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감상법과 감상의 즐거움
독자 감상활동의 과정
문장을 짓는 사람은 감정이 일어나면 그것을 글로써 나타내며 문장을 보는 이는 문장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의 세계로 들어간다. 마치 적은 물줄기를 거쳐 물의 근원에 이르듯 비록 감추어진 작가의 의도라도 이런 경로를 통해 반드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작가의 얼굴을 보지는 못해도 그의 글을 통해서 그 마음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독자의 식견과 관조
어찌 이미 이루어진 작품이 이해하기 힘들 만큼 깊은 것이겠는가? 우리의 식견과 관조가 얕은 것이 걱정이다. 뜻이 산이나 물에 있으면 거문고로 그 감정을 표현한다. 하물며 사람의 감정이 붓끝에 실려 형상화되면 어떻게 숨길 수가 있겠는가? 때문에 마음이 이치를 헤아리는 것은 눈으로 형체를 비추는 것에 비유된다. 밝는 눈으로 보면 형체가 구분되지 않음이 없고 예민한 마음으로 살피면 이해되지 않는 이치가 없다.
독자 반응의 주관성과 다양성
강개한 사람은 격앙된 소리에 박자를 맞추며, 마음이 넓고 온전한 사람은 세밀하고 함축적인 작품을 보고 기뻐하며, 천박산 화려함을 선호하는 사람은 기려한 글을 대하여 마음이 설레고,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괴이한 것을 듣게 되면 놀라워한다. <후략>
작품 이해의 어려움
문장변화의 이치는 다함이 없으니 이러한 변화를 알아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된다. .......빛나는 옥이 때로는 돌과 혼동되기도 하고 푸른빛의 작은 돌이 때로는 옥과 유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정밀한 사람의 글은 요약적이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의 글도 역시 간략하다. 박식한 사람은 글은 풍족하지만 번잡한 사람의 글도 잡다하다. 논리적인 사람의 글은 명철하지만 천박한 사람의 글도 노골적이다. 심오한 사람의 글은 은밀한 데가 있지만 괴이한 사람의 글도 역시 왜곡되어 감추어진 듯하다.
독자의 편벽된 기호
사람들의 미에 대한 기호는 편벽되어 있어서 전면적인 감상력을 갖추지 못한다. ..........자기의 기호에 맞으면 감탄하고 읊조리지만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보기를 멈추고 방치해버린다. 각자 편벽된 이해력을 가지고 만 갈래로 변하는 문학을 헤아리려 한다. 이것은 이른바 동쪽을 향하여 바라보면 서쪽 담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양해야 할 감상태도
문학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비평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문학작품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독자를 만난다는 것도 실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작품을 이해하는 독자를 만난다는 것은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힘든 일이다. 예로부터 작품을 감상하고 비평하는 이들은 동시대의 것을 천시하고 옛 것을 생각했다. 이것은 말하는 바 항상 목전의 것은 믿지 않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음을 쏟는다는 것이다. 옛날 한비자의 '저설'이 처음 나오고 사마상여의 '자허부'가 처음 지어졌을 때 진시황과 한 무제는 그들과 같은 때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사람임이 드러나자 한비자는 옥에 갇히고 사마상여는 냉대를 받았다. 어찌 동시대인을 천시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후략>
독자의 예술 소양
천개의 곡조를 다룬 후에야 음악을 알게 되고 천 개의 칼을 본 후에야 명검을 알게 된다. 때문에 편견 없는 감상법을 위해서는 우선 많은 작품을 보아야 한다. 높은 산을 보고 나면 작은 언덕의 형체를 알게 되고 큰 바다를 보고 나면 도랑의 물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작품을 감상할 때 그 비중을 다루는 면에서 사심을 넣지 말고 애증에 편벽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저울처럼 공정하게 이치를 평가할 수 있고 거울처럼 맑게 작품의 표현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의 가치를 가늠하기 위해 살펴야 할 것들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여섯 가지의 관찰점을 수립해야 한다. 첫째 작품의 주제와 체제의 일치 여부를 살핀다. 둘째 어휘사용의 적절성을 살핀다. 셋째 작품에 나타난 전통의 계승과 변혁의 문제를 살핀다. 넷째 새로움의 추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살핀다. 다섯째 전고나 성어의 사용이 적절한가 살핀다. 여섯째 사용된 어휘의 성률이 조화로운지 살핀다. 이러한 방법이 취해지면 작품의 우열은 드러나게 된다.
감상의 즐거움
오직 깊은 식견에 의해서 작품의 심오함을 관조할 수 있는 사람만이 문학작품에서 심적인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봄 누대의 놀이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음악이나 음식이 나그네의 발을 멈추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난은 나라 안에서 가장 향기가 좋은 꽃이지만 그 묘한 향기가 사람의 몸에 배어들 때 비로소 향기를 떨친다. 문학서적도 또한 나라의 꽃이지만 그 풍성함이 잘 음미될 때만 아름다움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바르게 감상하고 비평하고픈 사람들은 이 점을 분명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문학창작의 기교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사용하는 시기를 교묘하게 포착하면 작품의 뜻과 감정의 여운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작품 어휘의 기세가 함께 모여든다. 눈으로 보면 비단에 수가 놓여 있는 듯하고 귀로 들으면 관현악을 듣는 듯하며 이를 음미하면 풍부한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이를 감상하노라면 꽃향기가 나는 듯하다.
유협 <문심조룡> 308~316쪽.
타이핑 -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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