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미송 2014. 6. 9. 07:53

 

1

드디어 호박꽃이 피었다. 호박도 자그맣게 달렸다. 호박이 떨어지지 않고 잘 크고 있나, 아침마다 들여다본다.

새벽이면 꽃 속을 들여다 본다. 개미들이 달라붙은 꽃잎이 불안하다. 쌀뜨물 EM을 분사해 주었지만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움직이는 화초들( 강아지 세 마리)처럼 제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화초들도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건 마찬가지…….

꽃도 열매도 짐승들도 주인을 닮아 가는 것 같다.

 

2

9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빌렸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 인디언들이 남긴 어록은 두껍고 무겁고 길어서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느 단락에선 '어머나 어쩌면 이럴 수가 하다가 책장을 덮어버린다.

 

노란 포스트잇으로 표시해 둔 페이지를 다시 펴고 필사를 한다. 참으로 잔악무도했구나, 하면서.

 

 

3

마침내 존 메이슨 대장이 이끄는 청교도들이 갑자기 신비주의자의 강(미스틱 리버)이라고 이름 붙은 샛강 하구에 사는 피쿼트 족 마을을 공격했다. 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마을 주민 7백 명 대부분을 학살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공격의 대열에 참가했던 코튼 매더 목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인디언들은 불에 구워졌으며, 흐르는 피의 강물이 마침내 그 불길을 껐다. 고약한 냄새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승리는 달콤한 희생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올렸다."

 

포로로 잡힌 인디언들 중 남자들은 서인도 제도에 노예로 팔려가고 여자들은 병사들이 나눠 가졌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숱한 피의 역사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하나로 꼽히는 이 '달콤한 희생'위에 보스턴을 비롯한 동부의 내로라 하는 도시들이 찬란하고 영광스런 문명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4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언어나 개념을 공유할 수 없으니까.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까 싶지만 곰곰 따져보면 그 표현은 곧 그의 정신이므로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인정해야 한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하는 것을…….

 

*책 제목

 

 

5

STRANGE FRUIT - Lewis Allen


Southern trees bear strange fruit,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
Pastoral scene of the gallant south,
The bulging eyes and the twisted mouth,
Scent of magnolias, sweet and fresh,
Then the sudden smell of burning flesh.
Here is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For the rain to gather, for the wind to suck,
For the sun to rot, for the trees to drop,
Here is a strange and bitter crop.

남부의 나무들은 이상한 열매를 매달고 있네
잎에도 피가 있고 뿌리에도 피가 있네
남부의 산들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검은 몸
포플러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열매
웅장한 남부의 목가적인 풍경속에
튀어나온 두 눈과 뒤틀린 입
목련향 향기롭고 신선한데
갑자기 나는 살 타는 냄새
여기에 까마귀가 뜯어 먹을 열매가 있네
비가 모이고, 바람이 흡수할
태양이 썩게하고, 나무가 내려놓을
여기에 이상하고 불쾌한 수확물이 있네

'


‘이상한 열매’란 백인들에게 목이 매달리는 린치를 당해 나무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흑인들의 시체를 의미한다. 빌리 홀리데이는 그 뜻을 잘 모르거나 알아도 죄책감은 커녕 재미있어 하는 백인들을 위해 재즈클럽에서 눈물을 삼키며 이 노래를 불렀다. 교양 많게 생긴 백인여성이 다가와 “제목이 무엇이더라, 검둥이 시체가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섹시한 노래, 그 노래 좀 불러달라”는 노래신청을 받고 노래를 부른 뒤 그녀는 무대 뒤로 나와 참았던 울음을 터트려야 했다.

 

이 곡은 듣는 이들의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강열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30년대 말, 다수의 백인들이 흑인 청년을 집단구타하고 나무에 매달았다. 이 사건을 목도한 흑인 청년 '루이스 알렌'은 이에 대해 시를 쓰고 곡을 붙였다.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흑인 청년의 시체를 노래한 것이다.


남부의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열매는 다름 아닌 백인들에 의해 린치를 당해 죽은 흑인들의 시체였으며, Lewis Allen은 사진을 보고 난 후에 느꼈던 공포와 충격을 표현하기 위해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는 다른 뮤지션들에게 이 시를 보여주며 음악을 만들어줄 것을 부탁했지만 백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우려한 뮤지션들은 이를 거절했고, Lewis Allen 그 자신이 직접 시에 음악을 만들어서 한곡의 노래로 만들었다고 한다.

초기에 이 곡은 뉴욕을 중심으로 저항곡으로써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Billie Holiday가 Strange Fruit을 타이틀곡으로 한 동명의 앨범을 1939년에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이 곡은 反린치 운동의 성가로 인정받으며 50년대와 60년대의 민권 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처음 이 곡이 연주될 당시의 모습을 Billie Holiday는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 이 곡을 공연했을 때 나는 이 곡을 부른건 실수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노래를 다 부르고 났는데도 가벼운 박수소리 하나 없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한명이 일어서서 정신없이 박수를 쳐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모두들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고 환호해 주었지요. ”이 곡은 Billie Holiday의 공연에서 주로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곤 했는데 곡이 시작할 무렵이면 서빙하던 웨이터들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클럽의 조명은 무대 위의 Billie Holiday를 비추는 조명 하나만 남긴채 모두 꺼졌다고 한다. 전주가 울릴 때 그녀는 마치 기도를 하듯이 눈을 감고 무대위에 가만히 서 있었고, 노래가 끝나고 나면 종종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1978년 이 곡은 Grammy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미국 음반 협회(the Recording Industry of America)에 의해 세기의 음악(Songs of the Century)으로 뽑혔다. 1999년 타임지 또한 이 곡을 세기의 음악으로 선정했으며, Christopher Browne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하고  오페라, 소설로 각색되기도 했다.

과연 지금은 미국 사회가 인종차별 없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미국사회가 그런 차별이 없는 평등을 가치의 최고로 여기는 사회가 아님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미국사회가 인종차별의 벽을 어떻게 부수며 진화해 나가는가 궁금해 하며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한다면 망망한 바다에 돛단배 하나 띄워 노저어 보시길.

 

6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이라고 들어보셨나요.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미국에서 영국과 캐나다의 도움을 받아 행해진 최초의 핵무기 개발 계획의 암호명이죠.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미군의 감독 하에 지휘를 맡았고 실험에 성공하자, 그해, 86일 히로시마 시에 투하 8만 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6만 명의 사람들에게 죽음의 재로 인한 암을 안겨주었습니다. 약육강식의 전쟁터에서 우리도 살고 있지만, 그 때 상황을 내려다보던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입에서 '오 마이 갓 쌩큐'가 저절로 나왔다니, 그게 말이 되는 말인가요. <오>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 - Billie Hol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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