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이규리『 웃지마세요, 당신』

미송 2014. 8. 12. 07:33

 

웃지 마세요, 당신 이규리

 

오랜만에 산책이나 하자고 어머니를 이끌었어요

언젠가 써야 할 사진을 찍어두기 위해서였죠

팔짱을 끼며 과장되게 떠들기도 했지만

이 길을 또 얼마나 걷게 될지

 

사진관에 들어섰을 때

어르신 한 분이 사진을 찍고 계셨어요

어머니가 급격히 어두워졌어요

 

나도 저렇게 하는 거냐

 

이게 요즘 유행이라며

평소에 미리 찍어두는 게 좋다며

나도 젊을 때 찍어둬야겠다며

쫑알대는 내 소리에는 눈도 맞추지 않으시더니

 

사진사가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쓰자

우물우물 급히 말씀하셨어요

 

나 웃으까?

 

그 표정 쓸쓸하고 복잡해서 아무 말 못했어요

돌아오는 길은 멀고 울퉁불퉁했고

 

웃지 마세요

그래요 웃지 마세요 당신,

 

      이규리 시집​ 『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2014,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