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故 박승철
새벽에 생각하다 / 천양희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노틀담의 성당 종탑에 새겨진 ‘운명’이라는 희랍어를 보고 「노틀담의 곱추」를 썼다는 빅톨 위고가 생각나고
연인에게 달려가며 빨리 가고 싶어 삼십분마다 마부에게 팁을 주었다는 발자크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인간의 소리를 가장
닮았다는 바흐의 무반주첼로가 생각나고 너무 외로워서 자신의 얼굴 그리는 일밖에 할 일이 없었다는 고흐의 자화상이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어둠을 말하는 자만이 진실을 말한다던 파울 첼란이 생각나고 좌우명이 진리는 구체적이었다던 브레히트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소리 한점 없는 침묵도 잡다한 소음도 훌륭한 음악이라고 한 존 케이지가 생각나고 소유를 자유로 바꾼
디오게네스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괴테의 시에 슈베르트가 작곡한 「마왕」이 생각나고 쉴러의 시에 베토벤이 작곡한
「환희의 송가」도 생각난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마지막으로 미셀 트루니에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 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월간 『현대시학』 2013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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