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암스테르담, 2015년 7월 19일
아침에 눈 뜨자 숙면을 취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꿈도 사나웠고 좀 추웠다. 원래 더운 곳은 아니지만 춥지도 않았던 것을.
며칠째 끼니마다 빵에 커피만 한 것도 몸에 좋지 않았던 것 같고. 뭣보다 어제 몹시 걸었다. 단 하루만의, 온전히 자유로운 날이었다.
고흐 박물관에 이틀째 가서 원 없이 보았다. 전날 너무 시간이 없어 1층부터 4층까지 뛰다시피 하며 보았던 것을, 어제는 천천히 공을 들여 볼 것을 보았다.
잠깐, 여기서 나는 호사스런 고흐 타령을, 남들 안 본 곳에 가보았다는 너스레를 풀어 놓으려는 게 아니다.
나는 고흐를 남의 일이 아니라 현실로 취급한다. 나를 둘러싼. 아, 이런 선언을 월평의 서문 같은 이런 곳에서 해도 될까. 현실이라니. 무슨 현실이란 말인가?
그런 것이 있다. 무엇이 나를 둘러싼 현실이란 말인가?
에둘러 말해 보자.
하필이면 《한국문학》이라는 올해 문광부 선정 우수잡지가 한국을 떠날 때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젠장. 문광부 선정? 우수잡지!
망할 놈의 심사는 돈은 어디다 다 쓰고 그나마 노숙 신세를 간신히 면하고 있는 문학에, 그것도 지원이랍시고, 게다가 늘 행세해온 잡지들에, 생색이나 내기 좋은 잡지들이나, 그거나마 내년에는 있느니 없느니 해가며.
《한국문학》 얘기는 아니다. 그게 《한국문학》 죄겠는가, 어디?
아무튼 눈에 띄어 가방에 집어넣고 떠나온 것이다.
오늘 자다 깨다 한 피로한 몸을 끌고 호텔을 일찍 체크아웃하고 가는 비 내리는 거리로 나와 스타벅스에 앉아 잡지를 읽었다.
소설을 두 편. 젊은 작가가 쓴 건 그래도 지성의 편린이나마 드러나 다행이었달까? 한국에서 요즘에는 진짜 작가가 되려면 장구한 세월이 걸리게 마련이니까, 어찌 됐든 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의식이 중요하다.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도대체 우리의 의식 말고 그 바깥의 현실을 그리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물질을, 경제를, 그것대로 현실이라고 간주하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그것보다 너무나 깊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 많은 작가의 작품이란? 도대체가 왜 쓰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쓰는지?
나는 그 잡지의 소설들 전부를 읽지 않았다. 단 두 편의 작품만을 읽었을 뿐이다. 그중의 한 작품은 나이가 많고 한 작품은 나이가 어렸다.
읽다 보니 추워졌다. 어제부터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것을, 아침부터 밤까지 암스테르담의 화려한 곳들을 실컷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돌아다녔던 것이다.
내게는 고흐가 현실이었다. 아니, 이상에게 도스토옙스키가 현실이었던 것처럼 내게도 어제는 고흐가 현실이어야 했던 것이다.
아니, 암스테르담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저 비엔나의 작가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를 생각하며 나 또한 아주 기이한 이야기를 꾸며낼 음모를 꾸미면서도 암스테르담은 내게 완전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자유를 생각했다. 나보다 먼저 암스테르담에 와 보신 분은 알 것이다. 이 도시는 필연적으로 자유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스피노자가 여기서 났다. 헤이그 즉, 댄 허그에서 세상을 떴지만 그는 여기 태생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마약이 있다. 외국인에게는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지만 마음만 먹으면 나도 한 대 피울 수 있을 테다. 골목에는 대마초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쇼가 있다. 진짜 쇼 말이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인 쇼.
여기 인구가 얼마나 되지요? 1,700만 될걸요. 면적은요? 경상남도 크기랍니다.
자유가 크기에는 아주 작은 나라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저지, 제지가 아주 작다.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투다. 스키폴 공항에는 “즐겨라. 지금이 바로 그때다.”라고 써 있다. 인생의 무대 위에 올라섰으니, 이 희비극의 마당에서 잔치라도 한번 크게 벌리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기 와서 참 자유가 그립다. 그저께도 조국에서는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참담한 소식을 이 자유 천지 속에서 들으며 나는 내가 너무 순진해 빠진 건지, 공상주의에 불과할 뿐인지, 과민한 것인지 묻게 된다. 그리고 이런 나라에서 문학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생각한다.
하지만 고흐가 있잖은가. 모든 예술을 꿈꾸는 자들의 친구, 바로 내 곁에 있는 현실, 현재, 바로 그, 왼쪽 귀를 잘라낸 사람 말이다.
2.
《월간문학》, 참 고색창연한 이름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잡지들이 각기 이념적으로 정립하기를 끝냈다고 여기고, 또 그래서도 안 되지만, 그래도 잡지마다 각기 다른 색채는 있어야 하겠다고, 그래야 독자들도,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이렇게나 많은 이유를 납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월간문학》을 보니, 인천의 작가들을 보는 것처럼 좋다. 시들이 정련되어 보이는 것도 좋다. 그중에 정양 시인의 시도 있다. 정양. 이 고색창연한 이름이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다. 슬쩍 지나가는 한 문장으로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눈이 살아 있음을 보인다.
망할 것들이 안 망하는 동안
사내는 할아범 되고
꽃보다 곱던 새각시는
잔소리 많은 할멈이 되었다
할멈은 침대에 걸터앉고
할아범은 그 아래 무릎 꿇어
할멈 무릎 위에 머리를 조아린다
부스럼 번지는 할아범 머리통에
할멈이 골고루 연고를 바른다
기계독 옮은 머리통에 쌀겨기름 문지르며
이름말 안 들어서 이런다고
뒤통수에 알밤도 먹이며 윽박지르던
돌아가신 어머니 손길 같아서
할아범은 할멈의 손길이 싫지 않고
뉘우칠 일 너무 많은 듯
무릎 꿇고 조아린 할아범을
할멈은 번번이 고소하게 여기는 눈치다
할멈의 손길이 싫지 않아선가
머리 조아리는 할아범이 고소해선가
뉘우칠 일 너무 많아서
망할 것들이 영 망하지 않아선가
부스럼은 여간해서 가라앉지 않는다
— 정양 〈부스럼〉 《월간문학》 7월호
이 시를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그림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있는 장면. 오래 한 세월을 같이 살아오는 동안 사내로서 할아비는 어지간히 할멈의 속을 썩였던 게다.
아무리 근력 좋은 수컷도 종래는 힘이 떨어지고 암컷의 인내와 관용과 사랑을 이겨낼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처분에 맡길밖에.
이 할아버지가 그 대표 선수인 듯하다. 나이 들면 생겨나는 온갖 고질병 중의 하나 부스럼, 그것을 않는 할아버지는 아직 그래도 성깔은 남아 있다. 보나 마나 자꾸만 나라님 욕을 하고, 못된 것들 욕을 하고, 자유당 시절에 〈동아일보〉만 보던 나의 외조부 같은 사람일 것이다. 모든 게 마뜩잖고 자기 자신마저도 마뜩잖은데, 그래도 할멈한테만은 이제 늘 질 수밖에. 해온 짓, 저지른 짓이 있어서일 테다.
이 회화적인 유머 앞에서 잠깐 생각한다. 슬쩍만 짚고 넘어가면서도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말하는, 오래 써온 시인의 날카로운 힘을.
3.
내가 잘 아는 정기복 시인은 백운대행 연작을 쓰는 중인가 보다.
아마도 내가 그의 새로운 시업에 기여한 바 있으리라, 우스갯소리를 해보면서, 하지만, 이 시는 내 친구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감상자, 독자로서 누가 봐도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작품일 것이라 생각한다.
한 점 가을 붉다. 저 불쏘시개 하나가 열흘 이내 온 산사를 불사를 것이다
진관사 계곡으로 비봉 오르다 척후병으로 와 불붙은 한 점 단풍 본다. 제 앞길에 놓인 능선의 숱한 잎들을 일제히 붉게 물들이던 산사람의 마음 깊은 골을 걷는다. 분홍이든 주황이든 누구의 손가락 마디 하나, 옷자락 한 뼘 적셔보지 못하였으나 언제인가 내 심장은 격발의 순간처럼 가쁘게 물든 때가 있었다. 젖어든 추억과 받아들인 기억 왼발 오른발 번갈아 디디면 어느덧 비봉과 향로봉의 갈림길이다. 가을빛 자연히 비추어드는 오늘 이왕이면 가파르고 험한 비탈길 택한다. 무심한 내 발길은 젖은 잎 한 장 말리지 못하나 한사코 벼랑에 매달리던 그대의 심사는 한닢 붉게 피워 온 산 불사른다.
— 정기복 〈백운대행-진관사〉 《신생》 여름호
백운대. 북한산의 고봉이다.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이 백운대행 옆에 부제를 진관사라고 달았으니 그 순간 백운대행은 시인의 정신적 지향점을 가리키는 상징적 어휘로 상승한다.
진관사 쪽으로 비봉 오르는 길은 봄에 진달래만 좋은 줄 알았지 가을에도 뭔가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내 등산력이 하잘것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인은 다르다. 한 4년 실히 주말마다 북한산에 올랐으되, 그냥 취미로 또는 운동으로, 또는 사귐으로 오른 게 아니요, 그것이라도 없으면 내일이라도 죽을 수밖에 없을 사내의 마음으로 오른 것을 내가 안다.
“언제인가 내 심장은 격발의 순간처럼 가쁘게 물든 때가 있었다.” 이 뛰는 심장을 가슴에 넣고 산을 오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피어린 산행의 나날들을 나는 매번 함께하지 못하였지만, 그러는 사이에 이제 그는 백운대행을 쓴다. 단풍잎 한 장만으로도 시가 되는 내면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산을 물들이던 그 “산사람”은 누구인가. “한사코 벼랑에 매달리던 그대”는 누구인가. 그보다 먼저 왔다 먼저 간, 그 사람은 누구인가.
4.
때로는 난해한 시도 그것이 시인 자신의 막지 못할 내적 요구에서 비롯되었음을 납득할 수는 있을 때가 있다.
그때 시인은 필사적으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에 독자도 한번 휘말려 들어가는 모험에 나서 보는 것이다.
당신이 나를
흰독수리깃으로 정화해주던 날
꿈을 꾸었습니다
코요테의 언어로 말하고
사슴의 뿔로 분노하라고
희끗한 어둠 속에 선명한 목소리로 말하였지요
나를 가지에 꿰어 수로에 버려두세요
곰의 먹이로나 줘버리세요
어떤 치병 굿으로 저 바다를 정화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독수리가 죽어야 거친 물결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심해에 엉켜버린 미래와 흔적을 발굴하다
무중력의 계절이 바뀌고
당신이 나를
흰독수리깃으로 정화해주던 날
꿈을 꾸었습니다
산속 깊은 곳에서
밤새 노래하고 춤을 추며
영원히 끝나지 않는 성인식을 치르고 또 치렀습니다
파라고무나무 수액을 입힌 천으로
진즉 젖은 몸을 들어 올리지 못하였으니
어떤 치병 굿으로 저 바다를 정화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독수리가 죽어야 거친 물결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네 영혼은 계속 나아가리라
네 영혼은 계속 나아가리라
산속 깊은 곳에서
밤새 노래하고 춤을 출 뿐
— 강신애 〈깃, 굿〉 《시와 문화》 여름호
이것은 어떤 성인식에서 영감을 얻어 시로 쓴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인디언들이 이런 성인식을 치르던가? 독수리는, 흰독수리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인디언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시에 나오는 “바다”라는 시구가 중요성을 부여받는다. 산속에는 바다가 없다. 그러므로 이 시의 바다는 시적 화자의 영혼의 바다, 잠들지 못하는, 자주 사납게 튀어 오르고 헝클어지는 바다다.
이 영혼의, 잠들지 못하는 바다는 병들어 있다. 이 시에서 화자가 부르는 “당신”이라는 기표의 기의는 텅 비어 있으며, 어쩌면 그 병든 바다가 치유되기 위해서 임재를 요청해야 하는 미지의 초월적 대상이다.
“바다”의 “정화”를 위하여 시인은 이 시를 쓴다. 정화 끝에 무엇을 그녀는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코요테의 언어로 말하고/ 사슴의 뿔로 분노하”는 것, 그렇게 시원의 의식과 감정으로 돌아가는 순수를 얻는 것. “네 영혼은 계속 나아가리라/ 네 영혼은 계속 나아가리라”, 화자는 “당신”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에게 예정 명령한다. 끓어오르는 바다의 혼돈 뒤에는 고요한 아침의 바다가 있어야 하리라고.
요즘 세상에 누가 정화를? 몸도, 마음도, 무엇이라도 내던지기 일쑤인 세상에. 이런 고색창연한, 영혼의 치유와 구제라는 이야기를 하는, 그래서 귀한 목소리를 가진 시인도 드물디드물 다 할 것이다.
5.
여차가 어느 곳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비행기 안, 도착지까지 남은 거리 2,299킬로미터, 남은 시간은 그 사이에 바뀌어 2시간 41분.
허공에 떠서 어디에 물어볼 곳도 없다.
거제도라면 나도 장승포까지는 가보았던 것을. 몽돌 있는 여차라고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가보고 싶다. 군소가 살고, 이별이 있는 곳이라 하잖는가, 다음의 시에서 말이다.
겨울 파카 입은 거제도 여차 몽돌해수욕장
파도와 몽돌이 만나는 소리를 달팽이 닮은
군소 한 마리가 듣고 있었다
차르르 차르르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봄이 오고 있었다.
여덟 개의 섬으로 된 병대도 앞까지 봄이 와 있었다.
어떤 이별이 시작되었다.
광대나물과 봄까치풀이 발치에서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 박우현 〈여차〉 《사람의 문학》 여름호
군소에 관한 작은 기억 하나. 홍도로 해서 흑산도, 비금도로 2박 3일 여행을 간 적 있다. 최동호 선생님, 박미산 시인, 이찬 선생 같은 분들과 함께. 겨울, 좋았다.
그때 서상만 시인께서 소주 한잔 사시겠다고, 찬바람 부는 방파제 위 천막으로들 갔다.
군소. 그런 게 있었다. 이름으로 보면 동물이라기보다 식물이라 해야겠고, 차라리 어느 곳 지명이라고나 해야겠는. 까맣고, 표피가 우둘투둘하고, 날것으로는 안 먹고 데쳐서 먹으며, 쌉싸름한 약초 맛이 입안에 번져오는. 군소. 그날 쏘주 맛이, 크.
시간이 흐르면 좋은 것은 추억뿐, 그 날들의 흑산도 양양, 박미산 시인의 시에 나오는 여자는 어디로 사라졌나.
이 군소가, 그 바다 달팽이 같은 것이, 우리나라 세 바다에 다 난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여차라는 곳 몽돌 해수욕장에 살아 있을 줄은.
이 시에 이별은 구체적으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가 아름답고 여운이 길다. 고유한 말들, 지명. 여차며 병대도며, 그리고 군소며, 광대나물이며 봄까치풀 같은 시어들이 겨울과 봄이 만나는 계절의 아픔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만하면 여차를 기록하는 시로서의 자격은 충분히 갖춘 게 아니냐 생각한다.
나도 다음번 이별여행은 여차로 가야겠다. 그런 좋은 기회가 아직도 내게 주어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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