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箱『황소와 도깨비』
아이야, 오늘은 너에게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줄 거란다. 달빛보다 은은하고 이슬보다 맑았던 빛을 가졌던 사람이 너에게 들려주고 싶어했던 이야기란다. 왜 그분이 직접 네게 이야기 해주지 않냐고? 그건 그분의 등에 날개가 생겨서 저 시리도록 맑은 하늘로 날아가셨기 때문이란다.
아주 훨훨 날아가셨어. 천사냐고? 그럼. 아마도 천사가 되셨을거란다. 하늘에는 아픈 사람도 더이상 아프지 않으니까, 몸도 마음도. 그 분의 성함이 무엇이냐고? 이상선생님이란다.
자아, 그럼 이상선생님께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마. 이리와서 무릎을 베렴.
어느 산골에 돌쇠라는 나무 장수가 살고 있었단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아, 서른은 열을 세번 세는 거란다. 그렇지 너보다 3배나 나이가 많은 어른인거지. 하여튼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안 가고 부모도 없어서 먹을 것이 있는 동안은 빈둥빈둥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나무를 팔러 나갔단다. 그래, 게으름 뱅이였지. 그래도 베짱이 보다는 부지런 했단다. 그럼 다행이지 않구.
그 돌쇠는 나무를 팔러갈 때면 꼭 황소를 데리고 갔단다. 아주 멋진 황소였어. 그럼 뿔도 달렸지. 목에 예쁜 종도 달렸었단다. 달랑달랑 소리도 나고 말고. 돌쇠가 마지막 남은 땅을 팔아서 산 아주 소중한 황소였단다.
게으름뱅이 돌쇠도 이 황소만큼은 아주 소중히 여겼단다. 어느 겨울 날 돌쇠가 황소 등 위에 나무를 실고 읍에 나갔지. 그날 따라 나무가 잘 팔려서 돌쇠는 황소와 맛있는 점심도 사먹고 기분이 아주 좋아서 집으로 가는 길도 웃으면서 걸어갔단다.
그런데 아이야, 너도 알다시피 겨울 해는 아주 짧잖니? 해가 추위를 많이 타거든. 이건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햇님이 부끄러움이 많아서 놀리면 창피해하거든. 하여튼 그 날은 유난히 해가 짧아 산허리를 돌기도 전에 어두워 지고 말았지. 그때였어. 고양이만한 새까만 놈이 돌쇠 앞에 나타났지!
심장이 쾅쾅 울려대며 깜짝 놀란 돌쇠는 작은 덩치에 겁을 내려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은 사람인데 몸은 원숭이였단다. 더 자세히 보니 세상에 짧은 꼬리까지 달려있었대.
그 동물은 자신을 산오뚜기라고 소개했지만 눈썰미 좋은 돌쇠는 단번에 고것이 도깨비 새끼라는 것을 알아보았단다. 그래, 뿔달린 도깨비. 도깨비 새끼는 뿔이 없단다. 아직 어리거든. 그 도깨비 새끼는 맞다며 도움을 요청했어. 얼마 전에 마을에 놀러왔다가 사냥개한테 붙들려 꼬리가 반 토막으로 잘렸다며 울상을 지었단다.
왜냐하면 도깨비들은 꼬리가 없으면 재주를 피울 수 없거든. 도깨비 새끼는 친구도 잃어버리고 길도 잃어버려 산 속에 숨어있었던 거라며 도와달라고 했어. 착한 돌쇠는 그 청을 무시할 수 없었단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니? 라고 물었지. 그러자 도깨비 새끼는 자신을 황소 뱃 속에 2달만 있게 해달라고 했지. 돌쇠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황소 뱃속에 말이다.
뱃속에만 넣어주면 황소의 힘이 지금보다 10배는 세게 해준다는 약속도 했지. 그래, 네 말대로 황소 중에서도 짱이 되는 거란다. 하지만 짱이라는 말대신 대장이 낫겠다. 그치? 착한 돌쇠와 주인을 닮아 착한 황소는 도깨비를 넣어주었단다.
그 후로 황소는 정말 힘이 세져서 돌쇠는 더 많은 나무를 할 수 있었고 부자가 되어갔단다. 황소가 힘이 넘쳐 매일 일을 하자고 해서 돌쇠는 부지런해지기까지 했단다.
잘 된일지? 그런데 약속한 2달이 가까워졌을 무렵 까닭없이 황소의 배가 불러오는 거야. 도깨비 새끼의 장난이라고 생각해도 심할 정도로 배가 불러와서 놀란 돌쇠는 이를 어쩌누 하며 발을 동동 굴렸단다.
그때 황소 입에서 소리가 들려왔단다. 도깨비 새끼가 뱃 속에서 너무 많이 먹어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거였어. 이 일을 어쩌누. 돌쇠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단다. 도깨비 새끼가 나오지 않으면 소중한 황소가 죽을테니까. 그래서......
이 녀석, 자는 구나.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해주마. <끝>
천재 작가 '이상'이 남긴 단 한 편의 동화다. 1937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깔끔하다. 저 당시 '짱'이란 말을 썼던 게 놀랍다. 소설가가 남긴 동화라니, 어쨌든 이상의 글은 신명이 난다. 역시 문학(개인과 시대의 이야기로 봤을 때)이란 독자에게 정답을 내주는 게 아니라, 여운과 상상력을 주는 것이란 생각이다. 동화의 아쉬운 말미에,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독자들이 자기 이야기로 잇는 또 하나의 이야기. 액자 속 액자들. 마드료시카 인형들. 역시 이상은 천재! 에 또 한번 박수를 친다. 공부방에 자원봉사 나온 20대 대학생들에게 자기 감상 하나씩 달아보라 그랬더니 컨닝을 했나, 하나같이 이어쓰기를 했다. 아무튼, 일곱 살 아이에서 일흔 살 노인에 이르기 까지 나눌 수 있는 동화라는 점.
현종 ; 그래서...돌쇠는 더 자라면 빠져나올 수 있을 거니까 조금만 더 황소 안에 있으라고 했단다. 그리고 나무를 열심히 해서 모은 돈으로 새로운 황소를 한 마리 샀단다. 그래서 새 황소와 행복하게 살았대.
연우; 돌쇠는 황소 옆에서 밤낮으로 간호하고 도깨비가 빠져나오길 기도했어. 어느 날, 그날도 돌쇠는 간호하다 지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신선이 눈앞에 나타났어. 그 도깨비가 알고 보니 신선이었던 거지. 황소를 아끼는 돌쇠의 마음에 감명을 받은 신선이 황소의 힘이 진짜 10배 세게 해주었고, 그 후로 그 둘은 행복하게 살았대.
유리 ; 돌쇠는 도깨비에게 다이어트를 하라고 했어. 황소는 그때부터 풀만 먹고 열심히 일을 했어. 그래서 두 달 후에 도깨비는 홀쭉해져서 황소 밖으로 나왔고 황소는 돌쇠의 사랑 속에 다시 튼튼해졌단다.
선주 ; 돌쇠는 황소를 구하기 위해 황소에게 먹이를 조금만 주었어. 그 때문에 그 힘이 좋던 황소가 연약해지고 일도 많이 할 수 없었지만 돌쇠는 계속 먹이를 줄였단다. 결국 돌쇠의 재산은 줄어들어 예전과 같이 가난해졌어. 하지만 도깨비도 조금만 먹어 황소의 뱃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단다. 도깨비는 꼬리가 되돌아온 것을 고마워하였지만 돌쇠는 울상을 지었어. 하지만 도깨비는 자기가 선물을 주었다고 말하고는 떠나버렸단다. 돌쇠는 도깨비가 주었다는 선물이 무엇인지 생각을 했어. 그런데 황소에게 줄였던 먹이를 평소와 같이 주었는데도, 황소는 여전히 힘이 나서는 일을 하러가자고 보챘어. 돌쇠는 부지런함을 얻게 되었던 거란다. 결국 돌쇠는 다시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게 되었단다.
보경 ; 돌쇠는 소중한 황소를 살리기 위해서 도깨비를 꺼낼 수 있는 요술을 부릴 수 있는 어른 도깨비를 찾았어. 꼬마도깨비를 잃어버리고 찾아다니던 어른 도깨비는 크게 기뻐하면서 꼬리로 요술을 부려 도깨비를 황소의 뱃속에서 꺼냈어. 그리고 지금까지 돌봐 준 댓가라며 황금을 한 가마니 줬단다. 그걸로 돌쇠와 황소는 행복하게 살았대.
우리는 대개 해피앤딩을 좋아하는 편이다. 일본사람들은 칼부림 끝에 죽음으로 끝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사무라이 표정을 짓는다고 하던데....!
세헤라자데 / 강성은
옛날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 버리는 이야기 조용한 비명 같은 이야기 천년 동안 짠 레이스처럼 거미줄처럼 툭 끊어져 바람에 날아가버릴것 같은 이야기 지난밤에 본 영화 같고 어제 꿈에서 본 장면 같고 어제 낮에 걸었던 바람 부는 길 같은 흔해빠진 낯선 이야기 당신피부처럼 맑고 당신 눈동자처럼 검고 당신 입술처럼 붉고 당신처럼 한번도 본 적 없는 이야기 포르말린처럼 매혹적이고 젖처럼 비릿하고 연탄가스처럼 죽여주는 이야기 마지막 키스처럼 짜릿하고 올이 풀린 스웨터처럼 줄줄 새는 이야기 집 나간 개처럼 비를 맞고 쫓겨난 개처럼 빗자루로 맞고 그래도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개 같은 이야기 당신이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 매일 당신이 하는 이야기 내가 죽을 때까지 죽은 당신이 매일 하는 그 이야기 끝이 없는 이야기 흔들리는 구름처럼 불안하고 물고기의 피처럼 뜨겁고 애인의 수염처럼 아름답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이야기 실험은 없고 실험정신도 없고 실험이란 실험은 모두 거부하는 실험적인 이야기 어느 날 문득 무언가 떠올린 당신이 노트에 적어 내려가는 이야기 어젯밤에 내가 들려준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내일 밤 내가 당신 귀에 속삭일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월간『현대시』(2009, 6월)
3년 전 봄에 읽었던 동화 한편 다시 열었다가, 아라비안나이트... 세헤라자데...강성은까지 줄줄 브레인스토밍 되었다. 그래 내 기억으로도 젤 재미없는 동화(그것은 솔직히 동화도 아니고 구라도 아니었지)가 있었다. 무뚝뚝한 오빠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놀리느냐고 해 줬던 이야기. 호랑이가 똥싸고 (꽥) 죽은 이야기<끝>. 그러고 나서 뭐, 그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더럽고 슬픈 이야기랬나 뭐랬나... 참 내! 그래도 시인의 구라는 것보단 쫌 낫네, 이상 아저씨 동화 하고는 대조적으로 관념덩거리긴 하지만서도. 아무튼, 도곤도곤 이야기 없이 살아간다는 건 또, 얼마나 지루할 인생일지...상상도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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