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 유병록
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
따뜻한 살갗 안쪽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
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부는 식어간다
이미 여러 번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차분하게
차가워지는 가슴에 얹었던 손으로 이미 견고해진 몸을 붙잡고 흔들던 손으로
두부를 만진다
지금은 없는 시간의 마지막을, 전해지지 않는 온기를 만져보는 것이다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피가 식어가고 숨소리가 고요해지는 느낌, 영혼의 머뭇거림에 손을 얹은 느낌
이것은 지독한 감각, 다시 위독의 시간
나는 만지고 있다
사라진 시간의 눈꺼풀을 쓸어내리고 있다
유병록 1982년 충북 옥천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2010년〈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뚝배기에 김치찌개를 올려놓고 창비 블로그 창문을 살짝 연다. 백상웅님의 인터뷰를 얼른 읽는다. 밥솥에선 삐익 신호가 울린다. 아점을 먹을 시간이다. 두부는 주말 아침처럼 여유스럽다. 인터뷰 중 두부란 시를 짓기 위해 한 달 동안 귀가하며 두부를 사 들고 갔다는 유병록 시인의 생활과 시 이야기가 있어 두부를 찾아보았다. 두부에 대해선 바닷물 간수로 만든 초당두부에서 어린 시절 지겹사리 먹던 옛날두부까지 얘기가 무진장 많지만, 난 지금 배가 고프다. 맞다, 배 고플 때 먹는 두부가 최고다. 그런데 요즘은 두부 맛을 잘 모르겠다. 오늘 아침 김치찌개에도 굵은 멸치와 리챔을 넣었다. 추억으로 먹게 되는 두부, 큰집에서 출소할 때 다신 사고치면 안 된다고 받아먹는 두부, 미꾸라지가 들어가 박힌 뜨거운 미꾸라지 두부까지, 두부는 그저 시로 읽거나 써야 할 소재로 보인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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