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
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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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29행으로 되어 있는 이 시편은 시인이 서른 살 되던 1941년에 발표한 시편이다. 대수롭지 않은 얘기를 하듯이 만연체로 적은 이 작품은 산문시다운 성격이 강한 우리 현대시 가운데서도 두드러지게 산문적이다. 줄줄이 이어 쓴, 그야말로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줄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간결한 시행에 따라붙게 마련인 의미의 비약이나 어사(語辭)의 생략이 보이지 않아 아주 쉽게 읽힌다.
‘바람벽’, ‘십오촉’, ‘때글은’, ‘ 앞대’와 같은 낱말들은 얼마쯤 예스럽고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나 전후 문맥을 헤아리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때글은’의 ‘글은’은 햇볕에 얼굴이 거멓게 되는 경우에도 쓰는데 여기서는 때가 타서 약간 검어졌다는 정도의 뜻일 것이다. ‘앞대’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남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십오촉’은 요즘 같으면 ‘15와트’ 라고 할 것이요. ‘바람벽’은 도회의 아파트 단지 같은 데서는 쓰이지 않아 폐어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냥 ‘벽’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미당의 유명한 <자화상>을 읽어본 독자들은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이란 인상적인 대목을 기억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쉽게 읽힐 터인 이 작품에 어려운 구석이 있다면 어째서 이 백석 시편이 20세기 한국 시 최상의 작품 중 하나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점일 것이다.
르레상스기의 이탈리아에 카스틸리오네(B. Castiglione)라는 정치가가 있었다. 16세기 초에 조신(朝臣)이라고 하는, 에티켓과 사회 문제와 지적 교양을 다룬 책을 썼는데 곰브리치(E. H. Gombrich)는 카스틸리오네의 예사로움 혹은 태연함이란 개념을 거론했다. 카스틸리오네에 따르면, 참다운 예술가는 참다운 신사처럼 힘들이지 않고 작업하고 처신한다. 가령 너무나 세심하게 다듬고 끝마무리하는 사람은 참다운 예술가가 못 된다.
이에 반해서 예사로움은 완벽한 조신과 완벽한 예술가의 특징이 된다. “힘들이거나 솜씨 자랑 하지 않고 운필(運)하고서도 마치 화가가 의도한 대로 저절로 그 목표에 도달한 듯이 보이게끔 쉽게 그린 하나의 선이나 붓놀림은 그 예술가의 뛰어남을 드러내 준다”고 카스틸리오네는 적고 있다. 동양 전통에서 말하는 천의무봉(天衣無)‘과 비슷한 경지요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위의 백석 시편에는 카스틸리오네가 말하는 그 '예사로움‘이 돋보인다. 솜씨 자랑을 피하면서도 힘들이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슬슬 적어간 듯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단연 작품이 빛난다. 소재도 유별나거나 희귀한 것이 아니다. 외로운 화자가 좁은 방 안에서 바람벽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 대목에서부터 작품은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흰 바람벽에 어머니가 있다’는 대목이 우리에게 의외로움을 안겨주면서 호소해 온다. 의표를 찌르는 이러한 표현은 계속된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눈질’과 ‘주먹질’이 나오는 다음 대목에서 우리는 어떤 섬뜩한 귀기(鬼氣)마저 금할 수 없게 된다. ‘울력하다’는 사전적인 의미에서 얼마쯤 떨어져 있는 듯하다. 한자말 ‘위력(威力)’이 변한 말인데 여기서는 ‘위협하다’, ‘위압하다’ 정도의 뜻으로 읽는 것이 순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끝자락에 나오는 ‘바구지꽃’은 아마도 바가지꽃, 즉 박꽃일 것이다. 바구지꽃이라 적어놓으니 시의 맥락 속에서 아주 잘 어울린다. ‘프랑시스 쨈’이라는 프랑스 시인에겐 당나귀를 노래한 시가 많다. 도연명도 백석이 좋아한 듯 “도연명은 저러한 사람인 듯”하는 대목이 <조당에서>란 후기 시편에 나온다. 또 <수박씨, 호박씨>란 작품에는 “오두미(五斗米)를 버리고 버드나무 아래로 돌아온 사람”이라고 오류(五柳)선생 도연명을 노래한 대목이 보인다. 이 정도만 알아두면 이해하는 데 거칠 것이 없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읽어보면 이 백석 시편의 메아리가 느껴질 것이다. 흰 바람벽에 있는 사람과 거기 지나가는 글자들을 통해 남의 말 하듯이 가난과 고독과 슬픈 천명을 노래한 이 시편은 해방 후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과 함께 백석의 대표작이면서 한국 현대시의 정상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예사롭게 씌어진 듯이 보이지만 참으로 쓰기 어려운 시편임을 실감할 때 이 시의 이해가 완결될 것이다. 방언투성이의 백석 초기 시편에도 읽을 만한 시편이 있지만 긴 눈으로 볼 때 후기의 명편을 위한 도상의 연습곡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유종호 시인>
유종호<시 읽기의 방법>58~63쪽 타이핑, 채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삿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 : 주인
딜옹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
북덕불 : 짚북더기를 태운 불
나줏손 : 저녁 무렵
바우섶 : 바위옆
갈매나무 : 갈매나뭇과에 속한 좀나무. 키는 2 m쯤 되고 가지에 가시가 나며, 잎은 넓은 바소꼴이며 톱니가 있다.
열매는 '갈매' 또는 '서리자'라 하여 약재나 물감으로 쓴다.
※ 독특한 제목 풀이
남신의주 유동 마을에 사는 박시봉이란 사람의 방 (주소 형식)
※ 백석의 개인사
본명 백기행.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신. 오산학교와 일본 아오야마(靑山) 대학 졸업. 조선일보 사진부장으로 있었던 부친 덕에 그다지 어려움 없이 학업을 연마함. 오산 출신의 김억이나 김소월 같은 시인이 되기를 열망함. 매우 탐미적인 성향을 가졌던 듯. 타고난 방랑벽이 있어 자주 가족을 떠나 홀로 여행을 하거나 직장을 옮겨 다니기도 하였다. 해방 후 월북하여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없으나, 최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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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정주하면 소월이 있고 백석(白石 .1912~1995)이 있다. 1998년의 월북시인 해금 조치 이후 '백석 붐' 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백석 시인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시에서 드물었던 북방 정서와 언어의 한 정점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시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소장하고 있다가 1948년에 발표했다. 해방 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제목의 뜻에 주목해볼 때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낸 고백시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소리 내어 읽노라면 그가 나직이 말을 건네는 듯 가슴이 꽉메여 오고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곤 한다.
'나' 라는 맨 얼굴의 시어나 '-이며' '-해서' '-인데'와 같은 나열 혹은 연결어미나 '것이었다'라는 종결어미등의 반복이 내뿜고 있는 독특한 산문적 리듬이야말로 이 시의 백미다.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한다는 직유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직설이며,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역설 등 사무치지 않는 구절이 없다.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기까지의 의연한 회복 과정이 유장한 리듬과 어우러져 한 편의 인생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1942년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즈오는 기자와 교사생활을 작파하고 만주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히' 살고 있던 그를 찾아간다. 그는 가즈오에게 '나 취했노라' 라는 시를 헌정했다. 나도 쉰세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 <파>라는 시를 그에게 헌정했다. 파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을 그를 생각한다. 쌀랑쌀랑 소리를 내며 싸락눈을 맞는다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뻐근한 갈매나무를 생각한다.
(해설, 정끝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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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매력은 간곡한 완주에 있는 듯 하다. 처음부터 '나는 갈매나무야' 라고 했다면 시가 재미없었을 것 같다.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자신의 현존을 정리하는 목소리가 한동안 겨울을 나야할 것 같은 우리에게 나긋하게 들려온다. 어쩌자고 한 인생의 쓸쓸했던 경험이 또 다른 인생에겐 위안으로만 남는지. 갈매나무를 본 적 없지만, 눈이 펑펑 내릴 때 파르르 떨고 서 있는 억센 것들을 보면 모두 갈매나무로 보일 듯 하다. 20101026-20150606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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