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시] 호박 나무

미송 2013. 8. 21. 20:54

       

       

       

      호박 나무 / 오정자 

       

      이른 봄 꽃잔디의 확산이 땅에 의존하여 망막 안으로 번지었듯

      바람이 수천 년 동안 높아진 계곡에 기대었다 피부에 닿았듯

      흘러온 저녁들은 누군가의 숱한 노을의 흐느낌을 타고서 온 것

      누렇게 시든 한 잎 여름의 잔재를 본다

      무엇에든 기대야 한다는 듯 직립을 흉내 내는 이파리들

      나무를 기어오르고 있다 명함의 글자들처럼 단단히 읽을 수 없는

      그 모양새, 행인의 입술을 지켜보니 저들을 호박 나무 라 지칭한다

      그러게나, 밑으로만 기던 줄기들 꼿꼿해지는 풍경

      나도 따라 불러 본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개체가 맞대어 조합되는

      놀람이 열리는 계절에 그대가 그대를 기특하다 말하고 있다

      선물이 되고 싶은 나의 살갗들이 떨린다

      타향의 이름들이 결합될 때의 부드러운 바람, 바람이 분다

      이름을 버리며 온건해지는 저 식물들처럼 살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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