 숨 쉬고 있군요. 타인을 느끼는 기능이 없는 것 같은 그래서 마치 내 분신과도 같은 저들을 쓸어 담고 잘라 내고 하면서 발견합니다. 그들의 수풀 속에서 이름 모를 붉은 꽃이 줄기를 뻗히며 기어오르고 있었음을. 그 이름 모를 새로운 꽃과 줄기를 선물하려, 한 닷새 회오리와 빗줄기는 그토록이나 거세었나 봅니다.

 

현존? 과거? 환한 미래? 그런 것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나뭇잎의 촉감이 내게로 전이된 이 아침, 숨결이 느껴졌다는 것 뿐. 다시 말해 내가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다는 사실 밖에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