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희망버스, ‘가을여행’ 함께 떠나요

미송 2015. 8. 31. 22:32

 

서울시청 건너편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 위에 오른 사람들을 본다. 오늘로 82일째.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사내하청노동자 최정명, 한규협씨다. 인권위 건물 옥상이지만, 인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얼마 전, 광고업체가 밥과 식수조차 올리지 못하게 막아 10여일을 강제 단식을 해야 했다. 교섭 중에는 해고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기아차 사측은 광고탑 아래까지 찾아와 궐석 징계위를 열어 해고했다.

 

오르고 싶어서 오른 곳이 아니었다. 정작 그들을 고공으로 내몬 것은 사측이었다. 기아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화 소송에 나선 것은 2011년 7월이었다. 3년 만인 2014년 9월25일 서울지법에서 468명 전원이 승소했다. 같은 내용으로 현대차 울산공장 최병승씨와 아산공장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이미 대법원에서 명백한 ‘불법파견’으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확정 판결까지 받았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일부’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 방식으로 하겠다는 꼼수로 법원의 판결까지 무시하고 있다. 경영이 어려워서도 아니다. 기아차만 하더라도 매년 순이익이 3조원이 넘는다.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있는 돈만 100조원에 달한다. 불법파견 소송에서 승소하고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최병승·천의봉씨가 울산공장 앞 철탑에서 296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다. 이런 불법은 언제쯤이나 바로잡혀질까. 서울 도심 빌딩숲 사이로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 둘이 저 하늘 위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부산시청 앞 광고탑 위에도 사람들이 올라가 있다. 막걸리공장인 생탁의 송복남씨, 택시노동자 심정보씨이다. 생탁은 받들어 모셔야 하는 사장님들만 40명인 참 기가 막히는 회사다. 1970년 부산의 43개 양조장이 하나로 통합된 후부터다. 대를 이어 사장으로 군림한 일부 사장들은 배당금만 챙겨갈 뿐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다. 2011~2013년 평균 매출은 206억원. 사장들은 두 공장의 수익을 합쳐 n분의 1로 나눠 갖는데 월 2000여만원씩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많으냐고? 고작 120여명이다. 그것도 70%가 1년마다 촉탁직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들이다.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 한 달에 하루 쉬고 공휴일에도 일했지만 휴일 근로수당은커녕 밥 대신 고구마 하나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권리 정도라도 달라고 올 초 노조를 설립하고 교섭을 요구하자 도리어 사람들을 잘랐다. 복수노조법을 악용해 생계가 힘든 사람들을 회유·협박해 어용노조까지 만들었다. 오늘로 139일째 부산시청 앞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지만 시청은 모르쇠다.

거제도 대우조선공장 안 크레인 TTC-06호에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올라가 있다. 강병재씨다. 2011년 88일간의 고공농성에 이은 두 번째 고공농성이 벌써 144일째다. 대우조선에만 3만5000명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모든 권리를 빼앗긴 채 일하고 있다. 정규직 고용은 고작 1만여명. 대우조선 역시 명백한 불법파견에 해당하지만, 산업은행을 통해 실제 사용주인 이 정부와 국가는 아무런 조치도 없다. 강병재씨는 지난 2007년 이 무법의 공장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최소 권익을 지키기 위해 사내하청노조를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2009년 계약해지를 당했다. 2011년 고공 철탑으로 올랐고, 2012년 말까지 복직하기로 확약서를 받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고3인 딸을 혼자 두고 다시 고공으로 올라야 했다. 그도 오르고 싶어서 다시 오른 길이 아니었다.

 

그들을 찾아 12일 희망버스가 출발한다. ‘더 쉬운 해고, 더 적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내건 이 정신없는, 나쁜 정부를 향해 다시 나아가야 한다. 당신과 함께 이 여행을 떠나고 싶다.

 

 

경향신문 2015-08-31 시인 송경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