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전소영< Resonance : 잊힐 수 없는 것들>

미송 2014. 9. 7. 11:02

 

Resonance : 잊힐 수 없는 것들

 

여기에선 기억만이 자라고 있네. 기억이 자라나 방이 되었지. 이 방에 앉아, 더 이상 기억할 것이 없을 때까지 나는 쓰네.  

- 김안, 「기억 후의 삶」 부분 (『POSITION』, 2013년 겨울호)

 

  *​    

                                                         

  바람이 달뜬 숨 같아지는 날엔 아지랑이를 쏘아 올리는 땅보다 적요한 하늘이 더 가깝게 닿아온다. 물비린내를 동행 삼아 옛 궁궐을 걸을 때도 그랬는데, 헤어지려는 온기의 계절과 돌아오려는 열기의 계절 사이에 지상이 엉거주춤하게 멈춰 선 날이었다. 청량감을 찾아 하늘을 더듬다, 시선의 방향을 조금만 달리하면 그제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순간, 거기에,   

 

 

처마의 사족처럼, 구름의 이물질처럼, 어처구니가 있었다.

 

  어처구니의 탄생 설화가 그렇게나 많다는 걸, 실은 처음 알았다. 국립국어원에서도, 문화재청에서도 그 내력을 보증 못한다 했다. 태생을 알 길이 없어 더 불가사의해질 수 있는 건, 그 단어가 지닌 불행이고 행복일 것이다.

  몇 년 전쯤, 꾹. 꾹. 눌러 읽었던 소설을 읽고 어처구니란 맷돌 손잡이라고 쭉 믿어왔는데 그 날 또 다른 비화를 알게 되었다. 사실 제일 유력한 설은, 잡귀들을 막기 위해 궐 지붕에 만드는 토우土偶가 어처구니라는 얘기였다. 그렇게나 중요한 걸 잊고 그냥 지붕을 올렸을 때, 그렇다고 지붕 위에 올라가 그걸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처구니가 없다, 황당하다, 말해졌다고 했다.

그 뜻이 결국 무엇이든 간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은 그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얘기, 결국 그것을 그 자리에 두어야 하는 누군가가 제 기억을 놓쳤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니 어처구니는 기억과 망각에 인접한 말이 되리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

 

*

  잊는다는 것, 잊힌다는 것. 그 외로움에 대해서라면, 온전히 다 알지 못해도, 얼마간 알게 되었던 적이 있다. 어린 시절엔 몸도 영혼도 작아 그런 지, 커서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대수로운 슬픔을 느끼는 것 같다.

  집에 그냥 두자니 좀 컸고, 데리고 다녀도 그다지 도움은 안 되는, 내가 그런 어정쩡한 아이였을 때 엄마는 장을 보러 갈 적마다 백화점 식품 매장 입구나 시장 골목 초입쯤에 있는 음식점에 나를 남겨(아마도 맡겨) 두었다. 대개는 냉면집이었고, 좀 좁았고, 아주 붐볐고, 회전률이 높았다. 대개의 사람들은 벌컥 들어와 서둘러 나오는 냉면을 마시듯 먹고 휙 나가버렸다. 그 사이에 나는 아마도 한 시간쯤, 체감하기로는 서너 시간쯤 앉아있었다. 처음에야 아무 느낌도 없었지만, 그 동행이 거듭 될수록 나는 이런 저런 일들에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박리다매로 승부를 보는 식당에서 긴 시간을 홀로 앉아 있다 보면 가끔은 종업원으로부터 (당연한) 눈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 종종 의지와 관계없이 합석도 해야 한다는 것. 음식을 다 먹고 기다리면 더 낭패가 되니, 차라리 느릿느릿 식사하는 게 낫다는 것. 엄마가 언제 올지 모르는 나는 그 시절 면발을 셀 정도로 천천히 냉면을 먹으며, 손도 발도 빠른 엄마가 가급적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거기서, 나는 아마 처음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로부터, 식당 이모들로부터, 내 앞에 앉아 자기 그릇에만 집중하는 낯모를 손님으로부터, 그 밖의 누군가들로부터 잊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잊는다는 것, 잊힌다는 것의 무심함이 실물로 다가왔던 그 순간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세 자매를 친정 엄마 손에 버겁게 맡겨두기가 미안해서, 내 고생을 알면서도 나를 데리고 나왔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게 된 지금 내게, 그 장면은 그냥 머쓱한 추억일 뿐이지만, 나는 여전히 혼 자하는 식사에 그다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밥도 느리게, 아주 더디게 먹는다.

그리고, 당신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서 잊히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 혼자라도 믿게 된다.

 

  잊어버린 주소를 찾는 데는 달빛만 한 게 없어

  사랑을 잃으면 새들은 달맞이 고개에 깃들이지

  ……그리하여……맞이한다는 말은

  너에게로 아주 달려가버리지는 않은 채

  네가 잘 찾아올 수 있게 기억을 잘 열어둔다는 것 

  - 황학주, 「달맞이 고개」 부분(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창작과비평, 2014,)

 

                                                     *                                                  

  기억이, 노래-시와 가깝다는 사실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음악Music은 그리스어 무시케Musike로부터 온 말인데, 무시케는 여신 무사Musa의 기예技藝였고, 무사 여신은 제우스Zeus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의 딸이었으니 말이다. 요는 기억이 음악의 어머니라는 것. 노래-시가 유독 기억의 그릇으로, 촉매로 만들어져 오는 일이 많았던 건 다 그 때문이었나 보다.

 

  노래는 시간을 건너뛰지 아랑곳없이

  모두 다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기억 선명하게 (…)

  나는 다시 그때 그날로

  너로 설레고 온통 흔들리던 그 날로

  밤새 들었던 이 노래를 핑계 삼아 널 그리워하는 내 모습

  달래주는 바로 그 노래 

  - 「그 노래」 부분 (작사 김동률, 2012)

 

  다만 촉매가 있어야만 불리는 기억은 서글프다. 무언가를 기억해낸다는 것은, 무심결에 혹은 일부러, 그제야, 그걸 떠올린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까. 그 때의 기억이란 아마 한가로운 날들엔 잊히고 가라앉아 있었을 것이다. 지나간 어떤 일 중에는, 단지 기억해내는 것만으로는 담기 부족한 것도 있다. 그땐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더 절박하고 순정한 기억의 부표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요사이의 일들이 그렇다.

 

* 

  시간은 가끔 눅눅한 날씨처럼 살갗에 들러붙는다. 마음의 탓이다. 마음은 늘 시간의 정확한 계기판이었다. 박제해버리고 싶을 만큼 가열한 순간에는 스쳐가던 시간이, 어느 늘어진 날엔 옆에 웅크리고 앉아 도무지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그저 느릿한 시간만이 내 옆에 우두커니 있다 여길 때, 삶은 산다기 보다 견디는 것이 된다. 그 견딤의 나날에서 가장 아픈 때는, 잊히지 않아야 할 것들이 결국 무심하게 잊히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일지 모른다.

 4월 이후, 많은 것들이 어려워져, 많은 것들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슬픔에 대해 혹여 섣불리 말해버릴까 두렵고, 맹렬하게 육박해 왔던 그 슬픔마저 끝내 희석되어 버릴까 다시 두렵다. 다만 한 가지. 기억은 생채기를 내지만, 또 기억으로 상처가 아물기도 하는 것. 기억이라는 것은 절대 어떤 운명도, 구원도 아니겠지만, 하나만은 믿고 싶어진다.

  우리 삶에는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허다한 상실의 풍경들이 펼쳐지겠으나, 그 순간을 함께 앓았던 기억을 우리가 내내 나눠가진다면, 나눠진 그것은 기어이 잇대어져 ‘우리’의 삶을 둘러쌀 것이라는 걸. 어떤 질긴 것보다도 더 단단하게 우리를 동여매 줄 것이라는 걸.

그러니 기억이 당신과 나를 껴안아 하나의 길이 되어도 좋다. 그걸 슬픔이라 불러도 좋다. 그 위로 누군가 또 걸어갈 것이니.

 

  사랑이여, 당신이 날 껴안아

  이 겨울 은현리 빙판길 되어도 좋다

  그걸 슬픔이라 불러도 좋다

  그 위로 누군가 또 누군가 걸어갈 것이니 

  - 정일근, 「겨울의 길」 부분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문학과 지성사, 2009.)

 

 

 

전소영 문학평론가 

1983 서울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1년  문학사상 신인상 평론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현재 『시인광장』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