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권지현 <모른다고 하였다>

미송 2023. 2. 8. 11:28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어대거나 서로 담배를 권했다
담배를 피워올리건 말건
나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비행기는 언제 올지 오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연착한다는 안내표시등 한 줄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나는 로비를 몇 바퀴나 돌고
하릴없이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마침내는 쪼그리고 앉아 지루하게 졸았다
항의하는 나를 마주한 공항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가야할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

비행기는 오지 않고
결리는 허리뼈를 아주 잊을 때까지 오지 않고
우루무치행 비행기는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그림, 판화가 남궁 산

 

 

시는 존재의 개명(開明)이다. 하이데거의 시론을 당선소감에 인용한 시인. 시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 존재를 개명해 가는 행위라는 뜻일까. 시 쓰기는 생의 마지막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행위예술이니,

 

그러나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보다 숨이 붙어 있다 고로 살아 있다 정도로 실존적 상황을 말해도 좋겠다. 생각의 주체마저 믿을 게 못 되는 바에야, 쌕쌕 들려오는 제 숨소리는 존재의 찐 동맹 아니겠는가.

 

우루무치행 비행기를 타면 파란 호수가 열리는 실크로드에 닿을 수 있을까.

 

모르쇠로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 불가지론자(不可知論-)가 되어 버린 사람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다고 한 소크라테스처럼, 나 역시 귀에 들려오는 제 숨소리 외에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

 

20140122-2023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