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권혁웅<닫힌 책>外 2편

미송 2012. 10. 21. 21:23

     

    닫힌 책

    -얼굴 1

     

    그는 앙다문 캄캄함이어서 입속에 혀를 말았다

    내력을 봉인하여

    줄글로도 귀들로도 풀어내지 않았다

    석곡(夕哭)도 곡비(哭婢)도 없었다

    질러 놓은 빗장처럼 콧날은 분명했으나

    향기는 밖으로만 떠돌았다

    두 눈이 닿은 곳에 소실점이 있었을 테지만

    그것을 그의 것이라고도

    풍경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을 조금 쭈그러들어 있었으나

    먼지들이 결 고운 길을 낸 듯도 하였다

    누군가 그를 쓰다듬었다

    누군가 그에게 오래 기대었다

     

     

     

    비닐 랩 같은 웃음이

    -얼굴 2

     

    비닐 랩같이 엷은 웃음이 그를 덮고 있었다 팽팽한 웃

    음이 입 주변에서 눈가까지 물살이 되어 밀려갔다 자꾸

    번져서 그의 입을 지우고 그의 눈을 지우고 이마에 몇 가

    닥 실금을 말아 올렸다 가는 눈이 가늠하는 수위를 짐작

    할 수 없었다 비닐 랩같이 웃음이 그를 동쳐 매고

    있었다 질식할 거 같았다

     

     

     

    구겨진 종이처럼

    -얼굴 3

     

    그가 얼굴을 구겨 가며 울었다 곰곰이 눌러쓰다 지우

    다 끝내 손아귀가 움켜쥔 종이처럼 눈 코 입이 모여들었

    다 왼쪽 눈이 오른쪽 눈과 만나 그늘이나 누수를 이루기

    도 했다 몇 마디 말이 역류하는 하수구처럼 콧등을 넘어

    왔다 입도 이도 가지런하지 않아서 그의 말은 휘갈려 쓴

    난문이었다 선물인 그 사람을 누군가 가져갔다고 선물을

    꺼낸 뒤에 던져진 포장지처럼 자신이 버려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