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명량

미송 2014. 8. 11. 11:14

 

 

 

 

지난 주 일요일 영화 <명량>을 보았다.

 

광고를 아무리 해도 우리는 좀처럼 영화관을 찾지 않는 편이다. 예고편이나 리뷰를 통해 충분히 내용을 알 수 있기 때문이고, 시간이 지나 파일로리에서 다운해 봐도 좋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영화 관람할 때 좋은 점은 자세를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폼에 가깝긴 하지만.

 

8월의 첫 주. 진천에서 원주로 휴가를 오신 제이의 사촌 누님을 핑계로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평일 보다 관람료를 2000원이나 더 받고 있었다.

 

영화관에 가면 왜 우리는 팝콘 냄새 앞을 얼쩡거리다 얼음 든 콜라라도 마셔야 하나. 영화비 예산에서 플러스되는 콜라 값이 사실 아깝지 않나. 안 그래도 자주 마시는 콜라인데. 두 시간 후면 얼음은 다 녹아서 컵은 원래 무게대로 있고, 콜라는 겨우 반 밖에 안 마셨단 걸 알게 되는데.

 

아무튼, 중간에 화장실 가기 싫을 정도로 스크린 속에 뜨는 이순신 장군(두 시간 동안은 배우 최민식을 이순신으로 결단코 믿고야 마는 우리)의 얼굴을 놓치기 싫었다. 그의 표정은 그가 입고 있는 갑옷만큼이나 묵직하였다. 일관된 그 묵직함이 압도적인 여운을 남겼다.

 

영화 명량을 찍으면서 배우 최민식씨가 80년 대 꾸쑝 역을 했을 때처럼 거들먹대느라 어깨를 까딱거렸거나, 올드보이에서 처럼 바글바글한 벌레에 뒤덮여 있었다거나, 취화선에서 처럼 한 손엔 술병 한 손엔 붓대를 잡고 행여 비틀거렸다거나 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상상도 안 되는 상상이다. 이번 영화에서 최민식씨는 배우로서의 사명에 충실했다. 장군이라고 거들먹대지 않았고, 죽음 앞에서도 부패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통증을 견디는 홀로만의 시간에도 알코올에 의존해 비틀대지 않았으니까. 그것이 행간에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니체적 표현으로 떠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영화 명량 속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의 얼굴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한 일년 세수도 제대로 못 한 얼굴처럼....

 

70년대 후반 초등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줄서서 들어가 봤던 이순신 장군. 그때 아마 나는 울었을지도 모른다. 난중일기나 그가 수없이 치러냈던 해전에 대해 사전지식도 없었던 내가 울었을 것이란 기억을 갖는 건, 그가 겪는 억울한 고문과 끊임없는 전쟁 속 포화와 배신의 쓰라림이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네의 일기 이후 난중일기를 알고 나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혹여 울지 않았다 해도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보다 울었다 해도) 어쨌든 나는 아직도 그때의 그 기분을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다. 손가락을 꼽기에도 번거롭게 흘렀다. 그동안 시대정신은 얼만큼 진보했는지 모르겠으나, 요즘의 정치적 세태를 보면 한 마디로 개판(오 분 전도 아니고) 그 자체다. 성웅 이순신에 열광하고 영화 속 장면이나 님이 남긴 어록 하나에도 전율하고 아우성친다. 그만큼 우리가 연약해진 걸까, 두려움으로 살아가고 있단 뜻일까, 대리만족의 타성에 젖은 탓일까.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칼로 싸웠던 이순신이 역사를 초월하여 현세에 우뚝하니 산 사람처럼 서 있는 듯한 착각을 갖고 싶은 건, 우리의 평지가 그만큼 안전하지 못하다는 뜻이고 살아있는 지도자의 부재를 증명해 주고 있단 뜻이 아닐까.

 

습관처럼, 영화를 보고 나면 일단 리뷰를 검색하고 명장면들을 동영상으로 다시 보고, 원작자를 찾곤 한다. 이번 명량에서는 영화 속 어록들을 기록해 두기로 한다. 영화를 볼 때 역시 내 귀에는 화살 소리 보단 묵은 어록들이 더 빨리 흡수되었다.

 

어제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토대로 쓴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되찾기 하다가 위키 백과에 들어 있는 김훈의 인터뷰 내용을 보았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하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김훈, <월간조선 인터뷰>

 

오래전 인터뷰이고 역설이 겹친 말이라 의중을 뚫기가 쉬운 내용은 아닌 듯싶다. ,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하는 대목에선 동감이 간다.

 

내 자리는 어딜까......?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제대로 정독한 적 없어 부끄럽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그의 일기에 적힌 다른 내용들을 진지하게 되읽기 하고 싶단 욕구가 생겼으니, 이는 영화를 보고난 후의 내 오랜 습관대로 원작자의 흔적을 찾는 일이라 하겠다.

 

참 열심히도 찍었네, 좀 시끄럽긴 했지만, 하는 게 영화관을 나오며 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러나 한 편의 영화예술을 통해 역사적 한 인물의 재조명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진맥하고, 두려움을 용기로 절망을 희망으로 다시 간직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삼 만원 그 이상의 소득이며 1000만 명 그 이상의 공감력 획득일 것이다.

 

 

 

 

영화의 엔딩 부분을 보면 대체로 초연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이제 우리의 모든 싸움은 끝났어, 하는 분위기. 올드보이에선 최민식씨가 20대를 넘긴 자기 딸을 뒤로 한 채 폭설이 내리는 눈길을 밑도끝도 없이 걸어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취화선에서도 역시 끝내주는 들길 지평선을 휘적휘적 걸어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명량의 마지막 장면 역시 바닷길 돌쩌귀 위를 걸어가는 부자지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최고 인상적이었던 어록은 그 끝 장면 속에서 나온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넌지시 묻는다. 울돌목 회오리가 그야말로 이번 전쟁에 천행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었는지요 하고. (울돌목 회오리가 명량해전 당시 진짜 일어났던 일인지 영화의 극적 설정을 위해 만들어진 시나리오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이순신의 대답은 이렇다. 너의 생각도 맞는 것이지만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렴, 진짜 천행은 울돌목 회오리였겠니, 그 회오리 속에 갇혀 침몰에 임박했던 우리 배를 끌어내 준 백성이었겠니.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이 깃든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 아닌가. 백성이 없었으면 전쟁에서의 승리도 없었단 뜻. 백성을 위해 싸웠고 백성에 의해 이겼다는 것이니 백성이야말로 알파요 오메가였단 뜻

 

난 요즘 인터넷 신문도 선별하여 읽는다. 언론과 보도(쟤들이 시방 저런 기사를 뉴스를 내보내는 의중이 뭐지)도 헤아리며 듣는다. 깔때기가 된 기분이다.

 

경향신문에 실린 그의 어록을 스크랩해 둔다. 떠들썩한 영화관에서 이젠 퇴장해야 할 시간이다. 사소하고 반복적인 일상만큼 다변적 미래를 약속하는 시간도 없기에....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영화에서 이순신은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격파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선조는 수군 해체를 명하며 이순신에게 권율의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령한다. 이때 이순신은 왕의 전갈을 가지고 온 육군통사에게 남은 병력으로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겠다고 말한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이 대사는 <난중일기>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를 풀어낸 것이다. 계속된 패전으로 병사들과 백성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 상태다. 하지만 이순신은 오히려 배수진을 친 것과 같은 불리한 상황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이순신은 군림하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왕에 대한 충정을 잃지 않지만, 그 충의 근원에는 백성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바다를 지켜내지 않으면 정유재란에서 패하고 백성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생각에 회군을 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전투에 나선다.

 

천행이었다

명량해전을 승리로 끝낸 후 아들 이회가 이순신에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이순신은 천행(天幸)이었다라고 답한다. 이어 그 천행은 울돌목 회오리가 아니라 백성들이었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승리가 자신의 뛰어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겸손한 마음이 담긴 대사다. 실제 이순신 장군도 전투에서 승리한 날 밤 <난중일기>此實天幸(차실천행)’ 이번 일은 실로 천행(天幸)이었다라고 적었다.

 

2014년 8월 둘째 주 휴무일에,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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