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체 Che의 日記
가을은 萬古江山 벼들의 물결처럼 춤춘다. 뱃속 나이까지 치면 마흔 여덟 번 째 맞는 2012년도 가을. 채는 거부감 없이 이와 작별 중이다. 추석 전, 직장 40대 노총각 고 팀장은 세 시간 먼저 퇴근할 것을 채에게 慫慂했다. 추석 이브니깐, 하면서도 은근 기쁜 표정을 내비치진 않았다. 사실 아이들도 오고 해서 일찍 가는 게 제게도 유리하죠, 채는 거짓말을 했다. 채는 3년 반 전 결정한 직장에 대해서 가끔은 의아한 감정을 갖곤 하였다. 이 직장에서 혹시 나를 원치 않나 하는, 엉뚱한 상상. 자주 쉬라고 말하고 국경일 앞뒤로 너무 후하게 놀려주는 직장에 대하여, 이 단체는 또 뭐하는 곳이야, 배부른 질문을 하곤 하였다.
시간이 남으면 소설이나 써야지 하고 입버릇처럼 되뇌었지만, 막상 국군의 날과 한글날이 달력 양쪽에 찍힌 9월과 10월 사이, 시차는 아찔했다. 일하고 놀고 놀다 일하고 어느 사이든 틈새를 메우는 시차 적응은 채의 몫이었다. 다행히도 채는 적응력이 빨랐던지라 놀다 보면 아주 놀기만 했던 사람처럼 일하다 보면 아주 일중독에 빠졌던 사람처럼 천연덕해 진다. 약속은 지켜야지 약속이니까. 채는 그렇게 소설에 대해 중얼거리다, 얼가리 배춧국을 끓인다. 가을 얼가리가 색깔부터 질겨 보인다. 한쪽에선 띠푸리 넣은 된장국물을 끓이고 한쪽에선 얼가리 데칠 물을 끓인다. 그래도 질겨! 할 것 같은 정삭발의 소감을 예감하며.
정삭발이 삭발을 한 이유는 머리털이 희어지면서 一瞬 변신을 원했기 때문이 아니다. 언젠가 염색을 하고 두피와 귓불에서 고름이 나왔을 때, 정삭발은 말했다. 우리 몸에 얼마나 많은 세균들과 미생물들 하다못해 애벌레들이 사는지 아니. 아니 몰랐는데. 자그마치 3.5 킬로그램이나 된다 그러더라. 으악. 채는 꿈이라도 깨울 듯 잡티가 무성한 자신의 오른 팔을 세게 문질렀다. 그래서 내 머릿속도 갈수록 근질거리나, 채는 반달모양의 눈썹을 반대쪽으로 훑으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상상을 했다. 몸속도 마찬가지라고 정삭발은 또 강조했다. 차라리 속 모르고 사는 게 낫다 고 채는 한번 더 생각을 했다. 딱딱 손톱을 자른다. 가을햇살이 한창인 정오의 뜨란채에 앉아 정삭발의 손톱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던 채. 어머, 그 손톱들 땅속에서 자라면 어쩌려고 막 버리는 거야. 손톱나무가 있다는 소릴 못 들어 봤지만, 채는 바오밥나무처럼 거꾸로 땅 속에 머리를 박는 손톱들을 그려 보았다.
왜 이 세상에는 우리 둘 밖에 없는 거야. 채는 시시때때로 정삭발의 까끌까끌한 머리를 만지며 고민을 해 왔다. 조금만 기둘려 보름만 지나면 머리털이 또 나올 거야. 그래 그러더라 정말. 머리털은 참 금방 자라기도 한다. 무료하면 얼간이 같은 배추를 데쳐서 국을 끓이면 되었다. 다행스럽게 정삭발의 유일한 즐거움도 요리하는 채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다. 남자들이란 자기 입에 들어갈 것을 만드는 여자가 예쁘게도 보이겠지. 그러니까 그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채는 반복적인 검증을 거쳤을 것이다.
싱크대 앞에 서 있자면 정삭발이 채를 포옹하며 다가왔으니까, 반자동이 된 채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45도 고개를 돌려 웃곤 하였다. 어제 해 주지 않았어. 아니 아주 오래된 것 같아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랬나. 난 어젯밤 한 걸로 기억하는데. 어떤 녀석하고 했는데 또… 후! 뭐야 다 알면서.
식탁에 앉은 정삭발이 방금 인터넷뉴스에 뜬 개콘같은 이야기를 떠든다. 채는 약한 불에 중멸치를 볶는다. 유명한 MC이자 개그맨인 남자가 와이프랑 출연하는 프로에 나가서 한 시간 이상 부부금슬을 주제로 신나게 토크를 했는데, 방송 끝내고 나오다 주차장에 세워 둔 자동차 안에서 자기 아내를 죽도록 팼대. 아내가 112에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 손에 끌려갔다지 뭐니. 뭐.. 채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그 남자 생활이 곧 개그네! 얼토당토안한 말을 뱉었다. 그 개그맨 후배들... '형님!' 하면서 특급 개그 배우겠다고 무릎을 꿇었을 거야 아마, 정삭발이 채의 폭소에 맞장구를 쳤다.
생각할수록 웃기는 일이 부부들에겐 비일비재 하였다. 문득, 채의 머릿속에 각인된 어떤 목사 부부의 이야기가 개콘과 오버랩 된 것은 이때였다. 자기 아내를 휴지통이나 걸레쯤으로 알았던지 그 목사는 늘 성도 앞에서와 아내 앞에서의 언행이 정반대로 나타나곤 했다는데. 참다못한 그 목사의 아내는 보여줘야 하는 자기 부부의 모습과 보여줄 수 없는 모습 사이에서 정신병을 앓다가 결국 교회 문을 박차고 탈출을 시도 했다는데. 그때 지옥까지 쫒아와 아내를 패 죽일 것처럼 아우성치던 그 목사는 주변사람들에게 자기 아내를 원래 매춘부였다 선언한 후, 그로부터 4개월 후 당당하게 떳떳하게 새 여자를 목사의 아내자리에 앉혔다. 주변사람들과 하다못해 그들의 자녀들까지 예전대로 목사의 말만 굳게 믿었다.
그 개그맨도 자기 부인한테 그러지 않았을까. 야, 너는 TV 프로에 나갔는데 말을 잘 해야지, 특히 할 말 안 할 말 가려서 했어야지,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떡하니 이 멍충아. 그러자, 그 개그맨 부인은 내가 뭐 없는 말을 한 거니 그럼 거짓말을 하란 말이야 하면서, 괙괙 대들었을 테고. 그러자 온 몸을 던져 그 남자 개그맨 아내의 몸을 사정없이 때리고 목까지 졸라가며 죽일 듯 팼을 것이다. 정말 왜들 함께 사는지 모르겠어, 하여간 인간의 법 중 가장 큰 악법은 20년 이상 환승하지 않고 한 여자 한 남자와 살아야 하는, 결혼생활이 아니겠니. 채는 이틀 전, 또 어느 노년인생의 푸념을 한 시간 동안 들어야 했으므로 정삭발의 개콘 이야기 끝에 쯪-쯪 혀를 찼다. 이혼해 그럴러면, 다 이혼들 하시라구욧!
싹둑 잘릴 시기를 모르고 산다. 아무도 모른다. 그래, 모른다는 건 다행이고 축복인가. 만고강산을 뒤흔드는 가을 물결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그리고 채는 또 언제 직장이라는 밥줄에서 떨어져 나올지도 모른다. 정삭발의 몸에 기생하는 애벌레들과 세균들이 언제 그의 죽은 몸과 함께 내 곁에 시신을 드러낼지 모른다. 채는 쳇머리 흔들듯 골을 흔들며 깊게 꼬집어도 보았지만, 사는 건 역시 특급 개그일 거란 결론이었다. 오늘 아침 싱크대 앞에서의 짜릿한 포옹도, 위선적인 부부의 개콘도 별반 차이는 없겠지만(?), 최소한 정삭발과 채는 TV의 프로에는 나가지 않을 것이다 결심했다. 억만 금 출연료를 준다 해도. 수많은 개그 제자들을 키울 의지는 전혀 없기에 말이다. 물론 그런 제안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찾아오지 않겠지만.
2012. 10. 3 오정자
'채란 문학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 한계와 복제 (0) | 2012.10.04 |
---|---|
[시] 프랑시스 잠에게 (0) | 2012.10.04 |
[수필] 달과 女子 (0) | 2012.10.01 |
[수필] 담장 (0) | 2012.09.29 |
[수필] 여자 냄새 (0) | 2012.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