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카프카(Franz kafka)
<앞부분의 줄거리>
가족을 위해 상점의 판매원으로 고달픈 생활을 반복해 오던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 속에서 자신이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문 밖에서는 그의 출근을 재촉하는 부모와 여동생의 소리가 들리고, 한 시간도 채 못되어 상점에서 지배인이 달려와 출근을 조른다. 그레고르는 이들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여 번민한다. 잠겨 있던 방문이 열리고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를 보는 순간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지배인은 모두 놀라고 그를 한낱 독충으로 간주한다.
날이 갈수록 가족으로부터 자애를 느낄 수 없음을 알고, 그레고르는 마침내 인간으로서 사회적 활동을 포기하고 벌레로서의 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가족들에게는 변신 이전에 가졌던 인간으로서의 애정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한편 그는 가정을 위한 자신의 희생이 쓸모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파산해서 생활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했던 부모에게는 저축해 놓은 돈이 있었고, 자신이 원상으로 복구될 가능성이 없자 아버지는 은행의 수위로, 어머니는 잡화상의 바느질 일로, 여동생은 그렇게 좋아하던 바이올린 공부 대신에 상점의 여자 판매원으로 식구 모두들 동분 서주한다.
그런데도 벌레로서 새 생활에 적응해 보려고 애써 봤으나 가족들의 냉대는 날로 심해간다. 식구 중에 그레고르가 가장 아껴오던 여동생은 그의 방안의 가구들을 옆방에 치워 버리고, 하숙인을 받기 위해 내다팔 수 없는 모든 잡동사니는 그의 방으로 옮겨 놓는다. 이 과정에서 그림에 달라 붙은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기절한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는 사과를 그에게 던진다. 그 사과가 등에 박혀, 그레고르는 상처를 입고 한 달 동안 고생을 하게 된다.
<전략> 누이동생은 바이올린을 타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각기 자리잡은 위치에서 주의 깊게 딸의 두 손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그레고르는 바이올린 소리에 마음이 끌려서 자기도 모르게 약간 앞으로 나아가서 머리를 거실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는 요사이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지내 온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전 같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 고려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자랑으로 삼았다. 그러니만큼 지금에 와서는 다른 사람의 눈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할 이유가 더욱 절실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의 방안에는 어디나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었으며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먼지가 펄펄 날려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뿐더러 실오라기, 머리털,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 같은 것을 등허리와 옆구리에 붙인 채 끌고 돌아다녔다. 모든 것에 대한 그의 무관심한 태도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래서 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랬지만, 요사이는 벌렁 등을 대고 누워서 양탄자에 몸을 비비는 일도 없었다. 이러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티끌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깨끗한 거실 마룻바닥 위를 기어갔지만, 조금도 거리끼지 않았을 뿐더러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런데 그가 기어 나오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족들은 완전히 바이올린 연주에 황홀해져서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숙인들도 처음에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누이동생의 스탠드 바로 뒤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악보를 들여다 볼 수도 있었기 때문에 누이동생에게는 확실히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잠시 후 머리를 수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창문 옆으로 물러섰다. 아버지는 염려하는 눈초리로 창문 옆에 머물러 있는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누가 보더라도 아름답고 재미있는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던 그들은 기대에 어긋나서 실망하고 싫증이 난 기색이었다. 체면을 생각하고 예의를 지킨다는 입장에서, 할 수 없이 듣고 있는 눈치가 분명했다. 특히 그들이 모두 담배 연기를 코와 입으로 허공에 내뿜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초조한 기색을 느끼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도 누이동생은 매우 훌륭하게 연주했다.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거리며 눈초리는 감정에 젖은 듯이 슬픈 표정으로 악보의 줄을 더듬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기어 나갔다. 그리고 혹시나 누이동생의 시선과 마주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고개를 마루 위에 바짝 대다시피 수그리고 있었다. 이처럼 음악 소리에 감동을 느끼는데도 그는 역시 동물이란 말인가? 그는 마치 자기도 모르게 그리던 마음의 양식을 얻는 길이 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누이동생 옆으로 기어 나가려고 했다. 누이동생의 치맛자락을 끌어당겨서 누이동생이 바이올린을 가지고 자기 방으로 건너와 주었으면 하는 뜻을 알려 주려고 했다. 왜냐 하면 여기에서는 아무도 자기만큼 그 연주를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동안은 적어도 누이동생을 자기 방에서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흉악한 모습은 처음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자기 방에 있는 도어마다, 언제나 정신 바싹 차리고 지켜 서 있다가 들어오는 놈들에게 으르렁대며 덤벼들 것이다. 그러나 누이동생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며,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기 옆에서 지내게 해야 한다. 자기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자기 쪽으로 귀를 기울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누이동생에게 그녀를 음악 학교에 보내 주려고 확고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것과, 이런 불행한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반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구애되지 않고 지난 크리스마스 날 저녁에―그런데 도대체 크리스마스가 벌써 지났을까?―여러 사람들 앞에서 명백히 자기 계획을 발표했으리라는 것을 알려 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이동생은 틀림없이 감격한 나머지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그러면 그레고르는 어깨까지 기어 올라가서 누이동생 목에 키스를 해 주려고 했다. 누이동생은 직장에 나가게 되면서부터 리본도 칼라도 없이 목을 내놓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잠자 씨!"
하고 두목격인 남자가 아버지에게 소리를 쳤다. 그리고 그는 그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기어 나오는 그레고르를 집게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이올린 소리가 멈췄다. 두목격인 그 남자는 우선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친구들에게 미소를 던지고, 다시 그레고르 쪽을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쫓아 내는 것보다는 먼저 하숙인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숙인들은 흥분하기는커녕 바이올린 연주보다도 도리어 그레고르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들에게로 뛰어가서 두 팔을 벌리고 하숙인들을 자기 방으로 돌려 보내려고 애를 쓰는 동시에, 자기 몸으로 그레고르가 보이지 않도록 가리려고 했다. 그 때 그들은 아닌게아니라 약간 화를 내는 기색이었다.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서 화를 냈는지, 또는 그레고르 같은 것이 이웃 방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다가 그제서야 알게 되어 화를 낸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그들쪽에서도 팔을 쳐들며 불안스럽게 수염을 비비 꼬면서 천천히 자기 방으로 물러갔다. 그 동안 누이동생은, 별안간 연주가 중단된 후 잠시 정신 없이 멍하고 있다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얼마 동안 축 늘어뜨린 두 손에 바이올린과 활을 쥐고 계속 연주를 하고 있는 것처럼 악보를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누이동생은 어머니―숨이 막히는 듯 가슴을 들먹거리며 아직도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무릎 위에 악기를 놓고, 옆방으로 앞질러 뛰어들어갔다. 하숙인들은 아버지에게 쫓겨서 앞서 보다 더 빨리 옆방(그들의 방)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누이동생은 익숙한 솜씨로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이부자리와 베개를 툭툭 털어 위로 올리더니 순식간에 보기 좋게 정돈해 놓았다. 하숙인들이 방으로 몰려들어오기 전에 침대를 정돈해 버린 다음, 그녀는 살짝 빠져 나왔다. 아버지는 또다시 자기 옹고집에 사로잡혀서 늘 하숙인들에게 베풀던 존경심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악착같이 그들을 밀치고만 있었다. 드디어 방의 도어까지 다다랐을 때 두목격인 남자가 쾅 하고 발을 굴렀기 때문에 아버지도 할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나는 이 자리에서 선언하지만……"
그 남자는 한쪽 손을 쳐들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힐끔 바라본 다음 이렇게 말했다.
"현재 이 집과 이 가족들 속에 감돌고 있는 불쾌한 분위기를 고려해서―여기서 그 남자는 선뜻 결심이라도 한 듯이 마루 위에 침을 뱉았다―나는 방을 해약합니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의 방세에 대해서는 한푼도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나는 앞으로―거짓말이 아닙니다―아주 쉽게 근거를 대고 이유를 붙일 수 있는 어떠한 손해 배상 청구를 당신에게 제기해야 될 것인지 이 점을 신중히 고려해 볼 작정입니다."
그 남자는 입을 다물고, 마치 무엇을 기대하는 듯이 똑바로 앞을 쳐다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두 친구들도 바로 입을 열었다.
"우리도 역시 이 자리에서 당장에 해약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두목격인 남자는 도어의 핸들을 쥐고 탕 하고 요란스럽게 도어를 닫았다.
아버지는 손으로 의자를 더듬으며 비틀거리더니, 힘없이 그 위에 푹 쓰러지고 말았다. 겉으로는 손발을 축 늘어뜨리고 전과 같이 저녁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으나, 고개를 가만히 둘 수 없는 듯 쉴새없이 끄떡거리고 있는 꼴을 보면 전혀 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레고르는 그 동안 자기가 하숙인들에게 들켰던 바로 그 자리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자기의 계획이 실패한 데 대한 실망과 아마도 오랫동안 굶주렸기 때문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듯, 그는 도저히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자기 몸 위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한꺼번에 무자비하게 허물어져서 닥쳐올 것이라고 확실히 느끼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어머니의 손가락이 떨리더니 바이올린이 어머니 무릎에서 떨어지며 소리가 크게 울렸지만 그레고르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어머니!……아버지!"
하고 누이동생은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 전에 손으로 탁자를 쳤다.
"이 이상 더 못견디겠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직 사정을 모르시겠지만 저는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저런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저것을 없애야 한단 말이에요. 저것을 먹여 살리려고 참고 견디며, 우리들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왔어요. 아무도 우리들을 나무랄 사람은 없어요."
"그래 네 말이 옳다."
아버지는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아직도 완전히 숨을 돌리지 못하는 어머니는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과 같은 눈초리로, 손을 입에 대고 먹먹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누이동생은 어머니 옆으로 달려가서 이마를 짚어 주었다. 아버지는 누이 동생의 말을 듣고서 무엇인지 마음 속에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의자 위에 똑바로 앉아서 하숙인들이 저녁 식사를 끝낸 다음에도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접시들 사이에서, 급사의 제모를 주물럭거리면서 가끔 가만히 누워 있는 그레고르 쪽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저것을 없애 버려야만 해요."
하고, 그저 아버지만 쳐다보며 누이동생은 다짐하듯이 말했다. 왜냐 하면, 어머니는 기침하느라고 아무 말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숨을 빼앗을 거예요. 어쩐지 저는 그렇게만 생각되요. 우리들은 모두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일해야 되는데, 이처럼 끝없는 두통거리를 집안에 두고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어요? 저는 이 이상 더 참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누이동생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 눈물이 어머니의 얼굴에 흘러내렸으며 누이동생은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더니 어머니의 얼굴에서 눈물을 씻었다.
"얘야."
하고 아버지는 매우 너그럽게, 동감하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쩌면 좋단 말이냐?"
누이동생은 아버지에게 아무 구체적인 방안도 없다고 어깨를 움츠렸을 뿐이다. 그녀는 울고 있는 동안에 앞서 그처럼 단호했던 태도와는 정반대로 정말 어쩌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저놈이 우리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 주었으면……"
하고 아버지는 반쯤 물어 보는 것처럼 말했다. 누이동생은 울면서, 그런 일은 전해 생각해 볼 여지조차 없다는 듯이 한쪽 손을 성급히 내저었다.
"저놈이 우리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 주었으면……"
하고 아버지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그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누이동생의 확신을 자기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렇다면 저놈하고 타협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나 저 모양 저 꼴이니……"
"내쫓아야 해요!"
하고 누이동생이 외쳤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저것이 그레고르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만 돼요. 우리들이 이제껏 너무나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 왔던 것이 우리들 자신의 불행이었어요. 어째서 저것이 오빠란 말이예요? 만일 정말 오빠라면, 사람이 저런 동물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스스로 나가 버렸을 거예요. 그러면 오빠는 없을망정 우리는 안심하고 살아 갈 수 있고, 언제까지나 오빠를 소중하게 회상할 수 있지 않아요. 그런데 저것은 우리들을 못살게 굴고 하숙인들을 쫓아 낼뿐더러, 나중에는 아마 이 집 전체를 차지하고 우리들까지 길가에서 잠을 자게 할 거예요―저것 좀 보세요, 아버지."
하고 누이동생이 갑자기 외쳤다.
"또 장난을 시작했어요!"
그레고르에게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이상한 공포에 사로잡힌 듯, 누이동생은 어머니 곁을 떠나, 마치 그녀가 우두커니 그레고르 옆에 있느니보다는 오히려 어머니를 희생시키는 편이 낫다는 듯이, 어머니의 의자를 박차고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이어서 그녀는 아버지의 뒤로 달려갔다. 아버지도 누이동생의 동작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자리에서 똑같이 일어나 누이동생을 보호하려는 듯이 두 팔을 앞으로 쳐들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누이동생은 물론이고, 아무에게도 공포심을 일으키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단지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의 비참한 상태로는 조금만 몸을 돌리려고 해도 힘이 들었기 때문에 머리의 반동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머리를 쳐들었다가는 마룻바닥 위에 내리쳤다. 따라서, 이 같은 괴상한 동작은 말할 나위도 없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동작을 멈추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레고르의 악의 없는 의도만은 그래도 알아 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저 순간적으로 놀랐을 따름이다. 이제 가족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서 두 다리를 모아 쭉 뻗치고 있었다. 극도로 피로했기 때문에 눈꺼풀이 거의 덮일 것만 같았다. 아버지와 누이동생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누이동생은 한쪽 손으로 아버지의 목을 감고 있었다.
'자, 이제는 방향을 돌려도 상관 없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돌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일에 지쳐서 숨이 가쁘고 호흡이 거칠어졌기 때문에 숨을 돌리려고 이따금 쉬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그를 쫓는 사람은 없었다. 무엇이든,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는 방향을 돌리고 나서 자기 방으로 곧장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방까지의 거리가 그다지도 먼 데 대해서 크게 놀랐다. 그래서 조금 전에 쇠약한 몸을 이끌고 어떻게 이처럼 먼 거리를 멀다고 느끼지도 않고 기어왔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저 빨리 기어가려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말을 걸거나 소리를 쳐서 자기를 방해하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거의 눈치채지도 못했다. 겨우 도어 앞까지 갔을 때 비로소 한 번 고개를 돌려 보려고 했으나 제대로 잘 돌지 않았다. 굳어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자기 뒤에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다만 누이동생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의 마지막 시선이 어머니를 힐끗 스쳤는데, 어머니는 그 때 깜빡 잠이 들어있었다.
그가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어느 새 성급히 도어가 닫히더니 고리가 잠기고 그대로 방 안에 갇히고 말았다. 별안간 뒤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났기 때문에 그레고르는 너무나 놀라 다리가 휘청 굽혀져서 부러질 지경이었다. 급히 달려온 사람은 누이동생이었다. 누이동생은 미리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레고르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번개같이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레고르는 다가오는 누이동생의 발자국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었다. 그녀는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넣어서 돌리며,
"됐어요!"
하고 양친을 향해서 외쳤다.
"자, 이제부터 어쩔 셈이지?"
그레고르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 보며 어둠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곧 자기가 그 이상 더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와 같이 가느다란 다리로 여기까지 기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생각될 정도였다. 그 밖에는 어느 정도 쾌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온 몸이 아팠지만 점점 아픈 것이 가시고 결국 머지 않아서 완전히 가라앉을 것 같았다. 등에 박힌 썩은 사과도, 부드러운 먼지에 싸인 그 주위의 염증도, 벌써 거의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애정을 가지고, 가족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자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누이동생의 그것보다 아마도 훨씬 더 절실했을 것이다. 교회에서 탑 시계가 새벽 세 시를 칠 때까지, 그는 이처럼 허전하고 고요한 명상에 잠겨 있었다. 창 밖이 훤하게 밝아 오기 시작한 것을 그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 때 그의 머리가 자기도 모르게 밑으로 푹 수그러졌다. 그리고 그의 콧구멍으로부터 마지막 숨이 힘없이 흘러나왔다.
아침 일찍이 할멈이 왔을 때―그런 짓만은 제발 말라고 지금까지도 몇번이나 타일렀지만, 성급히 힘껏 도어란 도어를 모조리 닫기 때문에 이 할멈이 오면 온 집안 사람들은 편히 잠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할멈은 보통 때처럼 슬쩍 그레고르의 방을 들여다보았으나 처음에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할멈은 그가 감정이 상해서 일부러 꼼짝도 않고 누워 능글능글 불쾌스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할멈은 그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할멈은 때마침 손에 기다란 비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도어 밖에서 비를 내밀어 그레고르를 간지르려고 하였다. 그래도 아무 효과가 없자 할멈은 바짝 화가 나서, 그레고르의 몸을 약간 쑤셔 보았다. 그레고르가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밀려갔을 때 비로소 할멈은 이상하다는 듯이 주의 깊게 살펴 보았다. 곧 그 진상을 알게 되자, 할멈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자기도 모르게 휘파람을 휙 하고 불었다. 그리고 그 이상 그 자리에서 우물쭈물하지 않고 갑자기 잠자 부부의 침실 도어를 열어 젖히고 어둠 속을 향해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좀 가봐요, 저것이 뻗었어요. 저기 자빠져서 그만 뻗어 버리고 말았어요!"
잠자 부부는 후딱 더블 베드에서 일어나서 할멈의 보고 내용을 알아보기도 전에, 우선 할멈 앞에서 그들의 당황한 꼬락서니를 감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잠자 부부는 기겁을 하며 침대 좌우로 내려와 잠자 씨는 어깨에 담요를 걸치고, 부인은 잠옷을 입은 채 침실에서 나와 그레고르의 방으로 들러갔다. 그러는 동안에 거실의 도어도 열렸다. 하숙을 친 다음부터 그레테가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그레테는 한잠도 자지 못한 것처럼 제대로 단정하게 옷을 입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창백한 얼굴빛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죽었다니?"
잠자 부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할멈을 쳐다보았다. 물론 자기가 알아보아도 알 수 있었고, 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죽은 것 같아요."
할멈은 이렇게 말하고 증거라도 보이려는 듯이 비로 그레고르의 시체를 옆으로 멀리 쭉 떠밀어 보였다. 잠자 부인은 그 비를 가로막으려는 태도를 보였으나 사실 막지는 않았다.
"자아, 아제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거야."
잠자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슴에 십자가를 그었다. 어머니와 딸도 그가 하는 대로 따라서 똑같은 동작을 했다. 그 때까지 시체에서 한눈도 팔지 않고 있었던 그레테가 입을 열었다.
"좀 보세요, 오빠는 어쩌면 저렇게 말랐을까요. 벌써 오래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어요. 음식을 갖다 주어도 그냥 그대로 내보냈지 뭐예요."
사실 그레고르의 몸은 너무 말라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미 다리들이 몸뚱이를 위로 떠받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밖의 아무것도 사람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게 하는 것이 없어져 버린 지금에 와서 비로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똑똑하게 알게 되었다.
"그레테야, 이리 좀 온."
하고 잠자 부인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레테는 시체를 돌아다보며, 부모의 뒤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할멈은 도어를 닫고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아직 이른 아침이지만, 신선한 공기 속에는 어딘지 훈훈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느덧 벌써 3월 말이었다.
세 하숙인들은 방에서 나와 아침 식사를 찾았으나,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숙인의 존재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아침 식사는 어디 있어요?"
하고 그들 가운데 두목격인 남자가 투덜거리며 할멈에게 물었다. 그러나 할멈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급히 서두르며 그레고르의 방에 가보라고 눈짓을 했다. 그들은 그레고르의 방으로 가서 약간 낡은 웃옷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그레고르의 시체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방안은 이미 환하게 밝아졌다.
그 때 침실의 도어가 열렸다. 잠자 씨는 급사의 제복을 입고, 한 쪽 팔은 아내에게, 또 다른 쪽 팔은 딸에게 부축을 받으며 나타났다. 세 사람은 모두들 약간 운 듯 눈이 부어 있었다. 그레테는 때때로 아버지의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 주시오!"
잠자 씨는 이렇게 말하고, 아내와 딸을 자기 몸에서 떼지도 않은 채 현관문 쪽을 가리켰다.
"무슨 말씀인지요?"
그 두목격인 남자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싱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뒷짐을 진 채로 끊임없이 손을 비비고 있었다. 마치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벌어지게 될 언쟁을 마음 속으로 은근히 기다리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말한 바로 그대로라니까요."
잠자 씨는 이렇게 대답하고, 아내와 딸을 옆에 거느린 채 그대로 나란히 서서 하숙인 앞으로 곧장 걸어갔다. 처음에는 두목격인 남자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마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정리하려는 듯이 잠시 마루 위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그렇다면, 나가지요."
하고 그는 말하고 잠자 씨를 쳐다보았다. 그 남자는 갑자기 자기를 엄습해 온 겸손한 기분 속에서 이와 같이 새삼 결심한 데 대해서까지도 주인에게 새로운 승인이라도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잠자 씨는 눈을 부릅뜨고, 그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 남자는 곧 현관방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두 친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잠시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곧 그 두목의 뒤를 쫓아갔다. 마치 잠자 씨가 자기들보다 먼저 앞질러서 현관방에 들어가 자기들과 두목 사이를 끊어 놓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현관방에서 그 세 사람은 옷걸이에서 모자를 손에 집어 들고, 지팡이를 세웠던 곳에서 꺼내 들은 다음, 무뚝뚝하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전혀 아무 근거도 없는 의심을 품고서―그의 의혹이 단순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바로 밝혀졌지만―잠자 씨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계단 앞으로 나가서 난간에 기대어 떠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세 사람은 천천히 그리고 고르게 발을 옮겨서 긴 계단을 내려갔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데 따라서 층계마다 중간의 커브 도는 곳에서 언뜻 자취를 감추었다가, 2, 3초 후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이 더욱 밑으로 내려갈수록 그들에 대한 잠자 가족의 관심도 점점 사라져 갔다. 처음에는 저 밑에서 세 사람을 향해서 올라오던 푸줏간 급사가 마침내 그들을 지나쳐서 머리에 짐을 이고 뽐내듯이 퉁퉁거리며 계단을 올라왔다. 그 때야 비로소 잠자 씨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난간을 떠나 가벼운 기분으로 집안으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오늘 하루를 쉬면서 산보나 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일을 쉴만한 이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책상 옆에 앉아서 잠자 씨는 자기 지배인에게, 잠자 부인은 내재봉 주문자에게, 그리고 그레테는 상점 주인에게 각각 결근계를 썼다. 결근계를 쓰고 있을 때, 할멈이 아침 일이 다 끝났으니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던 그들은 얼굴도 들지 않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나 할멈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내며 얼굴을 들었다.
"왜 그러고 있어요?"
하고 잠자 씨가 물었다. 할멈은 도어 옆에 서서 미소를 지었다. 할멈은 가족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려고 왔지만 상대방이 캐묻지 않으면 선뜻 알려 주지 않겠다는 그런 태도였다. 할멈의 모자 위에 타조의 작은 깃이 하나 꼿꼿이 꽂혀 있었는데 가볍게 이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할멈이 자기 집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잠자 씨는 그 깃이 몹시 비위에 거슬렸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요?"
하고 잠자 부인이 물었다. 할멈은 이 집에서 부인을 가장 존경하고 있었다.
"네……"
할멈은 이렇게 대답을 하고 정답게 웃느라고 바로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저어 옆방에 있는 그것을 치울 걱정은 조금도 마세요. 벌써 제가 다 치워버렸으니까요."
잠자 부인과 그레테는 결근계를 계속해서 쓰려는 듯이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잠자 씨는 할멈이 모든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려고 하는 눈치를 했을 때, 손을 내밀며 한사코 거절했다. 할멈은 거절을 당하자, 자기도 매우 바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분이 상한 듯이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하고 외치고 홱 돌아서더니 요란스럽게 도어를 닫고서 집을 나가 버렸다.
"저녁에 돌아오면 할멈은 내보내."
잠자 씨가 이렇게 말했으나, 아내나 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애써서 간신히 얻은 마음의 안식이 할멈 때문에 다시 수포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내와 딸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옆으로 가서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다. 잠자 씨는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두 사람 쪽으로 돌리더니, 잠시 동안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자, 그만 이리 좀 와. 지난 일을 더 생각해서 뭘 해. 자아 이제는 나도 좀 생각해 달란 말이야!"
아내와 딸은 아버지에게로 달려가 그를 위로한 다음, 빨리 결근계를 써 버렸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모처럼 함께 집을 나섰다. 몇 달 동안이나 이런 일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전차에는 오붓하게 그들 가족뿐이었다. 따뜻한 햇빛이 차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들은 좌석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고, 장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들의 앞날은 전혀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왜냐 하면 이제까지 서로 물어 볼 기회조차 없었지만, 막상 서로 이야기해 보니 세 사람의 직업은 모조리 퍽 훌륭한 것이며, 특히 앞으로는 더욱 유망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선 당장에 집안 환경을 개선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이사를 가기만 하면 쉽사리 해결될 것 같았다. 그들은 그레고르가 택한 현재의 주택에서 쭉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그들은 현재의 주택보다도 작고 집세가 싸지만 그래도 위치가 좋고, 무엇보다도 실용적인 주택을 택하기로 하였다. 그들이 이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잠자 부부는 점점 활기를 띠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고 거의 동시에 다음과 같은 현상을 눈치챘다. 즉, 그레테는 최근에 얼굴빛이 창백해지도록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벌써 토실토실 예쁘게 피어난 처녀의 자태로 자라났다는 사실이다. 잠자 부부는 점점 말을 잊고 심각해지며, 또 거의 무의식적으로 눈과 눈으로 마음을 통하면서, 이제는 슬슬 딸을 위해 훌륭한 신랑감을 얻어 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전차가 목적지에 닿았을 때, 딸은 제일 먼저 일어나 풍만한 젊은 육체를 쭉 폈다. 딸의 모습은 잠자 부부의 눈에는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을 다짐해 주는 것처럼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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