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방형의 슬픔 / 박판식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날이 있다
구운 장어를 한 입에 오드득 씹어 삼키면서
나는 소주를 마신다
등의 혹에 손을 가져가면서
척추의 때늦은 성장을 만져본다
풍요로운 죽음 아니냐
채집망을 피해 애써 달아난 밀잠자리들이 되돌아온 냇가로
그해 여름과 가을, 제비들이 무수히 나타났던 건
아름다운 계절 탓이 아니라 내 영혼이
그만큼 더러워졌기 때문
내 이마를 짚은 할머니의 손이 점점 뜨거워지면
탈곡기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왕겨들을 공중으로 날려 보낸다
얼었다 풀리는 봄의 냇가에서
외삼촌의 망치는 돼지의 두개골을 때린다
그날 산골짜기에 부딪혀 돌아오지 않는 나의 메아리는
등뼈가 활처럼 휜 들짐승에게 먹혀 죽었을 지도 모른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시간에 연루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삼킨 혐의를 숨기며 살고 있지요. 아마도 우리가 자주 장방형의 방에 숨어 쓸쓸히 술잔을 비우는 것은 좁은 우리에서 나오자마자 내 뱃속에 영원히 갇히고 만 어떤 울음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 최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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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사랑해서 죽일 만큼 미워하게 되는 관계. 쾌락에 가깝게 삶을 찬미하다가 살인자에 가깝게 죽음을 찬미하게 되는 관계. 그 관계 속 관계에 있다. 인간의 큰 오류는 자가당착이란 말로만 정의되기엔 복잡하다. 제 몸에서 나온 똥을 더럽다 고 칭하는 모순, 제 멀쩡한 손가락으로 지지하고선 강하게 부러뜨리는 모순, 어제의 죽임 당한 아이가 오늘의 어른으로 태어나는 모순, 버려진 슬픔들이 좀비처럼 일어나 울먹이며 달려온다. 왜 너는 너를 버렸는가, 왜 어제의 배신을 모순의 벽에 매달고 침 뱉는가, 한번 쯤 통곡해도 시원찮을 이 슬픔의 시원은 어디인가, 세상이 쓸쓸할 때면 너의 방에 박혀있고 싶다. 내 오래전 낳았어야 할, 한 아가의 장방형 房.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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