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놓은 유리병에 물을 담아 흙 위에 붓는다. 게으른 여자가 갑자기 부지런해진다.
화초에 대한 예절이란 게 그러나 이 정도뿐이 안된다. 뿌려줘야하는 걸 알면서도 쿨렁 들이붓는 이 거칠은 예의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므렸던 꽃잎들이 입을 벌린다. 홀린 듯 보다말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이 사랑초가 언제까지 이런 모양으로 살 수 있냐고 묻기 위해서다.
"가꾸기에 따라 가을까지도 그렇게 폈다 오므렸다 하며 예쁜 짓을 할 거야."
붉은 마음이 그네를 탄다. 화초나 사람이나 가꾸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달라진다고 덧붙여 일러주시는 아버지.
여자도 그와 같을까. 감출 수 없는 가난이나 사랑이 구두 끝과 기침소리로 들통이 나듯 목마른 목숨들마다
생수를 기다리는 손짓으로 자신을 감추지 못하는 사랑초가 아닐지.
물과 태양 습습한 거름내음, 가끔은 인격인 냥 오곤도곤 도닥여주는 주인이 산다는 것에 풀들도 행복해 하고 있을지.
타들어가는 그리움에 다 시들기 전 우리도 이렇듯 서로서로 주인이 되어 줄 일이다.
2008. 5 수필 '그 꽃' 中
거울을 보듯 옆 사람을 쳐다보며 이렇게 나눠보면 어떨까.
‘나 모지라는 사람 맞지?’
‘으응.... 근데 나도 모지라는 사람인데... 히’
‘모지라는 거에 모지라는 거를 합치면, 뭐가 되지‘
‘낄낄… '
'까르르르... ’
많이 모자랄수록 많이 넘친다는 원리가 분석으로서 설명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법을 모르는 바보들은
풍선만 팡팡 터뜨린다. 언어로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완전한 존재란 결코 부재하는,
인생은 미완의 아름다움으로 황홀하고. 하여 시인이나 작가는
지상에 부재하는 그 무엇을 향해 끊임없이 비상을 시도한다. 스스로를 불사르려는 고통의 작업,
이 고통이 고통에만 머무를 수 없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통해서만 불멸의 존재로 화할 수 있는 까닭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제 존재를 증명하려는 이가 어찌 시인뿐이랴.
모든 존재는 다 시인이며 언어의 순례자들인 것을.
2008. 2 수필 '미완이거나 혹은' 中
스스로 좀 더 약해지면 무거운 짐들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일과 사랑 그 밖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소유로부터 새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삶, 거짓 명성들로 인하여 질식하지 않을
자유를 원하고 있다. 훼손하지 않는 전체 속에서 완성된 나로 살아 갈
아름다운 날에게 침묵의 악수를 건네고 있다.
현재는 소중한 선물이기에 불면의 커피를 마시는 이 순간도 찬연한 행복이다.
2007. 9 수필 '한 밤의 짧은 명상' 中
'좋은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쇼- 인생에서의 가장 큰 경험 (0) | 2015.01.15 |
---|---|
Mr lee, '어느 날 저녁의 단상' 中 (0) | 2014.11.22 |
에머슨의 부자論 (0) | 2014.07.19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중 (0) | 2014.07.17 |
방현석의「존재의 형식」중에서 (0) | 2014.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