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 / 이영광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우리가 맨발로 걷던
비자림을 생각하겠어요
제주도 보리밥에 깜짝 놀란
당신이 느닷없이 사색이 되어
수풀 속에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면, 나
나는 그 길섶 지키고 서서
산지기 같은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 봤지요
비자림이 당신 냄샐 감춰주는 동안
나는 당신이, 마음보다 더 깊은
몸속의 어둠 몸속의 늪 몸속의 내실(內室)에
날 들여 세워두었다 생각했지요
당신 속에는, 맨발로 함께 거닐어도
나 혼자만 들어가본 곳이 있지요
나 혼자선 나올 수 없는 곳이 있지요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웃다간 눈물 나던 비자림을 찾겠어요.
시집<아픈 천국>(창비시선 318)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경주<내 머리카락에 잠든 물결> (0) | 2013.02.14 |
---|---|
최규승<왈츠> (0) | 2013.02.08 |
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씨 이야기 1편> (0) | 2013.01.26 |
헤세<흰구름> (0) | 2013.01.26 |
최명희<발소리만 그저 다만 발소리만이라도> (0) | 2013.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