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지도 자료실

기 빌루『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

미송 2015. 1. 26. 17:01

 

 

1월은 한해를 시작하는 달이지만 지난해 노력한 결과를 거두는 달이기도 하다. 대학 진학을 위해 애쓴 고3이라면 이제는 진학을 하거나 재수를 결심할 때이고, 취업을 준비했다면 직장인이나 취업 재수생으로 신분이 달라질 시기다.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실패를 겪은 후 만약 한 번 더 도전하기로 했다면 지금쯤 어떤 마음일까. 이십대 시절 오래도록 백수생활을 한 나는 입시건 취업이건 무슨 일이건 재수(再修) 시절을 견디는 일에 유독 감정이입이 심한 편이다. 어디에서도 반겨주지 않는, 소속 없는 재수생으로 사는 일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깊은 열패감과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작은 어렵지만 그래도 겁 없이 처음 시작하는 건 할만하다. 어떤 어려움을 거쳐야 할지 뻔히 아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보다 고약스러울 수 없다. 재수생활이 그렇다. 만약 주위에 재수하는 후배가 있다면 기 빌루의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를 선물하면 좋겠다. 책만 덜렁 주지 말고 꼭 편지를 함께 쓰면 좋겠다. 인생의 선배로서 당신이 가장 참혹하게 실패했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면 더 좋겠다. 그 편지에서 그때는 실패했지만 열심히 노력해 이렇게 성공했노라고 자기 자랑만 하지 않는다면, 그저 솔직하게 상대의 아픔을 공감해준다면 정말 좋겠다. 

 

여기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한 마리 있다. 개구리 앨리스는 연못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 ‘어둑한 연못 밑바닥 구석구석이며 갈대밭 곳곳의 숨어 있기 좋은 데를 다 알고’ 있고 ’뒷다리로 스물여덟 번 발길질 하면 연못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헤엄쳐 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만큼 연못은 앨리스에게 익숙한 곳, 말하자면 고향이고 집이고 학교다.

 

 

 

연못에 만족했다면 별일 없었을 앨리스는 궁금한 것 투성이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다. 마치 우리들처럼! 그래서 봄이 오면 사라지는 갈매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묻는다. 대체 연못의 갈대밭 너머 세상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그러자 신이 나서 갈매기가 앨리스에 말해준다. 이 연못보다 더 넓은 곳이 있다고. 이렇게 해서 앨리스는 바다를 보러 가기로 결심한다.

 

부모가 있다면 당장에 뜯어 말렸을 일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앨리스는 수련 잎 한 장을 돌돌 말아 옆구리에 끼고 부지런히 길을 나서 동이 틀 무렵 강가에 다다랐다. 기 빌루는 이 장면을 두 페이지 펼침으로 멋들어지게 그려냈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자 나무와 잎들과 강가로 빛이 퍼져 나간다. 세상은 고요하다. 오로지 앨리스 만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진지하게 앞만 보고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자면 멋모르는 패기와 도전, 설레임과 두려움이 뒤섞여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강가의 도시와 궁전을 보고 난 후 앨리스는 드디어 바다에 도착한다. 하지만 바다가 어디라고 조그만 개구리 한 마리를 환영하겠는가. 개골 거리는 소리는 이내 파도에 묻혀버리고, 연잎 배는 맥을 못 춘다.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에서 앨리스는 간절하게 집을 그리워한다. 다행스럽게도 마법을 지닌 달님의 도움 덕에 집으로 돌아온 앨리스! 이제 그는 더 이상 바다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 책의 묘미는 여기부터다. 앞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용감하게 떠난 개구리의 무용담인줄 알았다. ‘무사히 돌아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연못으로 돌아온 앨리스는 봄이 오자 다시 바다를 생각한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처음 기 빌루의 그림을 접한다면 평면성, 불투명한 색감, 깔끔한 선과 색 처리가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삶을 통해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남희의그림책과 작가 이야기에는 프랑스인 기 빌루가 어쩌다 뉴욕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오랫동안  살고 있는지를 잘 소개하고 있다.

 

기 빌루는 젊은 시절 마치 앨리스처럼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하겠다고 마음먹고 미국으로 향했고, 뉴욕의 마천루가 보여주는 수직성에 매료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수직의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도시 속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에서도 주인공 앨리스가 그토록 작게 그려졌고. 강과 성과 파도 같은 세상은 거대하게 표현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바다로 떠나는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보잘 것 없는 존재지만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할까 말까 할까 말까. 세상을 향한 동경과 불안은 기 빌루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코 하고 싶지 않은 더구나 실패했던 일을 또 하겠다고 용기를 낼 때, 우리 삶은 비약한다. 다시는 연못에서 앨리스를 볼 수 없게 된 비밀이 이것이다.

 

문화웹진 채널예스, | 한미화

 

 

 

1월에 접어들어 3주 동안 60여명 정도의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다세 군데 아동센터를 1회 순회하며 독서지도 수업을 반복하는 일. 올해의 업데이트된 일이다활동가로 나선 김에 하나 더 플러스하지 뭐, 하며 나는 또 우리를 만드는 일을 모의하기 시작했는데네가 오케이 하면 난 물론이지 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라도 주춤하거나 안 할래 해 버리면 바로 끝나는 일왜 꼭 그것이어야 해? 라고 네가 물었기에 나는 오늘 수업도 활동도 없는 날 컴퓨터 앞에 줄곧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일단 무식하면 끊임없는 우리들의 의문에 답할 수 없으니깐. 막상 대답할 찬스가 올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도 왜 우리가 뭉쳐야 하는가를 꾸준히 고민했다는 걸 말할 순 있을 것이다. 물론 책 한권  읽고 알았다 하진 못하겠지만 너처럼 나도 길을 찾고 있었다 고, 다음에 만나면 말해줘야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이론까지 설명하려 애쓰진 않겠다. 다만, 다만, 우리는 각자가 너무 잘났기 때문에 뭉쳐야 한다 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현실. 환상. . 절망은 오래된 이웃. 간극을 메우려고 또 하나의 결을  얼굴에 만드는 그런 일은 싫다. 그러나 사랑과 우정을 추구하며 실패를 즐길 줄 알며 미지를 향해 발을 떼는 앨리스처럼, 조금은 따뜻하게 조금은 대범하게 조금은 황당하게 그렇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 일로 인해 약자나 소외된 곳이 조금이라도 환해질 수 있는 일이라면 좋다. 이것은 독서지도할 때 아이들에게만 가르칠 주제가 아니다. 암튼, 얼만큼의 실천력이 나올지 모르지만, 우리의 자유의지에 부어질 미래의 햇살들에게 미리 안녕을 발송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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