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中

미송 2022. 2. 21. 18:12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말하는 것

그대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듣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듣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이해하는 것

내 생각과 그대의 이해 사이에 이렇게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의 의사 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

 

5

 

 

아동심리학자들은 사랑의 개념에 네 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첫 단계 : 나는 사랑받고 싶다.

이는 아이의 단계다. 아이에게는 뽀뽀해 주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는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 아이는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사랑스러운가요?>라고 물으면서 사랑의 증거를 원한다. 처음엔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나중에는 자기가 본받고 싶은 <특별한 타인>에게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

 

둘째 단계 : 나는 사랑할 수 있다.

이는 어른의 단계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기가 남을 생각하며 감동할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외부에 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신의 애정을 특별한 존재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느낌은 사랑받는 것보다 한결 흐뭇하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그것에 엄청난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기분에 취하면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된다.

 

셋째 단계 : 나는 나를 사랑한다.

자신의 애정을 남에게 투사하고 나면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쏟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단계의 사랑은 앞의 두 단계와 비교할 때 한 가지 장점이 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든 주기 위해서든 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사랑을 주거나 받는 존재에게 실망하거나 배신당할 염려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요구하지 않고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정확하게 사랑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넷째 단계 : 보편적인 사랑.

이는 무제한의 사랑이다. 애정을 받고 남에게 투사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나면, 사랑을 자기 주위의 사방팔방으로 전파하기도 하고 사방팔방에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보편적인 사랑을 부르는 이름은 생명, 자연, 대지, 우주, , 신 등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개념을 자각하게 되면 정신의 지평이 넓어진다.

 

24

 

 

쥐 세계의 계급 제도

낭시 대학 행동 생물학 연구소의 한 연구자가 쥐들의 수영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동물의 사회 행동' 이라는 저서를 낸 바 있는 이 연구자의 이름은 디디에 드조르. 그는 쥐 여섯 마리를 한 우리 안에 넣었다. 먹이를 나눠 주는 사료 통은 수영장 건너편에 있었다. 따라서 쥐들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헤엄을 쳐서 수영장을 건너야만 했다. 여섯 마리의 쥐들이 일제히 헤엄을 쳐서 먹이를 구하러 갔을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이 이내 확인되었다. 마치 쥐들 사이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여섯 마리의 쥐는 다음과 같은 네 부류로 나뉘었다. 두 마리는 수영을 해서 구해온 먹이를 빼앗기는 피착취형이었고, 다른 두 마리는 헤엄을 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남이 구헤 온 먹이를 빼앗아 먹는 착취형이었으며, 한 마리는 헤엄을 쳐서 구해 온 먹이를 빼앗기지도 않고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는 독립형이었고, 마지막 한 마리는 헤엄을 치지도 않고 먹이를 빼앗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형이었다.

 

먼저 피착취형에 속하는 두 쥐가 먹이를 구하러 가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우리로 돌아오자, 착취자들은 그들을 공격해서 애써 가져온 먹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피착취자들은 착취자들이 배불리 먹고 나서야 남은 것을 먹을 수 있었다. 착취자들은 헤엄을 치는 법이 없었다. 그저 헤엄치는 쥐들을 때려서 먹이를 빼앗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독립적인 쥐는 튼튼하고 힘이 세기 때문에 스스로 헤엄을 쳐서 먹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착취자들의 압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누렸다. 끝으로 천덕꾸러기 쥐는 헤엄을 칠 줄도 모르고 헤엄치는 쥐들에게 겁을 줄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저 다른 쥐들이 싸우다가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주워 먹을 수밖에 없었다.

 

드조르는 스무 개의 우리를 만들어서 똑같은 실험을 해보았다. 어느 우리에서나 역할 배분, 즉 피착취형 두 마리, 착취형 두 마리, 독립형 한 마리, 천덕꾸러지형 한 마리가 나타났다.

 

드조르는 그러한 위계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착취형에 속하는 쥐 여섯 마리를 따로 모아서 우리에 넣어 보았다. 그 쥐들은 밤새도록 싸웠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그들의 역할은 똑같은 방식으로 나뉘어 있었다. 피착취형이나 독립형이나 천덕꾸러기 형에 속하는 쥐들을 각 유형별로 여섯 마리씩 모아서 같은 우리에 넣어 보았을 때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났다.

 

드조르는 더 커다란 우리에 2백 마리의 쥐들을 넣어서 실험을 계속했다. 쥐들은 밤새도록 싸움을 벌였다. 이튿날 아침 세 마리의 쥐가 털가죽이 벗겨진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 결과는 개체수가 증가할수록 천덕꾸러기형의 쥐들에 대한 학대가 가혹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낭시 대학의 연구자들은 이 실험의 연장선에서 쥐들의 뇌를 해부해 보았다. 그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쥐는 천덕꾸러기나 피착취형 쥐들이 아니라 바로 착취형 쥐들이었다. 착취자들은 특권적인 지위를 잃고 노역에 종사해야 하는 날이 올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80~81쪽 

 

 

레밍

나그네쥐라고도 불리는 레밍에게는 집단 자살을 하는 기이한 습성이 있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그 이유를 궁금하게 여겼다.

그 작은 동물들이 길게 줄을 지어 해안 절벽 꼭대기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장면은 누가 보기에도 자연의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처음에 생물학자들은 그것이 개체 수를 스스로 조절하기 위한 행동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빠르게 번식하는 동물인 레밍들이 저희의 수가 많다고 느낄 때 집단적으로 자살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레밍들은 원래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다른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가정들의 폭을 넓혀 주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났다.

지각 변동으로 대륙이 갈라지고 예전에 하나로 붙어 있던 지역들 사이에 절벽이 생겨났다. 그러고 나서 몇 세기가 흐른 뒤에도 레밍들의 유전자 속에는 이동 경로를 알려 주던 옛날의 지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레밍들은 절벽이 있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희가 가던 길을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말에게 속삭이는 사람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 가운데 영어로 호스 위스퍼러, 즉 <말에게 속삭이는 사람>이라 불리는 조마사가 있다.

이들은 말 사육장에 고용되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말들, 특히 경주마들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한다.

 

말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외부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보인다. 그런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갖지 못하게 되면 종종 심리 발달에

이상이 생긴다. 말을 무엇보다 성가시게 하는 것은 곁눈 가리개이다. 똑똑한 말일수록 자기 나름대로 외부 세계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그런 속박을 잘 견디지 못한다.

 

호스 위스퍼러는 말에게 귓속말을 하면서 그저 말을 착취하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낸다.

말은 인간과 소통하는 그 새로운 방식을 좋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제 눈으로 외부 세계를 온전히 발견할 수

없도록 방해한 인간을 그런대로 눈감아 줄 수 있게 된다.

 

181~ 184쪽 

 

 

관념권

관념은 살아 있는 존재와 같다. 관념은 태어나서 자라고 번식하며 다른 관념과 대결하다 마침내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면 관념은 생물처럼 진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다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장 약한 것을 제거하고 가장 강한 것을 번식시키기 위해 관념들 사이에서도 선별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1970년에 자크 모노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저서에서 관념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으며 유기체처럼 번식하고 증식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1976년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관념권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생물권이 생물의 세계이듯이 관념권은 관념의 세계이다.

 

도킨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누가 어떤 창의적인 관념을 내 정신에 심어준다면 그는 말 그대로 나의 뇌에 기생하는 것이고 그 생각을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의 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이라는 관념을 예로 든다. 이 관념은 어느 날 생겨난 뒤로 끊임없이 진화해 오고 전파되어 왔으며, 사제들이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에 맞도록 재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관념은 생성하고 발전하고 소멸하는 속도가 생물보다 더 빠를 수 있다.  예컨대  카를 마르크스의 정신에서 나온 공산주의라는 관념은 아주 짧은 기간에 퍼져 나가 공간적으로 지구의 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 관념은 진화하고 변화하다가 결국은 쇠퇴하여 갈수록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관념은 그렇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라는 관념도 변화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문명은 관념권에서 벌어지는 관념들 간의 투쟁을 통해 발전해 간다.  오늘날 컴퓨터는 관념들의 이동과 변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인터넷 덕분에 관념은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갈 수 있으며, 경쟁자나 천적과 대결하는 일도 훨씬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인터넷은 좋은 관념들뿐만 아니라 나쁜 관념들을 널리 퍼뜨리는 데에도 아주 유용한 수단이 된다. 관념의 세계에는 도덕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긴 생물의 세계에서도 진화가 어떤 도덕률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어떤 관념을 전파하거나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관념을 퍼올 때는 좀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관념들은 이제 그것들을 창안한 사람들이나 전달하는 사람들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하나의 관념일 뿐이지만.

 

 

티베트

중국인들이 티베트를 합병했을 때 그들은 거기가 중국인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 주려고 중국인 가족들을 정착시켰다. 그러나 티베트의 기압은 견뎌 내기가 쉽지 않다. 그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현기증을 느끼기도 하고 몸이 붓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생리적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 여인들이 티베트에서 아기를 분만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티베트 여인들은 아무리 높은 곳에 있는 마을에서도 아기들을 쑥쑥 잘도 낳는데 말이다. 마치 티베트 땅이 생리적으로 거기에 살기에 부적합한 침략자들을 거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쉬뢰딩거의 고양이

관찰자는 자기가 관찰한 것을 변화시킨다. 어떤 사건들은 단지 그것들이 관찰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것을 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사건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실험이 지닌 의미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밀폐된 불투명한 상자 안에 갇혀 있다. 어떤 장치를 이용해 고양이를 죽일 만큼 강력한 전기를 우연에 맡기는 방식으로 내보낸다. 자, 이제 기계를 작동시키다가 멎게 한다. 그 장치에서 치명적인 전기가 방출되었을까? 고양이는 아직 살아 있을까?

 

고전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와 같은 질문에 답을 아는 방법은 상자를 열어서 보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자의 입장에서는 고양이가 50%는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상자의 뚜껑이 열리지 않는 한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양자 물리학에 관한 그런 토론과는 별도로 고양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아는 피조물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고양이 자신이다.

 

* Erwin Schrődinger(1887~1961).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파동 역학 이론을 확립하는 한편, 생물 물리학적 연구를 통해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펴냈으며, <과학과 휴머니즘>같은 계몽서도 썼다. 1933년 디랙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신은 존재하는가. 신은 무소부재하고 무소불위한 존재다. 따라서 신이 존재한다면 정의된 바대로 신은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신은 자기가 존재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떤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대

그대가 이 페이지를 넘길 때, 지면의 한 지점에서 그대의 집게손가락으로 종이의 섬유소를 문지르고 있음을 느껴보라. 그 접촉에서 미세한 가열이 일어난다. 지극히 미약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무한소로 수량화되는 이 가열 때문에 전자의 갑작스런 움직임이 생겨난다. 전자는 원자를 떠나 다른 입자와 충돌한다.

그런데 이 입자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주 거대한 세계일수도 있다. 이 입자가 전자와 충돌한 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격변이다. 충돌이 있기 전까지 이 입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고 차갑고 공허했다. 그러다가 그대가 페이지를 넘김으로써 위기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지면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그 동작으로 그대는 어떤 중대한 일을 야기했다. 이 일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가. 그것에 관해서 그대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 안에서 하나의 폭발이 일어나고 물질의 파편들이 배출될 것이며 에너지가 퍼져 나갈 것이다. 어쩌면 극미한 세계들이 생겨나고 거기에 사람과 비슷한 존재들이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들은 제련 기술과 증기로 찌는 요리법과 우주여행을 생각해 낼 것이고, 우리보다 더 지능이 높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이 책을 펼쳐 들지 않고 그대의 손가락이 지면의 한 지점에 마찰열을 가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우리 우주 역시 지극히 거대한 어떤 책의 지면 한 구석이나 어떤 구두의 밑창 또는 어떤 거대한 다른 문명의 맥주 깡통에 묻은 거품을 닦은 것이든 일종의 깨어남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대로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폭발 즉 빅뱅이었다.

 

그렇다면 정적에 싸여 있던 그 방대한 우주가 어떤 어마어마한 폭발 때문에 갑자기 깨어나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저 위에서 왜 누군가가 페이지를 넘겼을까? 왜 누군가가 맥주 거품을 닦았을까? 어쨌거나 그 깨어남이 있었기에 그대가 이곳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온갖 것이 나타나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대가 이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무한소의 어딘가에 새로운 우주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대 알고 있는가? 그대의 힘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

 

279~280쪽

 

 

고양이와 개

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그는 나의 신이야. 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신이야.

 

276쪽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 왕 오이아그로스와 뮤즈 칼리오페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트라키아는 현재 불가리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던 나라이다) 아폴론은 소년 오르페우스에게 일곱 개의 현이 있는 리라를 선물했는데 여기에 그는 어머니의 자매인 뮤즈들의 수에 맞추기 위해 현 두 개를 더하여 구현금을 만들었다. 뮤즈들은 그에게 각종 예술을 가르쳤는데 특히 작곡과 노래와 시 교육에 정성을 쏟았다. 오르페우스의 재능은 너무도 뛰어나 그가 리라를 연주하면 새들은 노래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의 음악을 들으려고 모든 짐승이 몰려오는데 늑대는 어린 양과 여우는 산토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려왔다. 상대를 해치려는 본능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강물도 흐르기를 멈추었고 물고기들까지 음악을 들으려고 물밖으로 뛰어올랐다.

 

이집트를 여행하여 오시리즈 밑에 입문한 그는 비로소 오르페우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페니키아어로 아우르는 빛을 의미하고 로파에는 치유를 의미하므로, 그의 이름은 빛으로 치유하는 자라는 뜻이다.) 엘리우시스에서 오르페우스교를 창시한다. 그러고 나서는 아르고호의 영웅들과 함께 황금 양털을 찾으러 떠난다. 그는 아름다운 노래로 영웅들이 노를 저을 때 힘을 북돋아 주고 풍랑을 잠재운다.

 

또 황금 양털을 지키는 콜키스의 용을 잠들게 하여 이아손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모험을 마친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에 있는 아버지의 왕국에 정착하여 님프 에우리디케와 결혼한다. 어느 날 아우리디케는 목동 아리스타이오스가 자기를 쫓아오는 줄 알고 급히 도망가다 독사를 밟고 만다. 독사에게 물린 그녀는 즉사한다. 비탄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구하고자 죽은 이들의 왕국을 찾아간다.

 

그는 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애절하게 노래하며 서쪽을 향해 걷는다. 그의 노래를 듣고 나무들조차 감동하여 가지를 굽혀 지옥 입구를 가리켜 준다. 그는 리라를 켜서 맹견 케르베로스를 진정시켰고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의 분노도 가라앉혔으며 지옥에 갇힌 자들의 형벌을 잠시나마 멈추게 해주었다. 그의 리라 연주에 감동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그가 에우리디케를 산 자들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을 허락한다.

 

하지만 명계의 신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햇빛 아래 설 때까지는 절대로 몸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에우리디케는 리라를 연주하는 남편의 뒤를 따라 지옥의 출구에 이르는 통로를 걷는다. 드디어 밝은 지상에 도달한 오르체우스는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불안하여 에우리디케가 여전히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고 만다. 아내에게 던진 이 단 한 번의 시선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제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게 된 것이다. 한 줄기의 미풍이 마지막 키스인 양 그의 이마를 스칠 뿐이었다. 트라이카에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은자가 되어 아침부터 밤까지 잃어버린 사랑을 노래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한 트라키아의 여인들을 무시했고, 이 때문에 그를 증오하게 된 여인들에게 갈가리 찢겨 죽었다고 한다.

 

265~266쪽

 

20120102-20220221 타이핑 채란

 

 

불행한 시기에 사람들은 연대의식을 느끼며 단결하지만, 행복한 시기엔 분열한다. 왜 그럴까? 힘을 합해 승리하는 순간 각자 자기 공적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저마다 자기가 공동의 성공에 기여한 유일한 공로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서히 소외감에 빠진다.

 

친한 사람들을 갈라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공동의 성공을 안겨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가족이 상속을 둘러싸고 사이가 벌어지는가? 성공을 한 다음의 로큰롤 그룹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얼마나 많은 정치 단체들이 권력을 잡은 후 분열하는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