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앞, 지나다니는 길에 주어다 놓은 검은색 낡은 소파, 지나치는 사람들 그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앉아보려 하지도 않는다.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그 소파에 슬그머니 가서 앉아보고 싶다. 소파가 그러하듯, 소파 위에 머무는 햇빛이 그러하듯,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에 의해, 나 또한 ‘평화 같고 절망 같은’ 존재로 있어보고 싶다. 그저 조용히 가라앉아 있는 불가해한 탐미의 시선이 되어... <서영은>
'햇빛은 평화와 절망을 빚어내는 빈혈 같았다'
이런 문장을 만날 때면 뇌속에 저주파 진동이 디잉~ 울리는 것 같으니, 아직도 나는 참 못 말릴 사람인가. 쓸 만큼 써 내다버려야 할 게 세상에 소파뿐이겠니? 하는 화두를, 동그랗게 말린 할머니 형상을 배치시키므로써 화자는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자니, 아직은 그래도 젊었어 하는 자신도 곧 저런 소파 모양이 될 거라 아니 할 수 없겠다. 처치(?) 곤란의 정도로 따지자면 지구 안에 인간과 비할 게 어디 있으랴만, 아무튼 화자는 아름다운 사람임에 분명하다. 인물 하나하나의 배치와 언어의 정렬방식이 가지런하고 곱기 때문이다. 세탁소의 이름까지 꽃재라니, 좋은 시 같진 않아도 진정 '시적인' 저들의 오손도손한 목소리, 아찔한 감성에 붙들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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