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지 않습니다.
나만이 외롭고 또한 그토록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오해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성난 얼굴로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쪽 언덕에서 불어올라 저쪽 언덕으로 불어가는 바람이 뭐가 다르겠습니까, 재산이 많으면 그 만큼 근심도 늘어나고, 사랑이 깊으면 그만큼 이별의 두려움도 커집니다. 반대로 생각해 볼까요, 가난하면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기에 자유롭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이별의 염려도 없습니다. 이것은 공평한 세상의 단면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덮었던 짧은 이불이 있었습니다. 오직 저만 덮고 자는 이불은 제가 커가면서 점점 저를 다 덮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목까지 끌어 덮으면 종아리까지 밖으로 쑥 나오기 때문에 아래가 썰렁했으며, 시린 발을 덮으면 가슴까지 이불을 끌어내려야 했습니다. 가끔 저는 돈이란 몸을 다 덮지 못하는 이불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위를 덮으면 아래가 춥고, 아래를 덮으면 위가 썰렁한 이불은 벌면 벌수록 갈증만 더해 가는 돈과 같습니다. 결코 돈은 내 몸을 다 덮어 따듯함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돈은 내 인생의 20%만 차지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80%라는 어마어마한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답니다. 혹자는 돈이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말하지만 돈으로만 해결되는 일을 쫓아다니며 하는 소리든지 아니면 세상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과정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세상에는 훨씬 많습니다. 특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과감한 결단만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저는 놀랄 만큼 돈의 위력이 적다는 것을 느낍니다. 절대로 돈을 오해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언젠가는 세상에서 버림을 받게 마련입니다. 늙고 병든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또한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내가 상류에서 흘러내려 하류로 향하듯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은 당연합니다. 새롭게 중심에 서야 할 사람들은 계속 밀려들어오고 중심에서 밖으로 밀려날 사람도 줄을 잇습니다. 그래서 나만 소외된 인간이라고 오해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나도 부자였고 그 때에 가난했던 사람이 있었듯, 지금 내가 가난하고 저 사람이 부자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가난을 오해하지도 않습니다.
짧은 이불의 기억은 사랑에도 적용됩니다.
따듯한 애정을 끌어올리면 그 아래로 뭔가 불안하고 안타까운 바람이 차갑습니다. 깊은 사랑이 언젠가 닥쳐올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별을 예감하여 아래로 이불을 끌어내리면 애정이 시원찮습니다. 노부부 중에서 한쪽이 죽으면 남아있는 사람은 하루를 백년의 세월처럼 느끼며 삽니다.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떨어져서 얼마 못살고 죽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애정이 깊기에 먼저 떠난 사람을 따라간 것이라고 편하게 말하지만 오죽하면 멀쩡한 날을 두고 그냥 눈을 감겠습니까,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지만 저도 그냥 남들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사랑은 거의 운명과 같습니다. 만들어지기도 하겠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돌덩이 같기도 합니다. 하필이면 왜 당신이고, 또한 당신에게 왜 하필이면 내가 점지되었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전생의 인연이라고 적당히 얼버무려 볼까요, 당신의 사랑이 지극하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오해를 하지 않습니다. 사랑도 하늘이 도와주어야 제대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준 고마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해야 되겠습니다.
그 이면에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세상에는 거의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꼭 짧은 이불을 덮고 겨울을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살아가든 춥게 마련입니다. 뜨거운 사랑 뒤에도 갑자기 불어 닥칠 찬바람은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살이를 오해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제가 병들어서 죽음만 기다리는 입장이 되면 어떤 생각을 할까 상상합니다. 활기찬 거리, 맛있는 음식, 웃고 떠드는 회합, 연인의 팔짱을 끼고 걷는 낭만,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살려고 기를 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여 입술만 타들어갈 뿐입니다. 세상을 모두 던져버리고 과연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종교일까요?
글쎄요, 저는 종교인이 아니라서 그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에 잠길 수 있겠죠.
세상을 오해할 정도로 나는 바보처럼 살지는 않았다고,
누구나 다 짧은 이불로 위아래를 번갈아 덮어가면서 살고, 나는 그 이불이 짧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웅크리고 잠을 잤으며 그때서야 이불은 나를 다 덮어 따듯함을 가져다주었고, 비로소 만족한 미소로 단잠에 들 수 있었다고......
문학저널 2004년 여름 이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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