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맛
멋진 날들을 놓아두고
시를 쓴다.
고궁(古宮)엔 벚꽃,
그늘엔 괴인 술,
멋진 날들을 그대로 두고
시를 쓴다.
내가 시를 쓸 때
이 땅은 나의 작은 섬,
별들은 오히려 큰 나라.
멋진 약속을 깨뜨리고
시를 쓴다.
종아리가 곧은 나의 사람을
태평로 2가 프라스틱 지붕 아래서
온종일 기다리게 두고,
나는 호올로 시를 쓴다.
아무도 모를 마음의 빈 들
허물어진 돌가에 앉아,
썪은 모과 껍질에다 코라도 부비며
내가 시를 쓸 때,
나는 세계의 집 잃은 아이
나는 이 세상의 참된 어버이.
내가 시를 쓸 땐
멋진 너희들의 사랑엔
강원도풍(江原道風)의 어둔 눈이 나리고,
내 영혼의 벗들인 말들은
까아만 비로도 방석에 누운
아프리카산(産) 최근의 보석처럼
눈을 뜬다.
빛나는 눈을 뜬다.
작품을 쓴다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인간의 노력이 그러하듯이 작품 쓰기에는 괴로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플로베르(G. Flaubert)에게서 고전적인 사례를 볼 수 있듯이 고통만이 따른다면 어떻게 한평생을 글쓰기에 바칠 수 있을 것인가?
김현승의 이 작품은 작품 쓰기의 축복됨 혹은 작품 쓰기를 행복한 잔치로 만들려는 시인의 노력이 잘 드러나 있는 보기 드문 시편이다.
완성의 성취감 이외에도 글쓰기 그 자체에도 그 나름의 쾌감이 따를 것이다. 시편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때는 봄이요, 고궁에는 벚꽃이 피어 있다. 그늘에는 술도 있어 행락하기에 알맞은 날이지만 그러한 즐거움의 기대를 접어두고 시를 쓴다고
화자는 적는다. 멋진 날을 아깝게 방치하고 시를 쓰는 것이다. 시를 쓸 때 세상은 좁아지고 "별들은 오히려 큰 나라"가 된다고 화자는 적는다.
통상적이고 일상적인 논리나 질서가 뒤집히고 그렇게 물구나무선 현실의 질서 속에서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이다.
멋진 약속을 깨뜨리고
시를 쓴다.
종아리가 곧은 나의 사람을
태평로 2가 프라스틱 지붕 아래서
온종일 기다리게 두고,
나는 호올로 시를 쓴다.
시를 위해서 눈부신 행락의 계절만을 비켜서는 것이 아니다. "종아리가 곧은 나의 사람"과의 약속마저 저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하여 젊
은 '나의 사람'을 시내 한복판의 플라스틱 지붕 아래서 온종일 기다리게 방치하고 홀로 시를 쓰는 것이다. 이 구체적인 행락의 포기를 접하고
우리는 시인의 시 쓰기가 세속적인 행복의 단념과 포기의 연쇄 속에서 이루어짐을 보게 된다. 시인에게 있어 시는 그렇게 중요하고 귀한 것이
다. 많은 것을 연기하거나 버리고 작품을 쓴다는 것은 살기보다 쓰기에 충직하다는 말이 된다. 많은 시인 작가들이 '삶의 표현을 위해 '삶의 소
유'를 희생한다. 이러한 사정이 구체적인 세목을 통해서 매혹적으로 드러난 것이 위의 대목이다. 이 시편은 이러한 구체적 세목의 제시를 통해
서 호소력을 발휘한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위의 대목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래서 우리는 좋은 시가 기억 촉진적이라고 말하
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모를 마음의 빈 들
허물어진 돌가에 앉아,
썪은 모과 껍질에다 코라도 부비며
내가 시를 쓸 때,
나는 세계의 집 잃은 아이
나는 이 세상의 참된 어버이.
조금은 쓸쓸하고 비어 있는 마음으로 시를 쓰면서 시인은 스스로 거처 없는 세계의 고아라고 느낀다. 시를 쓰는 것은 집 잃은 아이가 제 집을
짓는 행위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를 쓸 때 시인은 세상의 어버이가 되고 어버이로서 말을 한다. 모든 시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김
현승의 경우 이 말은 아주 어울린다. 불량소년같이 쓰는 시인도 있고 스스로 저주받은 시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대변인이나 겨레의 영매(靈媒)임을 자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김현승은 세상의 어버이처럼 시를 쓰고 그의 언어는 "아프리카산(産) 최근의
보석처럼' 빛나는 눈을 뜨는 것이다. 그 점 <시의 맛>은 김현승의 시학(詩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김현승의 시는 정갈하고 담백하고 여운
이 있다. 가령 <무등차(無等茶)>같은 시편은 그러한 성향을 잘 드러내준다.
남쪽 십일월의 긴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
정갈하고 담백하면서도 <시의 맛>은 한결 구체적이고 호흡이 길다. 그 점에 이 시편의 매력이 있고 호소력이 있다. 시쓰기는 힘든 사랑의
노동이기도 했겠지만 "참된 어버이" 가 되는 길이기도 했던 김현승은 겸허한 행복의 시인이었다. 그의 시학에서 그는 스스로 축복을 빚어낸다.
그의 시학은 긍정과 행복 수락의 시학이다. <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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