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옛날, 호쿠 남질이라는 한 젊은 남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는 아주 먼 곳에 사는 아리따운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이미 결혼한 몸인 그는 낮에는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집안일을 돌보고 밤마다 연인에게로 와서 잠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거리가 너무나 멀었으므로 연인은 그에게 아름다운 연황색 마법의 말 한 필을 주었다. 그 말을 타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금세 달려갈 수가 있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그가 집에 도착하기 일 마일쯤 전에 반드시 고삐를 당겨서 말의 속도를 늦추어야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3년 동안 이런 식으로 밀회를 계속했다.
◇아들의 머리자르기 행사가 열린 날, 이 여인은 곱게 단장을 하고
갈타이의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쿠 남질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고삐를 당겨야 한다는 규칙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마법의 말을 알아차렸고, 그간의 일도 눈치채게 되어 버렸다. 분노한 아내는 아름다운 연황색 말을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 호쿠 남질은 다시는 연인을 만날 수 없었다. 그의 슬픔은 너무나 깊었다. 몇 달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시름에 잠겨 있던 그는 마침내 하나의 악기를 만들었다. 악기의 몸체 끝부분에는 아름다운 연황색 말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말머리를 새기고 죽은 말의 갈기를 이용해서 활을 만들었다. 그 악기를 연주하고 있으면 그는 다시금 아름다운 연황색 말 등에 올라 새하얀 달이 드높이 뜬 신비로운 밤의 스텝 평원을 달려 머나먼 연인의 유르테로 향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연주하는 음악의 구슬픔과 애수에 매혹당했다. 그래서 과거에 이 악기는 남자만이 연주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연황색 말을 죽인 것이 질투에 불타는 한 여인이었으므로.
이것은 내가 책에서 읽은 말머리장식호궁, 즉 마두금에 관한 수많은 전설 중 하나이다. 몽골의 설화와 전설을 소개하는 책마다 마두금의 유래가 나와 있지만 어느 하나도 같은 게 없으니 놀랍다. 그 모든 다양한 버전의 공통점이라면 단지 그것이 한 마리 아름다운 말의 죽음에서 유래했으며, 그 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인간이 이 악기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어디서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든 간에 마두금은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우며 매혹적인 악기 중의 하나일 것이다. 몽골의 바람과 말의 영혼을 품고 있다가 사람의 연주에 따라 그것이 흘러나오게 되는, 그런 음색의 악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알타이에 갔을 때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유목민 아이들과 이 전통악기 마두금이다.
◇갈타이의 연주 모습.
내가 마두금 소리를 처음으로 들은 것은 '우는 낙타 이야기'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2003년 겨울 그 영화를 베를린에서 보면서 동물을 '고기 상품'으로 대하지 않는 유목민들의 육식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영화에서 아기 낙타를 돌보지 않으려 하는 어미 낙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고비사막의 유목민은 결국 마두금 연주자를 유르테로 초빙해 낙타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그의 마두금 연주를 들은 어미 낙타가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아기 낙타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이 나온다.
욕망과 빈곤, 물질과의 경쟁을 당연한 교리로 알고 있는 우리 도시인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 어느 한 고적한 귀퉁이에서 그러한 의례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감동적이다. 또한 그런 삶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소수의 전통적 종족들과 우리가 거대한 세계시장에서 함께 경쟁하고 있다는 생각이 매우 불편하게도 느껴졌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본 독일인 친구는 음악을 듣고 낙타가 감정에 겨워 눈물을 흘릴 거라는 생각 자체가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과잉 감상 장치라고 판단하면서 신기한 유목 풍습의 광경에서 더 많은 재미를 찾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전통사회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관객들에게 실제로 제공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엔터테인먼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 그때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던 것,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영화를 만든 공동감독 중 한 명은 독일에서 공부한 젊은 몽골 여인 비안바수렌 다바아인데, 그녀가 쓴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독일의 영화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선생님이 다큐멘터리 필름을 하나 가져와 강의 중에 틀어주었다. 몽골 유목민들이 양을 도살하는 장면이었다. 즉 말하자면 가엾은 짐승을 사람들이 '살해'하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잔인한 장면이 불편해진 학생들은 하나 둘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그녀는 속으로 의아해 한다. 왜 선생님은 양을 도살하기 전에 몽골에서 으레 하는 신에 대한 감사 인사, 양의 영혼을 위한 제의, 자연의 어머니에게 올리는 사죄, 농업이 불가능한 땅에서의 유목문화, 그리고 너무 많은 죄업이 쌓이지 않도록 일정 나이 이상 먹은 사람들은 가축 도살에서 손을 놓게 되는 유목민의 풍습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 소개도 없이 달랑 저 장면만을 잘라내서 (말하자면 제3세계 몬도가네식으로) 소개하는 것일까….
◇말머리장식호궁 머리부분.
마리아의 악기를 촬영한 것이다.
마리아는 커다란 악기 케이스를 알타이로 가지고 왔다. 그것은 그녀가 지난번 몽골 방문 때 구입한 말머리장식호궁이었다. 첼로보다 조금 작은 사각형 보디를 다리 사이에 놓고 의자에 앉아서 활로 연주하는 것인데, 현이 단 두 줄이며 끄트머리에 우아하게 고개를 수그린 말머리가 새겨져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악기의 소리를 처음 들으면 음색이 사람의 음성과 비슷하다는 느낌에 놀라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고도로 다듬어진 예술적인 표현에 어울리도록 정교하고도 폭넓은 음색을 가졌다고 한다면, 말머리장식호궁은 비올라 디 감바의 소리처럼 부드럽고 그윽하게 낮으면서, 동시에 그보다는 좀 더 안개가 서린 느낌, 덜 가다듬어진 인상과 단순한 표현력, 그리고 소박한 어휘를 가져다 주며, 그래서 도리어 인간적인 호소력이 더 짙은 편이다. 나는 그 흐느끼는 듯한 슬픈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마리아는 원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첼리스트였으므로 비교적 쉽게 이 악기를 연주할 수는 있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가르쳐줄 스승도 없을 뿐만 아니라, 원래 말머리장식호궁으로 연주하는 음악은 악보가 없으므로 직접 연주를 듣고 그것을 따라하며 배워야 하는데 고향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여기에 오면 갈타이에게 연주를 배울 수 있었다. 갈타이의 말머리장식호궁 연주는 훌륭했다.
유목민 아이들에게 가장 큰 행사는 태어나서 첫 번째로 머리를 자르는 날이다. 유목민 아이는 서너 살에서 다섯 살 정도가 될 때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기르다가, 그날 최초로 머리를 자르게 된다. 머리자르기는 특별히 택한 기일에 행해지며 그날은 인근의 모든 사람이 초대되어 함께 참여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도 한번 그 행사에 초대를 받았는데, 머리자르기의 주인공은 귀엽게 생긴 다섯 살 난 인근 유르테의 어린 남자아이였다. 나는 적지 않게 놀랐는데, 우리와 아주 가까운 유르테에 사는 그 남자아이를 여러 번이나 보면서도 늘 그 아이가 여자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생김도 귀여울 뿐만 아니라 행동도 아주 애교가 있는 데다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으므로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갈타이의 설명에 의하면, 유목민 아이들은 유아 사망률이 높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남자아이의 사망률이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유목민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머리를 길러서 악령이 여자아이로 착각하고 그냥 놓아두도록 속임수를 쓴다는 것이다. 그러다 다섯 살이 되면 이제 악령도 어쩌지 못할 것이므로 그때 머리를 잘라 성별을 표시한다.
머리자르기에 사용되는 도구는 성스러운 푸른 천으로 장식한 가위로, 남성 최연장자로부터 시작하여 그날 초대받은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면 한 조각씩 아이의 머리를 잘라주는 식으로 행해진다. 머리를 자른 다음 선물로 지폐를 가위의 푸른 천 사이에 끼워준다. 잘린 머리칼은 푸른 천에 싸 보관했다가 나중에 아이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예를 들어서 병에 걸리거나 할 경우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면 신비스러운 치유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안장도 없이 갈기를 잡고 능숙하게 말을 타는 유목민 사내아이.
이런 유목민들도 간혹 낙마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머리자르기 행사가 있던 날, 갈타이는 말머리장식호궁을 연주하고 갈잔을 비롯한 유목민들은 노래를 불렀다.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주었다. 그녀는 잔치 예복인 분홍빛 비단 델 차림이었다. 햇볕은 따스했고 가까이 보이는 얼음의 절벽은 눈으로 덮여 희게 반짝였다. 손가락처럼 갈라진 날개를 한 솔개가 바람을 타고 느리게 공중을 선회했다. 그때 갈잔이 춤추고 있는 여인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말했다.
"저 여인은 한때 정말 아름다운 유목민 소녀였다. 뺨이 붉고 눈이 별과 같았지. 하지만 스텝의 혹독한 삶은 여인이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하게 허용하지 않는다. 오늘 머리를 자른 아이는 저 여인의 네 번째 아들이지. 그녀의 남편도 피가 뜨거운 남자라 젊은 시절 많은 방황을 하면서 오랫동안 여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아이들의 아버지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부지런한 목동이 된 거야. 저 여인의 춤을 봐라. 저 여인의 미소도. 삶과 음악에 겨워 춤추는 저 유목민 여인을."
*출처 [세계일보 2011.03.03 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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