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승훈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

미송 2023. 1. 10. 11:59

 1

 비가 와서 엉터리 시 한 줄 쓰오. 비가 와서 비가 와서 쓰는 시 나 대신 저 비가 쓰면 좋지. 그러

나 비는 시 쓸 줄 모른다고 대신 쓰라고 유리창에 이마 대고 말하네. 돼지 저금통에 동전 넣어도

계속 비는 오고 저금통은 차지 않고 다시 동전 넣고 또 넣고 그래도 비가 온다. 고기반찬 달라고

비가 오네.

 

  2
  “선생님은 신부십니까?” 어느 날 택시 기사가 물으면 . 신부 맞아요.” 대답하고, “선생님은

스님이십니까?” 어느 날 택시 기사가 물으면 . 스님 맞아요.” 대답한다. 이젠 신부든 스님이든

부르는 대로 모두 나다. “저기 영안실 앞에서 세워 주세요.”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앞에서 택

시를 내린다. 5층 뇌신경과 복도 7번 진료실 앞에서 기다릴 때 간호원이 나와 이승훈 님!” 부른

. “.” “조금만 기다리세요. 네 번 째입니다.” 내가 네 번째다. 신부든 스님이든 네 번째든 모두

같다.

 

  3
  식탁에 앉아 양파 먹을 때 번개가 친다. 입에 물고 있던 양파가 바닥에 떨어진다. 양파가 바닥에

누워 쳐다본다. 양파가 아니라 무였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 오 세상에! 무 먹을 때

번개가 치다니! 이젠 무같은 건 먹지 말아야 겠다.

 

 

 

  

비가 와서 고작 비가 와서 시를 쓰는 시인돼지저금통을 운운하니 금홍이도 스치고, 때 아닌 스산함.

 

기고만장(氣高萬丈)한 산꼭대기에서 내려와 자질구레한 구조물 사이를 걸을 것애써 모가지나 팔 다리를 자를 것 없이 면벽한 얼굴 돌려놓을 필요도 없이 누구냐 하는 삿대질도 없이그냥 평지를 걸을 것. 입에 물고 있던 것이 양파든 무든눈을 치켜뜨고 올려다보는 것이 양파든 무든양파 먹고 무 먹었다고 쌩가고번개치니깐 무서워요무 먹은 거 잘못했어요, 반성까지 하는 달인의 목소리에 박수 쳐 드리고 싶다괜찮아요本來無一物인 걸요,

 

돌아보니 시인을 좋아했던 흔적이 많다되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고 다음 날 아침 자책할 때분열스런 독백을 시라 우기다 거듭 자책할 때시인이 들려준 말 '이것은 시가 아니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시를 향한 말이라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그의 부고를 듣는다안녕! 잘 있어시인의 인사가 깊은 밤을 휘젓는다. <>      

 

 

 20140809-20230110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지현 <모른다고 하였다>  (0) 2023.02.08
메리 올리버<휘파람을 부는 사람>  (0) 2023.01.11
권혁웅<파문>  (0) 2022.12.26
노혜경 <슬퍼할 권리>  (0) 2022.12.25
장정일 <거미>외 1편  (0) 2022.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