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주사에 가본 적이 없다. 5, 6년 전인가 우연히 운주사 얘기를 듣게 된 건 지금 보아도 행운이다. 운주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특이한 사찰이란다.
우선 불상들이 죄다 못생겨서 특이하고, 불상들 놓인 위치가 뿔뿔이 제멋대로여서 특이하단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중국에서 건너온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절이란 설說이 있으니 상상력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하다. 저 무렵 나는 침대에 누워 운주사 얘기를 들었다. 3박 4일인지 3주인지 시간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아무튼 내내 누워있었다. 전쟁 안 났으니 '그냥 먹고 자’ 하던 때의 기록이다. 십 년이면 강산이 한번 바뀐다는데 사춘기를 넘어서 강산이 두 번씩이나 바뀐 저 시점에서도 내겐 휴식이 없었다. 고장 난 브레이크가 장착된 자동차에 올랐던 게 실수였다면 실수! 실수란 오류를 점검하고서야 뒤늦게 깨달은 단어였다.
황지우씨의 뼈아픈 후회가 내게도 들어온 적이 있었지, 모래바람을 느끼는 순간마다, 옛 기억과 기록들은 그러나 위안을 건넨다. 아이러니한 만남의 장場.
그것은 스스로가 펼쳐놓은 아뢰야식과 회심을 통해 리바이벌되기도 하고 마무리되기도 하니, 가본적은 없지만 동경 속 장소와 풍경들이 어찌 별개의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십년 간 나를 밀어냈던 힘은 삶의 가파른 계단에서도 결국 나를 밀었지만, 돌이켜 생각컨대 내 안에 거꾸로 세운 계단에서 나는 한 발자국도 추락하지 않았다는 것, 더 이상 헛된 비상을 원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을 찾던 시절이 인생의 봄부터 시작되었는지 가을부터 시작되었는지 이젠 그닥 중요치가 않아졌다. 칭얼칭얼 노래를 하며 걸어온 길이 무서운 밤길이었어도 이제는 괜찮다 말하고 있다. 사찰이든 교회이든 붓다이든 예수이든 저 노래 속에서의 나의 기도는, 나의 성전은 내 안에서 지어지고 있었기 때문, 보상없이 올려지는 예배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종교의 구조나 썰은 비슷하여서 부부와불의 전설을 듣다 피식 웃음을 흘렸었는데, 은하수 모양으로 배치된 불상들 그 중앙에 부부와불은 북두칠성을 향해 시선을 모으고 있으니 그것은 미륵불의 도래를 소원한다는 뜻이라 하였다. 내가 니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으니 하며 또라이처럼 큰소리치던 궁예가, 지가 바로 그 미륵불이라고 하였다는데. 하여간 8억 4천만년이란 기하학적 숫자만큼 기다리다 보면 붓다께서 부활 회생하시어 중생들을 데리고 도솔천에 이를 것이란 얘기는 재밌기도 하고 여간 슬프기도 했었다.
한 시절이 길 것 같았지만 일생처럼 짧게 지나가 버렸다. 네가 찾던 신은 네 발자국 안에 있었다 란 화두가 없었다면 지치거나 미쳐 죽을 것만 같았던 저 시간을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아찔 그렇다. 아…찔찔한 순간은 그러나 현재진행형이라서 나는 오늘도 저 은하수를 바라보던, 북두칠성에 시선을 꽂던 기억을 소중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니, 결국 나의 신은 내 발 아래 있고 나의 구원은 내 안에 있다는 견고한 생각이 드는 것!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 선과 악 그리고 이 현세에서의 일(job)과 휴식… 이런 식의 분절된 언어와 이분법적 사고들을 나는 경멸해 버리려는 것이다.
통일하지 못하는, 조율하지 못하는, 리듬을 타거나 즐기기 못하는 모든 것들은 껍데기요 망발의 허무일 뿐이니, 분별심을 갖어야 할 부분은 타인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정작 스스로의 고르지 못한 사고방식일 것이다.
나란히 누웠다 함은 두 개의 병행이기 보단 일직선상의 일치에 가까운 포즈. 소원이란 그것이 가령 부활을 꿈꾸던 꿈꾸지 않고 직행으로 극락행을 하던 일치점을 찾는 노력의 연속! 공중에 짜잔 나타날 미륵불을 상상하여도 좋겠지만 우선은 내 속의 도솔천에 매일 그 분을 모셔야겠지. 그것은 지금의 삶과 휴식이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의 노래요 리듬이요 파도타기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도 상통하겠지. 저 낡은 옛 기억과 흔적이 나의 것이란 느낌과 동시 새로운 변이가 되어 날아가고 있다. 매일 이렇게 볍씨 까먹는 소릴 중얼거리는 내가 많이 부끄러워서, 그래서 말 할 수 있는 것만 말했던 비트겐슈타인이 한없이 존경스럽고 부럽기도 하지만, 할 수 없다 그래도, 최소한 지금 내가 할 말을 하고 있어! 지절대고 시프이… <오>
'채란 문학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無題 (0) | 2013.03.16 |
---|---|
[시] 설령, 만날 수 없다해도 (0) | 2013.03.15 |
[시] 거울 속 달력 (0) | 2013.03.03 |
[수필] 하루에 대한 심심한 낙서樂書 (0) | 2013.02.25 |
[소설] 8일간의 휴가 (0) | 2013.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