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만극장南蠻劇場 / 박정대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여름에 쓴 시를 겨울에 발표해요
여름엔 마음이 춥고 겨울엔 온몸이 추우니 이따위 나라에서 계절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그냥 어두운 극장에 앉아 <포 노 굿 리즌For No Good Reason>을 봐요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어두운 극장에 앉아 보았던 그녀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부 데 생이라 불러봤어요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데 생, 모든 상상의 이면에는 생각지도 못한 비밀들이 감춰져 있는 걸
장마의 계절에 비를 기다리고 있어요(여름에 쓴 시를 겨울에 발표하다 보니 이런 구절도
나오네요)
마른장마의 계절 그 어디에도 시원한 삶이 보이지 않아요(겨울에 이 시를 읽으면 등골이 오싹하겠네요)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매일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새로운 세상이 오나요?
피양피양 차갑게 웃고 있는 태양다방의 박양을 향해 난 이렇게 말해요
(따라해 보세요)
부 자베 졸리 칼송 드 사탱(당신은 새틴으로 된 멋진 팬츠를 갖고 있군요)
부 자베 살 콩 드 카탱(당신은 더러운 창녀의 음부를 갖고 있군요)
노동하고 싶어도 더 이상 노동의 즐거움이 없는 날에서 분노하고 싶어도 분노의 감정마저 분단된 이따위 나라에서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지금은 함박눈 쏟아지는 폭설의 계절 아그네스가 발
차를 외치지 않아도 기차는 떠나요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은 더더구나 침묵하는 이 계절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나는 이런 시나 쓰고 있는 걸까요, 씨양!
함박눈 쏟아지는 밤거리를 걸으며 나는 중얼거려요
(자, 따라 해보세요)
주 크라 켈 상 뒤 부 데 생(그녀가 젖꼭지를 느낀다고 나는 생각한다)
테 투아 뒤 상 뒤 부 데 생(조용히 해 네가 젖꼭지를 느낀다)
푸르쿠아 상 투 뒤 부 데 생(왜 너는 젖꼭지를 느끼니?)
주 부 상타르 뒤 부 데 생(나는 젖꼭지를 느끼고 싶다)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어둡고 추운 남만극장에선 인민들에게 공갈 젖쪽지를 물린 채 그녀가 여전히 천박한 웃음을 팔고 있는데
순결한 그대 이름이 끝내 떠오르지 않아 함박눈 쏟아지는 밤거리를 나 홀로 걸어요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씨양씨양 도요가 울어요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기차는 8시에 떠나요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일테면 겨울에 쓴 시를 겨울에 발표한다 한들!
*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 부 데 생은 불어로 젖꼭지라는 뜻. 부 데 생이라고 쓰고 나는 자꾸만 부대끼는 생이라 읽어요. 외설적인 표현이 외려 따스하게 읽히는 외롭고 추운 밤 나는 자꾸만 닐 영의 ‘Heart of Gold'나 흥얼거리며 지난 계절의 시를 붙들고 끙끙거려요.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 그래요 그러니까 뭔 이유가 있겠어요 부 데 생은 뭔 이유가 있겠어요 젖꼭지
월간 『현대시학』 2015년 1월호 발표
주사酒邪 부리듯 말들을 부려 말을 정돈하고 싶을 때 있다. 욕쟁이 할머니가 애정을 전달하는 방법은 욕이고 건장한 시인이 속엣 것을 들래는 방법은 말. 말 뿐이 없고 말이면 끝나는 거다. 니가 시방 뭐라 씨부렁대는지 토옹 모르것어 하는 말에 대한 당혹감 보다 백배 나은, 저런 환한 말들을 따라가다 보면 뭉친 혹이 말랑해지는 느낌이 온다. 주객을 믹싱하지만 결국은 니 자신을 느껴라 하는 마구잡이식 몰이. 이성을 잃은 듯 보이나 시인은 중심을 잡고 있으니, 독자는 이성을 챙기며 잠시 바운스를 타면 된다, 그러면, 저 시는 즐거운(?) 노래가 된다. <오>
20150329-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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