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단편소설] 호박꽃과 피카소

미송 2013. 7. 1. 12:09

 

 

 

 박꽃과 피카소 

 

 

 오정자

 

 

 

일정한 아침이다. 알람시계를 일곱 시에 맞춰 놓은 그녀는 오분 전 일곱 시가 될 때까지 자다가 벨이 두세 번 더 울려서야 부스스 눈을 비빈다. 나는 그녀 보다 한 시간 일찍 깬다. 늙어지니 잠도 줄어드는 모양이다. 담장 안에 있는 두 개의 화단에는 흙만 도닥여져 있다. 두 마리의 개가 화초 뿌리들을 파헤쳐 놨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녀가 화단을 정리해 버렸다. 그러자 화단은 곧 똥밭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녀와 나는 개들이 그 곳에 들어가 똥을 누고 나오는 게 신통하다고 떠들며, 삽과 빗자루를 들고 쫒아 다닌다. 성실한 우리다. 밤 열 시에 메롱이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던 날 그녀와 나는 피카소를 만났다. 암, 수 구분이 안 되는 개였다. 배가 축 처진 걸로 봐선 새끼를 밴 것 같은데 (그것도 세 마리쯤), 덜렁 세우고서 뚫어지게 들여다보니 거시기가 암컷 같진 않았다. 그때부터 그녀와 난 개를 피카소로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피카소를 놓고 추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거야, 집 나온 지가 한 사흘은 지난 거 같은데. 해법이 잘 되지 않는 피카소는 아마도 자체였다. 산책길에서 만나 대문 안까지 따라 들어온 피카소를 유기견 센터로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설사를 하는 상태라서 동물병원부터 찾아갔다. 길거리에서 아무거나 막 주워 먹은 탓에 배탈이 난 피카소를 버릴 수 없어서 일단 키우기로 한 우리는 졸지에 개들의 어버이가 되었다.

 

“ 나 보다 개들이 더 예뻐?”

“ 엉........ ”

 

개들과 노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정도 들고 모습이 귀엽기도 하여 난, 마냥 앉아 구경하곤 했는데, 부스스 눈을 비비며 나온 그녀가 생뚱맞게 그런 소릴 하는 게 아닌가.

 

“ 아니 어떻게 개 하고 당신을 비교할 수 있어 ?”

“ 아니면, 왜 맨날 들고 날 때마다 개부터 쓰다듬는 건데 ?”

 

야성을 꺾어 놔야만 주인 말을 잘 듣고 따른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손등을 수차례 긁히면서도 개들을 훈련시키곤 하였다.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며 개들과 익숙해지는 과정이 족히 한 달은 걸렸을까, 어느 정도 개들이 말귀를 알아듣게 된 것인데, 이젠 그녀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 그럼 당신도 꼬리 하나 매달고 쫄랑쫄랑 흔들면 되잖아.”

“ 칫… 모얏?”

 

휴, 저 앙탈녀를 어디로 좀 떠나보내야 할 텐데. 주방으로 쌩 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사실 그녀나 나나 갈 곳이 없는 사람이다. 갈 테면 가 봐라 해도 정말 갈 곳이 없어, 그냥 콕 처 박혀 살다 죽어야 할 팔자라 할까. 사실 6년 전 나는 그녀의 곁을 영원히 떠날까 하는 충동에 복받쳐 바닷가를 이틀이나 떠돈 적이 있다. 얼마나 춥고 서러웠던지 아직도 그 때 그 겨울 바닷가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때 이후로 바다에 대한 나의 환상도 어느 정도 변했다. 특히 겨울바다 하면 나는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떠올라 치가 떨린다. 그녀는 몹시 울부짖는 목소리였다.

 

“ 왜 세상 남자들은 다 이렇게 똑같은 거야, 응 ?” 이것이 그녀 항변의 주제였다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아 쳤다.

“ 얼마나 세상 남자들을 많이 겪어 봤길래 ?”

“ 뭐? 꼭 많이 겪어 봐야만 알아, 두세 번 겪어도 다 알지 ”

그녀는 더 크게 울부짖으며 심하게 말했다.

“그러는 당신도 똑같아 뭐 ” 했던 것인데. 그 말에 나는 맛이 확 가 버린 것이다.

그렇고 그런 족속들과는 판이한 인간이라는 자존심 하나로 살아 온 나였는데,

그렇게 굳게 믿었는데, 그녀의 말의 올무에 걸린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졌던 것이다.

 

한 번 악몽은 영원한 악몽이라는 듯 그녀의 악몽은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었고

그 일 이후로도 가끔 들르곤 했던 그 바닷가가 내게는 아주 악몽을 추억하는 장소가 돼 버렸다.

 

나는 52년 생. 이순을 넘긴 나이다. 그녀와 내가 만난 건 정말이지 내 뜻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늘이 스스로 나대며 도운 일만도 아니다. 어찌 되서 이렇게 되었는지 처음에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세히 설명까지 했는데, 지금은 그들도 나도 그 과정일랑 다 잊은 듯하다. 그냥 살아가고 있다. 아침이면 호박꽃 벙근 지붕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겅중겅중 매달리는 두 마리의 개와 그냥 그렇게 놀면서.

 

그녀의 알람 보다 한 시간 일찍 깨어난 나는 집 앞 실내 골프장 마당에 앉아서 개들을 운동 시킨다. 그 녀석들도 나처럼 몸매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줄로 묶어 놓은 동네 개들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 왜 개들을 저렇게 묶어 놓고 키우지, 답답하겠다 쟤들 ”

 

그래서 나는 열심히 운동을 시킨다. 먹고 싸는 일은 사람의 일과 진배없는 개들의 일이기도 하다. 운동을 시키지 않으면 비만에 걸린 여학생과 똑같이 된다. 명랑하게 뛰어노는 개들과 함께 내 시간들도 잘 흘러간다. 그녀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또 무슨 엉뚱한 말을 던지며 나올까, 가 기대되는 아침이지만 나는 분명히 안다. 그녀는 노출증에 가까운 옷차림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와 네가 메롱이니 네가 피카소니 밤새 잘 잤니, 그리고 굿모닝 하면서 들어가 버릴 것을. 더 이상의 말은 안 할 것임을. 왜 그녀는 똑똑하니까. 결코 개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기로 했을 테니까. 그것은 마치 내가 개와 함께 놀지만 개가 되지 않고 사람으로 사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멀찍이 놓고 구경한다. 그러나 개들에 대한 내 안에 애정은 매일 자라고 있다.

 

“ 쯪쯔, 너희들도 전생에는 사람이었을지 누가 알겠니 ”

다음 생에 내가 너희로 태어나거나 너희가 나로 태어나더라도 옛정을 생각해서 잘 봐 줘.

나는 여덟시에 아침밥을 먹고 아홉 시까지 출근을 한다.

“ 호박을 네 개나 땄어 ”

신기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가 썰어놓은 반달 호박을 뚝배기에 집어넣는다.

 

“얼렁 와 먹어”

“당신 없으면 이 몸이 어떻게 밥을 먹고 살지.”

살짝 그녀의 등허리 아래로 허벅지를 들이밀며 나는 간살을 떤다.

“킥...” 그녀의 반응,

 

모든 시계는 일정하게 돌아간다. 때로는 고장난 시계도 있어서 시간 보기가 헷갈릴 때도 있고, 국가별로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최소한 우리의 담장 안에서는 그렇다. 일정하다는 것은 일단 그녀와 내가 먹고 놀기만 하는 백수요 백조는 아니란 뜻이고, 또 깊이 생각하면 아주 특별할 것 같았던 우리의 애정이 일상의 시간표를 따라 지극히 평범한 케이스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평범한 삶을 한껏 즐기고 싶다. 정오에 늘어져 낮잠을 자는 우리집 개들처럼. 시계를 올려다 볼 필요없는 두 마리 짐승처럼. 그저 배 고프면 나가서 돈을 벌고, 꼴리면 누워서 뒹굴면 되는, 그런 생활이 좋다. 더 좋은 건 그녀가 더 이상 앙탈을 부리지 않고 곱게곱게 늙어가고 있다는 점이겠지만...

 

“ 뭐얏? ”

외출했던 그녀가 꽝꽝 언 쮸쮸바를 물고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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