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백석,「북관(北關)」

미송 2013. 9. 3. 20:25

 

 

 

백석,「북관(北關)」
― 함주시초(咸州詩抄) 1

 

 

명태(明太)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니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즉히 여진(女眞)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新羅) 백성의 향수(鄕愁)도 맛본다

 

 

언젠가 떠난 지 오래인 고향에 가서 이웃집의 김장김치를 맛보고는 그 속에서 깨어 걸어나오는 한 미소를 마주하고는 나도 몰래 먼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고장의 물산으로 된 그 고장의 김치맛은 내 뼈가 무엇으로 여물었는지 새삼스레 알게 했습니다. 정작 고향에서도 요즘은 '종갓집' 김치를 먹는 일이 다반사니 오래 잊고 있었던 내 '살냄음새'를 맡는 기분이었던 셈입니다.
북관은 함경도 지역을 지칭합니다.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 것'이 곧 '북관(北關)'이라고 백석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몸이 '알아차리는 북관'과 관념이 '이해하는 함경도'는 이렇게 다른 겁니다. 과연 무엇이 진짜일까요? 알아차리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요? 알아차리는 것은 통째로 아는 것이요 이해하는 것은 알고 싶은 것만 아는 것이죠.
이어서 이 '식혜'의 맛과 내음새는 북으로는 여진(女眞)으로 달려가고 남으로는 신라(新羅)로 뛰어갑니다. 혀끝의 '맛'이 한 문화의 계통으로까지 뚫고 들어가는 이것이야말로 고대로부터 미래에 걸쳐진, 속된 말로 '모더니즘'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모더니즘을 피자나 파스타, 스파게티의 얼치기 모더니즘에 비하겠습니까. 신라 경주로부터 저 관동 팔경 지나 금강산 지나 원산, 청진 지나 회령에 이르는 길을 '모던 보이'로 둘러보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공복을 만들어서 저 '투박한 북관'을 '끼밀며' 쇠주를 해야겠죠?
제발 우리나라 정치여, 그런 날로 기울어 가자! 퀴퀴한 명태 창난 아가미 식혜에 쇠주나 한잔 할 수 있는 쪽으로 가자!

 

문학집배원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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