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作
거울 닦기 / 오정자
그 시절 손거울과 꽃지갑에 담겼던 나의 노래는 저 산 너머 물 건너 파랑 잎새 꽃잎이었다
눈물짓는 물망초였다 행여나 오시려나 기다리는 언덕이었다 임도 꿈도 아득한 풀잎에 이슬방울이었다
음악 실기시험에서 92점 맞은 언덕에서였다 언덕에 언덕에 서 있곤 하던 때 있었지 삶은 어리고
어리석은 고비를 넘어야 할 때가 많았지 새해를 맞고서도 음식을 만들지 않은 것 같은 이웃집 음식통을
보았을 때처럼 고양이들이 흐트려 놓은 음식물을 보았을 때처럼 그릇을 벗어난 밥알들 추하다는 걸 느꼈을 때
있었지 (내 손거울 속 아직도 살고 있는 하얀 칼라의 단발머리 소녀 그 소녀는 거울 속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엄마의 말은 믿지 않는다) 닦을 때마다 보이는 소복한 발자국 거울 속에서 새해의 첫 문자가 날아오던 때가 있었지
누군가가 기다리던 내가 있었지 보상도 기대도 없이 올려지는 예배를 향해 나아가던 때, 있었지
시절시절 이야기를 닦는 아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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