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의 작품

병실 809호

미송 2014. 10. 27. 22:04

 

 

병실 809 

   

입원한지 일주일이 지나자 나의 숨소리는 정상을 찾아 갔다.  모처럼 깊은 잠에 떨어질  있었다.  몽롱한 의식으로 입원하던 날에 나는 거의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다.  고열과 몸살그리고 가쁜 숨결에 시달리다가 새벽녘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서  발을 내딛는 순간에 깜짝 놀랐다.  모처럼 발작하는 천식이었지만 이렇게 꼼짝도 못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번째 발을 떼자마자  주저앉았다.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꼼짝도 못하고  자리에서 그냥 질식해 죽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입을 벌리면 목구멍까지 들어  산소가 퉁퉁 부어서 좁아진 숨관을 통과하지 못했다.  가슴을 힘껏 펴고 숨을 들이마시지만 휘파람소리만 휘익 하고 목구멍에서 날카롭게 들렸다

 

핸드폰을 들어서 아내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멈칫했다.  이혼까지 거론했던  당시이기에 나의 몰골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119구조대나 병원의 응급실에 구조를 요청하려 했지만 역시 보호자를 찾으면 아내에게 연락이   같았다.  거리에 쓰러져도 좋으니  자존심에 순교하고 싶었다.  윗목에 벗어 던졌던 청바지를 벽에 기대앉아 주섬주섬 걸치고팔을  뻗어 오리털파커를 끌어당겨  위에 엎어지면서 소매를 찾아서 팔을 더듬더듬 집어넣었다.  

수의...... 살아생전에  손으로 수의를 입을  있다는 만족감희미하게 나오는 미소는 분명히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가 처리할  있다는 만족감이었을 것이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수표와 지폐를 모두 합하여 오륙  만원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은행현찰카드가 있었으니 통장에는 거의 삼백 만원 가까운 액수가 입금되어 있었다.  나는  원권 지폐로 현찰카드를 반듯하게 싸고는  위에다가 병원 측에서 보라고 글을 적었다

혹시 제가 죽으면 장의사에 연락하여  돈으로 장례를 치러 주세요.  통장의 비밀번호는 0000입니다.” 

 병원에만 응급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집에서 차를 몰고  삼십  정도 떨어진  병원을 어떻게 찾아갔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하고 들이닥치는 겨울의 새벽공기  발자국 기어가다가 기진맥진하여 휘파람소리를 휙휙 내며 들이마시던  줌의 산소자동차의 문에 매달려 키를 꽂으려 한참 더듬거리던 깜빡깜빡 소리를 내던 노란 비상등.  시동이 걸리는 소리와 함께 질주하던 자동차

환한 전조등이 응급실  앞에 들이닥치고 요란한 경적이 울리자 짜증난 얼굴로 간호사가 문을 열어보았던가,  그리고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흔들리던  손을 보았던가,  산소호홉기가 솨솨 소리를 내며 코에 걸쳐졌다

거의 일주일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슴을   있으면 조그마하게 오그렸다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지냈다.  입과 코를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산소가 목구멍에서  막혔으니 잔칫상을 코앞에 두고 굶어죽는 것이 삶의 마지막 장면이라는 생각이었다.  

어휴 사람이 죽어 나가는  알고나도 잠을 제대로  잤었어.” 

비로소 구석에서 환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제대로 들렸으니까맣던  안색이 점점  색깔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일주일이 되자 몸을 바로 돌려 비스듬하게나마 기댈  있었고 이튿 날에는 몸을 옆으로 웅크린  겨우 잠에 떨어질  있었다.  

 

나는 완벽한 잠수상태였다.  친구들도사무실 직원도흔들리던 가족들도  행방을 몰랐다.  가장 머리에 걸렸던 사람은  명의 직원이었다.  옆에서 핸드폰을 빌려 경리를 보고 있던 김양에게 전화를 했다.  병원위치도  가르쳐 주고는 거래처에서 대금을 회수하여 직원봉급에 충당하라고 지시했다.   사정을  아는 김양은 울먹였다.   명의 직원에게 다른 곳에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전해 달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깊은 잠은 편한 휴식이었다.  아무도 말조차 걸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은  멀리 떠나는 기분이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포도당액수치가 높은 항생제주사부작용이 많다는 스테로이드콧속을 말리는 산소 뿜는 소리동맥에서 뽑은 피에 섞인 산소함량수치

이것이 누워있는 나의 전부였다

 

일주일 동안 대변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았고소변도 거의 보지 않았다.  오직 진땀만 흘렀던 기억이다.  보호자  명도 없는 나를 측은한 눈초리로 보던 옆에 있던 환자가 보호자에게 여러 가지 용품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칫솔치약비누수건생수등등 

 

텔레비전에서는 뉴스와 특집으로 IMF 대하여 하루 종일 떠들었다.  평생을 민주화를 위하여 몸을 바쳤다는 김영삼대통령이 아들의 비리와 경제파탄에 대하여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으며그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은 차기의 대권을 앞에 두고 외환경제위기에서 벗어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눈은 메말랐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지  땅에는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스로 애국자라고 뽐내는 사람이 얼마나 허망한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지 깨달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양치질을 하는  속에 퍼지는  치약의 상쾌함이 정치가의 말보다는 훨씬 개운했다.  사채시장마저 얼어붙은 거리는 줄초상이었다.  부도수표를 앞에 두고 쓰러진 친구도 있었으며유서  장도  남기고 자살한 사업동료도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겨우 혼자서 움직일  있었다.  복도를 걸어서 저쪽 끝에 가면 의자가   놓여 있고 통유리로 밖을 내다볼  있었다.  전국은 창밖의 추위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나처럼 본의 아니게 잠수를  사업가가   명이 아니었다.  잠수라도  타면 자살해야 한다.  잠수는 무책임한 도피가 아니라 목숨이라도 붙어 남아야 나중이라도 기약할  있다는 새로운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목숨을  최후의 시도였다

 

매일 먹고 자고 먹고 자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끊임없이 잠을 잤다.  깨어있는 의식이 싫어서 잤고 눈으로 들어오는 세상이 혐오스러워서  잤다.  텔레비전에서는 거의 매일 같이 자살한 사람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가정이 파탄 나고 채권자들에게 쫓겨서 거리로 내몰린  또래의 사나이들이 노숙자라는 전대미문의 딱지를 붙이고 떠돌았다.  정치가들은 여전히 신소리를 해댔고 나를 평생 동안 속여   소리를  지껄였다

 

 같은 새끼들죽을 때까지 국민의 뼈골을 파먹고 사는 기생충 새끼들,” 

나는 텔레비전에서 정치가의 뻔뻔스런 얼굴이 보일 때마다 혼자서 중얼거렸다.  애국은 매국노의 최후의 도피처라고 했던가나라를 걱정하는  치고 나라의 돈을  빼먹은 놈이 없었다.  한국이라는 땅에는 자본주의를 뛰어 넘은 재벌의 왕도가 따로 있었다.  

전대통령도  천억노대통령도  천억김대통령의 아들도  천억을 꿀꺽했다

마치 화폐의 최소단위가  같았다.  여기저기서 억억 하며 억을  먹는 순간에 다른 곳에서는 억에 한을 품고 소리를 들으며 하며 나자빠지고억억 비명을 질렀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고개를 돌렸고 소리가 듣기 싫어서 펄럭이는 나방처럼 복도 끝에 있는 창가에 하루 종일 붙어 앉았다.  

눈이 내린다하얀 눈이...... 

하얀 수의를 들고 하늘에서 저승사자가 내린다.  

거리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노숙자들이 유령처럼 떠돈다.  그들은 춥다.  배고프다

 

낮잠을 한참 자다가 옆에서 들리는 인기척소리에 깼다

삼일 전부터 비어있던 옆의 침대에 새로운 환자가 실려 들어왔다.  배가 잔뜩 불러 올라서  건들이기만 해도 터질  같았고 호수를  속에 연결하여 들어찬 물을 빼는 모양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금 들어온 환자는 죽어나갈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이가 팔십은 가까워 보이는 할아버지가 눈감고 있었고곁에는 역시 칠십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꾸부정한 허리를 펴고 멍청한 표정으로 서성거렸다.  너무도 엄숙한 장면이었다.  세상의 모든 가치를 모두 모아봐야 죽음 하나를 당하지 못할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것은바로 죽음 아닌가

남녀노소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부자와 빈자영혼이 위대한 사람과 비천한 사람등등 가리지 않고 마지막 비단결로 인간을  찾아오는 가장 겸손한 손님은 바로 죽음이다.  나는 죽음의 미학을 느꼈다.  최후의 순간에 어떤 인간이라도 포근히 감싸 안고 그토록 지겹게 세상을 붙잡던 손을  털게 만들고아무것도  보이게아무것도 들리지 않게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배려해 주는 것이 죽음 말고는 세상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삶은 비용을 요구하지만 죽음은 비용을  받는다.  불평  마디 없이 자기  도리를  한다

 

잠에 빠졌던 할아버지는 새벽에 깨었다.  남들이 잠에서 깰까봐 조용히 곁에서 잠자던 할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감고 있던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행동이 약간 이상한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는데그에 답하는 할머니의 중얼중얼 하는 소리가 겉돌고 있던 것이었다.  

여보오줌통이  찼나 .”하고 할아버지가 말하니

아까 집에 가서 개밥은 주고 왔어요.”하고 할머니가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툭툭 치면서 침대 아래에 놓여있는 오줌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할머니는 비로소  뜻을 알아채고 몸을 침대 아래로 들이밀더니   오줌통을 꺼내들고 화장실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할머니의 귀가 어두운  같았다.  근심스런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나를 할아버지가 힐끗 보더니 엷은 미소를 지었다.  

할망구가 귀가 어둡고치매기도 있어요.  그래서 무슨 말을 하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요.” 

두어 번의 수술로 누구와 편히 말도 못했었는지할아버지는 도란도란 낮은 음성으로  사연을 이야기했다

 

노부부는 병원에서 버스로  시간정도 걸리는 교외에서 남의 땅에다가 농사지으며 사는데하나 뿐이 없는 자식은 멀리 떠나 있어서 소식도 모른다고 했다.  배에 물이 자꾸 차올라서 병원에 오니 오장육부가 이미  거덜 났다는 진단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사실을 알았는데전립선암이 많이 퍼져서 이미 손을   없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요도에 연결시킨 호스로 소변을 받아내는데아무래도 얼마  살고 죽을  같다고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웃으며 배에서 밖으로 나온 호수를 흔들고 나더니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요도에서 연결된 호스를  가리켰다.  할머니는 치매기가 있어서 병원을 따라다니며 자꾸 헛소리를 하는데낮에는 집에서 키우고 있는  마리의 개에게 밥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번은  집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 인간종말정확하게 나를 포함한 인간종말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통을 들고 들어온 할머니는 침대 아래로 늘어진 호스를  속에 넣었다.  오줌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주춤주춤 담요를 할아버지의 어깨까지 덮어주고는 히쭉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할머니에게 빙긋하며 미소를 보냈다.  그러나  미소는 할머니의 멍한 표정 앞에서  굳어졌다.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과 눈빛은 그저 높은  앞에서 황송해서 어쩔  모르겠다는 서성거림이었다마치 냉정한 태도의 농협직원 앞에서 농사자금을 대출해 달라고 굽실굽실 거리고영악한 중간치 상인에게 헐값이라도 좋으니 제발 자기가 농사지은 상치나배추를 사달라고 사정하는 표정이었다

 

돈도 없다힘도 없다도움을 주는 사람도 없다똑똑한 정신도 없다건강도 없다수명도 거의 떨어져 간다.  오직 지금까지 되풀이 되어  행동의 관성만 남았을 뿐이다.  수저를 드는 행위잠자는 행위굽실굽실 대는 행위누가 뭐라고 하면  알아듣는  하는 행위,  이런 사람들이 쓰러지면 누가 그들을 기억할 것인가,  

오로지 죽음만이...... 그들을 껴안아  것이다.   위대하다.  죽음은 삶을 용기 있게 지탱시켜 주는 가장 자비롭고 따듯한 후원자다

 

다음 날에 노부부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동네에 있는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그리고 집사와 권사라는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둘러섰다.  내가 교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렇게 경건한 기도를  적도 없었고또한 이렇게 의문스런 기도소리도 처음 들었다

하나님 아버지오늘 우리의 형제가 병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굽어 살펴 사랑의 손길을 내려주시기 바라며......” 

멍한 시선으로 머리를 흔들흔들 거리는 할머니는 밖에 드리운 해의 기울기를 측정하는  같았다.  햇빛이  정도로 기울었다면 오후  시가 되었을까,  얼굴을 찡긋찡긋 하며 무엇인가 말할  하던 할머니가 슬며시 몸을 빼더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마침 기도가 끝나는 순간이었기에 옆에 있던 목사님이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미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개밥 주러 가야 되어요.  지금 개밥이  떨어졌을 텐데......” 

 

목사가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내가  이런 의문을 품었는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의혹투성이였다.  

삶과 죽음.  선과 

삶의 반대편은   죽음일까

선의 반대는   악일까

순교자와 이단자천당과 지옥등등으로 연결된 기도소리는 옆에 앉아있던 나에게 어떤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분법으로 기도하기 보다는  가지로만 기도하자.  세상에 버려질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죽음이  하나님이다.  사망의 골짜기는 아무 곳에도 없다

 세상에서 도저히 삶의 대책을 세울  없는 노부부에게 삶과 죽음을 말하기 보다는 삶의 연장이 바로 죽음이라고 말하면 어떨까죽음도 삶의 일종이다.  내가 목사라면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할아버지의 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집으로 개밥을 주러 가는 할머니와 체념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할아버지에게 가장  축복이라면 눈뜬 삶을 넘어서면  하나의 눈뜬 삶이 있으니바로 죽음이라는 문턱을 넘어서면 넓은 논과 그리고 건강한 몸을 새로 받으니할머니도 처녀의 몸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니...... 

거짓말이라도 좋다즉석에서 지어낸 헛소리라도 좋다 기도소리는 그럴 것이다

 

나는 매일매일 신앙에 미쳐 지냈다

마치 곁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하나님 같았고 성모마리아 같았다.  저승사자처럼 하루에도  번씩 하얀 가운의 의사와 간호원이 할아버지의 병세를 체크하러 왔다.  평소에 하나님에게 질문하듯 할아버지의 병세를 자세히 물어보며 간병인으로 자처하고 나선 내가 더듬거리는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대답했다그러면 할아버지는 황송한 표정으로 나와 의사를 번갈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고할머니는 머리를 조아리며 굽실굽실 대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의사와 간호원이 우르르 병실에 들이닥쳤다.  노부부를 둘러싼 그들은 마지막으로 수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순간에 할아버지의 시선이 화살처럼 나에게 꽂혔다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흡사 나의 처분을 바라는 듯한 할아버지의 시선은 크게   눈과 가는 파동으로 연결되어 떨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파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용의 뒤틀림이었고몸부림이었고마지막으로 흔드는 손이었다.  훅하고 솟구치는 뜨거움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는 어떤 말이든 입밖에 나오면  거짓말이다.  같이 죽음을 뒤집어   없는 자가 혼자서만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이다.  당신은 죽을 것이 뻔하지만말이라도 이렇게 해야 지금의 자리가  서먹서먹하다는 땜질에 불과하다

 

오후에 수술실로 끌려가는...... 정확히 말해서 끌려가는 것이다.  

 시간까지 할아버지와 나는 침묵했다.  다른 환자들도 뻔한 결과를 예측하고 모른  했다.  할머니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침대 옆에 앉아서 머리만 흔들고 있었다.  유언을 하듯 할아버지가  마디 했지만 할머니가 알아듣는 말은  하나였다

개밥은  떨어졌지?” 

할머니는 히쭉 웃으며 개밥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중환자실 부근을 얼쩡거렸다.  수술을  후의 병세가 궁금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면 그냥 그렇다고만 대답했다.  할머니가 개밥을 주러 가는 시간에 복도에  있으니정확한 시계처럼 할머니가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춤주춤 다가가서 할아버지의 병세를 물었다할머니는 대답했다

선생님고맙습니다빨리 개밥을 주고 올게요.”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흔들리는 머리는 더욱 심해진  같았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숨어있던 세상은 나에게 충격을 던졌다.  노부부는 신앙인이 아니었다.  자선사업을 하는 동네 교회에서 불쌍한 사람의 명단에 끼어주었을 뿐이었다.  노부부는 올여름의 복날에 장에 내다팔 개를  키워야 쥐꼬리만한 돈이라도 만질  있는 하나님과 성모마리아였다.  세상에서 판치는 모든 인간세력의 공백지대,  손바닥만한 땅에 상치와 배추열무를 심었다가 중간 장사치에게 후려 때려 맞는 싸구려로 팔고,  아침부터 농협건물 앞에 쭈그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냉정한 농협직원에게 굽실굽실 대며 비료를  돈이라도 꾸어달라고 하고병원과 면사무소를  번이나 오락가락하여 겨우 병원에 입원할  있고무슨 병으로 죽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만큼 살았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측은하게 내려다보는 하나님그리고 꾸부정한 모습으로 개밥을 주러 발길을 재촉하는 성모마리아

 

IMF 전국이 뒤집어질 때에 나는 하나님과 성모마리아를 만나고 있었다

 

문학저널 2004년 여름 이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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